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국수 기행] 10. 명천 스님의 상추찔레 국수

소박한 국수 한그릇에 푸른 초여름 담아내다

2024-05-31     장보배 작가

푸른 물 흐르는 땅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예로부터 물이 풍부하고 산세가 좋기로 이름난 이곳의 내력(來歷)은 이 고요하고도 단정한 고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다.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안의버스터미널, 이곳에 도착한 여행자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장대하게 흘러넘치는 푸른 남강이다. 수령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오리나무 숲이 강의 곁을 지키고, 또 수백 년 동안 흐르는 강물도, 인간사의 쉼 없는 흥망 성사도 묵묵히 바라보았을 저 기세등등한 누각 ‘광풍루’가 반겨주는 이 풍요로운 땅. 한때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길목이자, 역참과 역말이 있던 교통요충지였던 이 땅의 과거는 오늘날의 고즈넉한 풍경과는 또 다른 빛이 머문다. 

특히 이곳은 우리 농업사에 혁신을 일으킨 일대 사건의 진원지이기도 한데, 바로 연암 박지원이 우리나라 최초로 물레방아를 만든 곳이기 때문. 안의현감으로 발령을 받았던 연암은 자신이 중국에서 목격한 과학기술을 통해 조선의 농업기술을 개량하고, 고통받는 백성의 삶을 구제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는 곧 조선 전역으로 퍼져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시대 18품계 가운데 고작 종육품의 말단기관장이었지만, 평생 민중의 삶에서 눈 돌리지 않았던 연암의 애민정신이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땅 깊은 산자락에는 아직도 오래전 그 날의 물줄기와 같은 푸른 강물이 흐른다. 그리고 연암의 모습과 닮은 한 수행자가 이곳에서 또 한 번 여여(與與)한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연암의 애민(愛民)이 그러했듯, 온 삶을 통해 자신의 쓰임을 실천하는 수행자. 바로 명천 스님이다. 

구름 향기 머무는 곳에

“어서 오세요, 오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울도 담도 없는 산중 도량, 점심 공양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오른 이곳에서 명천 스님을 만났다. 첫눈에 들어온 것은 뜨거운 햇살을 등에 지고, 한 소쿠리의 감자를 손질하고 계신 스님의 모습. 돌아보니 이런저런 초록이 가득 심어진 채마밭이 저 멀리 한참이다. 

물 깊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용추계곡, 그리고 그 곁에 자리한 고적한 암자 향운암(香雲庵). 

이곳의 암주(庵主)이자, 다양한 불교예술 분야의 장인으로 명성이 높은 명천 스님. 하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잔잔한 스님의 목소리와 슬며시 배어 나오는 웃음은 너무나 맑고 다정하다. 푸른 물, 푸른 숲과 오랜 시간 어우러지면 사람마저 푸르러지는가 싶을 만큼. 

스님의 국수를 만나러 먼 곳을 찾아왔지만, 그 전에 명천 스님만의 특별한 이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스님은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으나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배운 적이 없었으나 가사(袈裟)를 짓는 수행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지난 2009년 전통 가사 ‘복전의’로 불교미술대전 최고상을 수상한 장인으로, 또 가사원의 편수(片手, 불사의 책임자)이자 국내에서 불교의 전통가마 ‘연’을 제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손꼽힌다. 

그 무엇도 정식으로 교육을 받아본 적 없다. 하지만 사찰음식과 꽃꽂이, 서예, 회화, 목조각, 염색과 옻칠까지 스님의 손닿는 곳마다 피어나는 아름다운 세상. 아무리 깊은 산중에 있어도 그 빛이 가려질 수는 없는 법. 알음알음 소문난 스님의 솜씨는 다양한 방송 매체를 통해 여러 번 소개되었는데, 그중 단연 화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스님의 음식 솜씨다. 

스님들의 국수 이야기를 찾는다며 염치없이 한 그릇을 청한 이에게 그저 이곳으로 오라, 반겨주신 명천 스님. 오늘 스님이 준비한 국수는 산도, 물도 푸른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맛. 바로 향운암의 여름을 책임지는 ‘상추찔레 국수’다. 

초여름을 닮은 맛

“상추찔레 국수는 이제 제철이 시작됩니다. 여름에 시원하게 먹기에 좋거든요. 텃밭에 있는 상추를 한 번에 다 먹기는 어렵지만, 상추 물김치를 담으면 버리는 것 없이 잘 먹을 수 있어요. 또 찔레는 봄에 부드러운 줄기가 올라오는데, 시기가 조금 늦어도 먹을 수 있으니 잘 골라와서 같이 김치를 담습니다.” 

유독 국수를 좋아하셨던 은사스님(성수 스님/조계종 전계대화상, 1923~2012)을 모시며, 명천 스님의 국수 레시피도 타래처럼 술술 쌓인 터다. 그중에서도 은사스님께서 유독 좋아하신 국수가 바로 이 물김치 국수였다. 

