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깨달음의 노래] 6. 서산 대사 휴정의 오도송

‘역설’로 ‘문성오도’를 전하다 대낮의 닭 울음, 선가의 돈오성 상징해  서산 대사, 선이 시로써 문학 되게 하고 시가 선으로써 사상과 깊이를 더하였다 

2024-06-11     김형중 문화평론가

대낮의 닭 울음소리

머리털이 희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髮白非心白)
옛 사람은 일찍이 말했네(古人曾漏洩)
문득 대낮의 닭 울음소리 듣고(今聽一聲鷄)
대장부 할 일을 모두 마쳤네(丈夫能事畢)

홀연히 깨닫고 본래 내 집에 이르니(忽得自家底)
온 세상 사물이 그대로 진리의 세계로세(頭頭只此爾)
천언만어 팔만 금보장경이(萬千金寶藏)
원래는 하나의 빈 종이였네(元是一空紙)

서산 대사는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사서를 외우는 천재이나 10세에 조실부모한 고아였다. 시를 잘 짓는 신동이라는 소문이 나서 고을의 군수 이사증이 양아들을 삼아서, 한양으로 이주해 12세에 성균관에 특례 입학했다.  

서산 대사는 27세에 지리산에서 참선 수행을 하다가 산에서 내려와 남원 봉성마을을 지나가다 갑자기 정오 대낮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활연히 깨달음을 얻고 두 수의 오도송을 지었다.

보통 오도송은 한 수만 전하는데, 두 수의 오언절구가 그의 문집 〈청허당집〉에 전하고 있다. 전편의 시에서 ‘설(洩)’과 ‘필(畢)’을 운으로 하고, 후편의 시는 ‘이(爾)’와 ‘지(紙)’를 운으로 한 것이다. 두 편의 시를 하나의 오언율시로 보면 운이 맞지 않는다.

전편 시 “머리털이 희게 세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옛 사람은 일찍이 말했네”의 싯구는 인도의 불조 제3조 상나하수 존자가 제4조 우파국다 존자에게 한 법문을 용사(用事)하였다. 오도송이나 선시에는 경전이나 선사의 어록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경우가 있다. 그것은 깨달음의 내용과 표현이 일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종에서 깨달음의 공통된 내용은 ‘마음’ ‘공’ ‘중도’ ‘중생즉불’ 등이다.

닭은 새벽에 울어 어둠을 몰아내고 여명을 여는 전령사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대낮의 닭 울음소리는 선가의 돈오성(頓悟性)과 역설(逆說) 전환의 충격적 울림을 통한 깨달음을 준다. 서산 대사는 대나무 소리를 듣고 깨달은(擊竹悟道) 향엄 선사처럼 문성오도(聞聲悟道)했다.

마음의 본래 자리인 불성을 보면 견성성불이다. 일체가 마음이 만드는 일체유심조이고, 유심소현(唯心所現)이다. 번뇌가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져 더 이상 배우고 닦을 것이 없는 무학위(無學位)인 아라한의 해탈 열반의 경지이다. 이것을 서산 대사는 출가 대장부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마쳤다고 갈파했다.

후편 시는 홀연히 깨달아 나의 본래 마음의 집(자성 불성)에 돌아와 바라보니 이 세상이 그대로 부처의 정토요, 중생이 부처이다. 부처님이 설한 팔만대장경이 ‘깨달음을 이룬 중생의 마음’ 하나를 기록한 것이니 “천언만어 팔만 금보장경이 원래는 하나의 빈 종이였네”라고 읊었다.
 

그의 한시는 시의 운율과 대구(對句), 평측(平仄) 등에 있어도 유가 시인들의 격조에 뒤지지 않았다. 당송의 명시와 어깨를 함께 할 수 있는 ‘등향로봉시’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 같고, 천추의 호걸은 초파리 같구나”가 있다. 서애 유성룡은 선조대왕에게 이 시가 남아 대장부의 호연지기를 잘 드러낸 명품시라고 찬사하는 시평을 하였다.

한국문학사에서 서산 대사만큼 찬사를 받은 시승은 없다. 그의 선시는 선이 시로써 문학이 되고, 시가 선으로써 사상과 깊이를 더하였다. 조선 선시문학의 수평을 높였고, 조선 후기문학에 큰 영향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