[지상백고좌] 선문화수좌복지회 이사장 의정 스님
“선불교는 생활선…하루 10분 참구해보길” 서구 물질문명 대안은 ‘간화선’ 미국 등서 유행하는 명상들은 오직 定만 추구…매우 위험해 계정혜 닦아야 ‘열반’에 이르러
지상백고좌 취재를 갈 때마다 필자는 〈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선재동자의 심정이 된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선지식을 참례하고 법을 여쭤볼 생각에 절로 가슴이 설렌다. 이번에 필자가 참례한 선지식은 선문화수좌복지회 이사장인 의정(義正) 스님이다.
태고 보우 국사가 주석했던 도량이어서인지 경기도 양평 상원사에 닿자마자 필자는 태고 보우 국사가 현릉의 청으로 지은 ‘달마(達磨)’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푸른 눈의 스승이 오기 전에도 사람마다 의기가 하늘을 찔렀고 외짝 신 들고 서방으로 돌아간 뒤에도 사람마다 두 눈썹이 모두 완전했거니 무슨 일로 그렇게 가고 오고 했던가? 냉정히 생각하고 한 번 웃기 위해서였네.’
서옹 스님이 편액을 쓰고 송담 스님이 주련을 쓴 용문선원(龍門禪院)을 지나치면서 필자는 냉정히 생각한 뒤 한 번 웃을 수 있는 그 소식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다. 의정 스님은 이 시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꼽히는 송담 스님에게서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화두로 받고서 인천 용화사, 봉암사 선원 등 제방선원 70안거를 성만한 대표적인 선승이다.
한 수좌가 찾아와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고 묻자 조주 선사가 대답한 것이 바로 ‘판치생모’다. ‘판치생모’는 앞니에 터럭이 났다는 의미이니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필자가 인사를 드리자 의정 스님은 “무엇을 취재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저 선재동자의 심정으로 선지식을 찾아뵙는 것”이라는 필자의 대답에 의정 스님은 자신이 발심출가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스님은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무전 여행을 떠났다. 보름간 이어진 여행 내내 스님의 뇌리 속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고생 끝에 목포 앞바다에 당도한 스님은 인류 4대 성인의 사상을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4대 성인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후 스님은 부처,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의 사상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다. 스님이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불교성전〉과 〈불교학개론〉 등 불교서적이었다.
“제가 인류 4대성인의 사상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고민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세속적 욕망인 권세와 부귀와 명성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불교 서적을 탐독하면서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세속적 욕망을 버릴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불교 서적을 읽으면서 부처님처럼 살겠다는 발심을 했던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시작되는 형국이었다. 삶에 대해 의심했던 까닭에 스님은 출가의 발심을 낼 수 있었다.
당시 경기도 의정부에서 살고 있던 스님은 의정부포교당 주지인 운경 스님을 찾아갔다. 운경 스님과의 법연으로 말미암아 스님은 남양주 봉선사로 출가할 수 있었다.
“제가 ‘속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찰로 출가하고 싶다’고 했더니 은사스님께서 ‘봉선사에는 고승인 운허 스님이 계시니 너를 잘 지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출가한 뒤 스님은 봉선사 조실 운허 스님에게 법을 구했다. 운허 스님은 사교입선(捨敎入禪)할 것을 권했다. 무작정 문자 밖의 깨달음을 구할 게 아니라 깨달음으로 인도할 경전부터 배우라는 충고였다. 운허 스님의 지시에 따라 스님은 해인사 강원을 수료한 뒤 성철 스님, 월산 스님, 서옹 스님, 향곡 스님 등 당시 최고의 선지식들을 참례했다.
그러던 중 송담 스님을 찾아뵙고 말씀을 듣는 순간 스님은 줄탁동시(緖啄同時)의 인연을 만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송담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판치생모’를 화두로 받은 스님은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의 정신으로 용맹정진했다. 체중이 60kg에서 40kg으로 줄어들어서 병원을 찾으니 의사는 “장기 전체에 염증이 퍼졌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스님은 상기병(上氣病)에 걸려서 극심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내세에 다른 몸으로 정진해야겠다’고 결심할 즈음 송담 스님이 법제자의 구명(求命)에 나섰다. 송담 스님이 소개한 민간요법으로 3개월 동안 치료한 끝에 스님은 간신히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스님이 목숨 걸고 했다는 화두선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간화선이 다른 수행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스님은 간화선 수행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부터 설명했다.