날씨가 더워지고, 상추 자라는 속도가 먹는 것보다 빨라지면 상추 물김치를 담아야 할 때. 풀 국에 생강과 고춧가루만 조금 넣고 훌훌 저어 갓 딴 상추 한 동이에 부어주면 끝. 산에서 채취한 찔레순을 함께 넣고, 하루만 지나면 밤새 시원하게 익어 신통한 맛을 내는 것이다.

“예전에는 찔레 순이 올라오면 그걸 꺾어서 간식으로 먹었어요. 껍질을 까서 먹어보면 약간 떫기도 하고, 달콤하거든요. 그래서 찔레로 김치를 담으면 약간 배릿한 특유의 향이 나지요.” 

스님께서 미리 준비해 두었다는 상추 물김치 통을 여는 순간. 상쾌한 향기가 사방에 터진다. 김치라기보다 상큼한 주스에 가까운 향기, 염치도 없이 침을 꼴깍 삼키게 하는 그 초록의 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다시 눈을 사로잡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국수 담음새!

오목한 그릇에 상추의 잎만 4등 분하여 ‘田’모양으로 정갈히 담아주고, 그 위에 먹기 좋은 양으로 동그랗게 말아둔 국수를 차례대로 올린다. 물김치 국물을 넉넉히 따른 뒤, 아삭한 찔레순을 정갈하게 올려주면 완성. 함께 곁들인 찬은 아까 스님께서 열심히 손질하신 돼지감자로 만든 고소한 전이 올랐다. 오래전 은사스님께 공양을 올리던 그 모양새, 그대로다. 

“은사스님께서 국수가 양이 많다 하실 때가 있어요. 크게 한 번에 담지 않고, 조금씩 나누어 담으면 원하는 만큼 적당히 덜어 드시기에 편합니다.”

낯선 이를 향한 미소도, 자비로운 한 그릇 공양도, 먹는 이를 생각하여 담는 정성까지. 모든 것이 여여하게 느껴지는 순간. 문득 이 소박하고 향기로운 국수 한 그릇이 만든 이를 닮았구나, 싶어 고개를 숙인다.

나의 쓰임을 발원하다

“뭐라도 해놓으면 후대의 사람들에게 좋지 않겠나 싶어서.” 

스님께 ‘가사 불사’의 시작을 묻자, 단번에 담박한 답이 전해진다. ‘우리 것 중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전국을 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고불서와 탱화를 보며 과거에 존재한 실체를 찾기 위해 애썼다. 장인을 찾아 배움을 청하고, 국내는 물론 외국의 가사를 비교해 가며 한국불교만의 가사 제작 기술을 찾아온 시간이다. 

“군대를 다녀와서 깨달았어요. 나는 참선도 많이 못 하고, 학식이 풍부해 설법을 잘해서 중생을 교화하는 일도 어렵겠구나, 하고요(웃음). 그러니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는 노력을 해보자 싶었지요. 뭐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서.” 

스님 손은 거칠다. 홀로 암자를 돌보고, 땅과 씨름하며 삶을 일군 흔적이 고스란히 손에 남았다. 혹여 거친 손으로 귀한 천에 생채기를 낼까, 손가시들이 겨우 가라앉는 겨울이 되면 그제야 손끝을 단정히 하고 바늘을 잡는다는 스님. 

“우리 도반스님 중에 아주 유명한 강사스님이 계세요. 그런 스님들은 참 또렷이 포교를 잘 하고, 또 후학들을 잘 지도하는구나, 싶지요. 그런데 나는 너무 촌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웃음). 하지만 내가 이런 모습을 너무 부끄러워 말자, 속으로 생각해 봐요. 큰 계획은 못 세워도, 제 솜씨가 1인자는 못되어도 그냥 열심히 해서 누구한테라도 도움 되기를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 

푸른 강물은 끝내 한 길을 향해 흐르는 것. 오래전 연암의 바람이 그러한 것처럼, 자신의 쓰임을 기원하는 스님의 마음이 길이 되어 흐른다. 끝내 저 큰 자비의 바다가 되어 흐른다. 

▶한줄 요약 
오목한 그릇에 상추의 잎만 4등 분하여 ‘田’모양으로 정갈히 담아주고, 그 위에 먹기 좋은 양으로 동그랗게 말아둔 국수를 차례대로 올린다. 물김치 국물을 넉넉히 따른 뒤, 아삭한 찔레순을 정갈하게 올려주면 완성.

  명천 스님의  상추찔레국수

재 료
상추(500g), 찔레순 약간, 고춧가루/생강가루/소금(각각 1ts), 밀가루 풀국 (종이컵 1/3컵), 물 적당량.

만드는 법
1. 상추를 깨끗이 세척한 후 용기에 차곡차곡 담는다.
2. 분량의 양념과 물을 잘 섞은 뒤 상추/찔레순과 골고루 버무려 준다. 
3. 실온에 하루 두면 물김치가 완성된다. 4.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보관한 뒤, 삶은 소면과 함께 내면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