“달마 대사에서 육조 혜능 선사로 이어지는 법맥으로 인해 중국에 조사선 수행이 유행하게 됩니다. 조사선이 유행하면서부터 중국의 총림은 농경을 통해서 자급자족을 합니다. 남방불교에서는 농사를 짓는 것도 계율에 어긋납니다. 농사를 짓느라 농기구로 땅을 파헤칠 경우 미물(微物)을 살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재세 당시 승가 공동체는 탁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사회에서는 어떠한 생산 활동도 하지 않고 수행만 하는 것을 무위도식으로 여겼습니다. 게다가 비를 피하기 위해 지붕만 있는 정사(精舍)에서 수행을 했던 남방의 승가 공동체와 달리 사계(四季)의 절기가 있는 중국의 승가 공동체는 사벽(四壁)과 난방시설을 갖춘 요사(寮舍)가 필요했습니다. 궁리 끝에 중국의 승가 공동체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개차법(開遮法)을 활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범개차(持犯開遮)는 ‘작은 계를 범함으로써 큰 계를 지키는 법’이자 ‘계를 열고 닫는 법’입니다. 총림의 승가 공동체가 논밭을 경작하다 보니 청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백장청규입니다. 당시 총림의 대중은 낮에는 6시간씩 노동을 하고, 오후 4시부터 좌선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주자와어묵동정’은 앉아서도 서서도 걸으면서도 누워서도 화두를 놓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의정 스님은 “간화선의 모태인 조사선은 동선(動禪) 위주의 수행”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육조 혜능 선사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기만 하는 것을 좌착(坐着)이라고 경계했다.
“간화선 전통을 수립한 대혜 종고 스님은 묵조선의 병폐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묵조선은 묵묵히 앉아서 본래 청정한 자성(自性)을 관하는 수행입니다. 그러다 보니 화두를 놓지 않고 수행하는 간화선과 달리 수마(睡魔)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좌선(坐禪)과 동선(動禪)의 균형을 맞추고 나서야 저는 상기병을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간화선은 사마타의 정신력과 위빠사나의 지혜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수행입니다.”
의정 스님은 좌선과 동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용문선원 납자들에게는 인근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지시하기도 했다. 깨달음의 목적은 중생구제임을 잊지 말라는 ‘보청법(普請法)’인 것이다.
“현대사회에 간화선의 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의정 스님은 “서구 문명의 대안이 간화선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에서는 향후 인류를 이끌어갈 제4의 물결이 명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는 명상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열반에 이르는 길은 계(戒), 정(定), 혜(慧) 3학입니다. 계는 바른 도덕이고, 정은 바른 수행이고, 혜는 바른 지혜입니다. 계와 정을 닦을 때만이 혜가 생기는 것인데, 서구국가에서는 오직 정만 하고 있습니다. 심신(心身)을 치유하고자 선정만 닦는 것이지요.”
의정 스님은 서구 국가의 명상수행이 ‘외도선’이라고 정의했다. 중국의 규봉 종밀 선사는 선수행을 5단계로 나눴다. ‘외도선(外道禪)’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려고 닦는 수행이고, ‘범부선(凡夫禪)’은 인과(因果)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시비의 분별을 지닌 채 닦는 수행이고, ‘소승선(小乘禪)’은 자신은 공하지만 법은 실재한다는 생각에 닦는 수행이고, ‘대승선(大乘禪)’은 자신과 법이 모두 공하다는 생각에 닦는 수행이고, ‘최상승선(最上乘禪)’은 자신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므로 애초 번뇌가 없다는 생각에 닦는 수행이다. ‘최상승선’을 수행할 때만이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달을 수 있다.
“청규정신 복원해야 불교 발전 가능”
누구든 無心할 수 있다면 正覺
마음 속 망상 없는 게 곧 무심
간화선, 망상 없애 무심되는 길
의정 스님은 이어서 “〈부처님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라는 책을 출간한 다원주의 신학자인 폴 니터(Paul F. Knitter)의 주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달라이라마로부터 티베트 불교 전통에 따라 ‘연꽃 치유자’라는 법명과 함께 수계도 받은 폴 니터는 오랫동안 선(禪) 수행을 해왔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렸던 1960년대 초반에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전 세계 2000여 가톨릭 주교들이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불교 명상교사인 캐티 코넬과 결혼한 덕분에 그는 불교라는 안경을 통해 새로운 그리스도의 진리를 보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폴 니터는 불교와 기독교를 동시에 믿고 있는 것이다. 그는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가 불교라는 사실에 주목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은 병원은 물론이고 실리콘밸리 등 회사에도 명상소를 설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정 스님은 “서구 문명이 종언을 고하고 나면 선 수행이 인류문명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양이 인류문명을 선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화 때문입니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해 환경피해는 극심해졌고, 자본주의의 발달로 물질만능주의는 팽배해졌습니다. 서양의 사상은 이원론에 기초합니다. 다른 사람을, 나아가서는 자연을 대상화 내지는 도구화함으로써 인류의 위기가 초래된 것입니다. 이원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바로 선불교의 일원론입니다. 간화선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5년 전 독일의 한 신부가 간화선을 공부하기 위해서 용문선원을 찾았다고 한다. 3일 동안 의정 스님과 대화를 나눈 독일 신부는 “독일의 신부들도 밤에는 명상을 한다”고 말했다.
의정 스님에 따르면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는 여러 난관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난관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눈을 뜬 채로 화두를 들어야 한다. 두 번째 난관은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럴수록 화두에 집중해야 한다. 세 번째 난관은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의심과 의심하는 자신이 하나가 되는 순간 불현듯 화두가 풀리게 된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경허 스님은 3개월 만에 화두를 풀었는데, 잠을 피하기 위해서 칼을 목 밑에 세워두고 정진했습니다.”
의정 스님은 “선불교 수행은 생활선이어서 앉아서도, 서서도, 걸어 다니면서도 어디서든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잠들기 전 5분, 아침에 일어나서 5분이라도 화두를 들어보라”고 주문했다.
“혜가 스님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달라’고 하자 달마대사는 ‘불편한 마음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혜가 스님은 아무리 찾아봐도 마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실, 편안하다는 생각도 불편하다는 생각도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무심(無心)할 수 있다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심은 마음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음속에 망상이 없는 게 바로 무심입니다. 간화선이 바로 망상을 없애서 무심으로 만드는 수행입니다. 한 수좌가 마조 스님에게 찾아가 법을 물었습니다. 마조 스님은 주장자로 마당에 원을 하나 그렸습니다. ‘원 안으로 들어가도 때리고 안 들어가도 때린다. 일러봐라.’ 수좌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조 스님의 가르침은 출구와 입구를 동시에 막아버림으로써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하는 활구(活句)입니다. 간화선의 해답은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의정 스님은 송담 스님으로부터 배운 공안(公案)의 타파법을 설명했다.
“송담 스님은 수행자는 마땅히 대의단(大疑團)이독로(獨露)하도록정진을해서 공안을타파(打破)함으로써자기의면목을바로 보고,불조(佛祖)의 면목을깨닫고,생사문제를해결해야 한다고 설했습니다.정진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믿을 수 있는 바른스승의지도없이는할수가 없는것입니다. 공안은분별심(分別心)이나사량심(思量心)을가지고서는도저히타파(打破)할수가없습니다.”
전강 스님은 “어떻게하면그바른스승을간택(揀擇)할수가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어떠한공안(公案)을 깨달아서어느선지식에게인가(印可)를받았는지 알면 된다”고 대답했다.
달마 대사의〈혈맥론(血脈論)〉에는‘불급심사(不急尋師)공과일생(空過一生) 무사자오자(無師自悟者)만중희유(萬中希有)’이라는 구절이 있다.‘급히 스승을찾지아니하면헛되이일생을보내게 된다.스승없이스스로깨달은 사람은만명중 한 사람도 있기가어렵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삿된스승에게서 배우면 아무리잠을안자고열심히수행한다고해도삿된소견에떨어질수밖에는 없다. 바른깨달음은바른스승의지도하에서만이뤄지는 것이다.
의정 스님은 종단의 발전 방안으로 청규정신의 복원을 꼽았다.
“2010년에 수좌 대표들이 모여서 현대사회에 맞는 청규를 제정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수좌 대표들은 적어도 하루 2시간은 보청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중지를 모았습니다. 이 보청에는 포교, 복지, 저작(著作) 등 다양한 활동이 포함됩니다. 현재 승가 공동체가 이판과 사판으로 나눠져 있는데, 수행을 하지 않다 보니 사판승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전에는 총림 청규 상 이판과 사판의 역할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했습니다. 청규정신을 복원해 청정승가를 구현한다면 종단이 신도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의정 스님은 현재 재단법인 선원수좌선문화복지회 대표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선원수좌선문화복지회는 수좌스님들이 출가에서 열반까지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복지 혜택을 지원하기 위해서 2012년 설립된 단체이다.
의정 스님은 전국선원수좌회를 대표해 조계종립 특별선원인 문경 봉암사에 세계명상마을 건립을 주도해왔다. 2018년 봉암사 조실 적명 스님과 의정 스님이 첫 삽을 뜬 문경 세계명상마을은 8만4000여㎡(2만5410평) 부지 위에 명상홀, 리조트형 명상숙소, 개인 수행처, 무문관 등 1만1000㎡(약 3360평)의 시설이 건립돼 300여 명이 동시에 숙식하며 수련할 수 있다. 국제 공모로 당선된 토마스 한라한 미국 플랫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건축물은 단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문경 세계명상마을 운영에 대해 의정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간화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조계종 총무원과 전국선원수좌회가 합심한다면 문경 세계명상마을은 세계인의 명상센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정 스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상원사를 빠져나오다가 소요(逍遙)하듯 천천히 포행을 하는 수좌스님들을 보았다. 동선을 하고 있는 수좌스님들을 보려니 오현 스님의 ‘면벽의 달마’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우러러 일방(一榜)이라면 해 하나 달 하나를 갈대 한 잎 타고 도강(渡江)한 또 하나의 집념 그도 그 갈대가 되어 바람결에 흔들리고.’
용문선원의 산길에는 달마 대사가 서역에서 가져온 한 물건이 무엇인지 궁구(窮究)한 끝에 바람의 일방에 활연대오(豁然大悟)한 수목들이 녹음(綠陰)의 이파리들을 흔들면서 서로 염화시중의 미소를 나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