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백고좌] 반야불교연구원장 요산 지안 대종사
“큰마음을 가져라…크게 행하면 아플 일이 없다” 부처님 말씀 ‘큰마음 가져라’ 가르침 본래 마음은 모든 역경을 능히 이겨 크게 이해하면 오해하는 마음이 없어 내 자신과 세상 환히 밝히는 연등처럼 ‘자리이타’는 밝음이 있을 때 나타난다 “스스로 밝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영축총림 통도사 반야암에 들어서니 하얀 불두화가 눈부시다. 바람소리에 연초록의 잎들은 술렁이고,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청량한 법문을 들려준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반야불교문화연구원장 요산 지안 대종사를 주석처인 반야암에서 친견했다. 지안 스님은 지난해까지 현대불교신문에 5년 넘게 〈능엄경〉 〈법화경〉 〈승만경〉 〈대승기신론〉 〈임제록 강설〉 〈선화의 향기〉를 연재했다. 어려운 경전을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풀어 쓴 글이라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먼저, 최근 근황에 대해 여쭸다.
“오전에 반야암 주변을 포행하는데 날마다 변하는 산빛이 참 아름다워요. 〈법화경〉 출간을 위해 경전을 보거나 원고를 보고 있어요.”
짧게 근황을 이야기 한 뒤, 은사스님에게 받은 가르침을 여쭸다. 지안 스님은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고, 월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구족계를 수지했다.
“은사 벽안 스님은 공사(公私)가 분명하여 실언이 없고, 평생 하심의 자세로 살았어요. 그리고 법도에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가장 청백한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벽안문도회에서 은사스님을 추모하는 문집을 발간할 때 책의 제목을 〈청백가풍의 표상〉이라고 지었어요.”
지안 스님이 계를 받고 나서 은사스님께 인사를 드리니 “중 노릇을 잘하려면 금생에 네가 안 태어난 셈 치고 하면 된다”라고 말씀했다. 스님은 ‘이미 태어났는데 어떻게 안 태어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책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때로는 수행자인 스님들이 못마땅하게 느껴질 때나, 화가 날 때면 ‘내가 이 세상에 안 태어난 셈 치고 살아 왔는데’라며 은사스님의 경책을 되새겼다. “은사스님의 말씀이 평생 경책하는 가르침이 되어 스스로를 조복하면서 하심하게 된다”는 지안 스님의 말씀에서 은사에 대한 무한한 공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통도사에는 근현대 불교 선지식들이 많았다. 지안 스님이 계를 받은 월하 스님, 극락암에 주석하며 승풍을 진작한 경봉 스님 등등. 그 시절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안 스님은 “어른스님들이 계서서 수행 가풍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고 술회했다.
“그때는 경봉 노스님, 월하 노스님을 비롯하여 존경하는 어른스님들이 계셔서 수행 가풍에 대한 신뢰가 높은 분위기였어요. 어른스님들의 이름만 생각해도 뭔가 좋은 스님의 이미지가 되살아나고, 우리 스스로도 잘해보려는 의지가 생겼지요. 경봉 노스님께서 하신 법문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출가 후 지안 스님은 통도사 극락암에서 해마다 모시는 삽삼조사(三祖師) 다례재에 처음 참석했다. 삽삼조사(三祖師)는 인도의 28조(祖)와 중국의 혜가 스님, 승찬 스님, 도신 스님, 홍인 스님, 혜능 스님을 가리킨다. 당시 경봉 노스님께서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고는 법문을 설했다.
“경봉 스님은 ‘오늘은 법사가 법상에 오르기 전에 이미 법문은 다해 마쳤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는 ‘오늘 법문은 제사상에 차려져 있는 메밥은 희고, 김은 검다’라는 한마디를 더 남기시더니, 주장자를 탕 탕 탕 세 번 치고는 법상에서 내려오셨어요. 그 당시 법문의 깊은 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묘한 여운이 남았어요. 경봉 노스님은 통솔하는 리더십이 탁월했어요. 산중을 다스리는 노스님을 뵈면서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되었어요. 월하 노스님은 말없는 감화력이 있었어요.”
지안 스님은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바로 통도사 승가대학 강주 소임을 맡아 후학 양성에 힘썼다. 또 조계종 종립 승가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강주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강주를 맡게 된 것은 우연이었고, 부족함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냥 좀 맡아달라고 하기에 맡게 됐다”고 말했다.
선방에서는 하루종일 앉아서 화두를 참구하듯이 감로당에서 공부하는 학인들은 사집반 과정을 마칠 때까지 하루종일 책을 읽어야 했다. 어느 날 월하 스님이 “오늘은 왜 감로당 학인들의 책 읽는 소리가 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강사인 지안 스님이 “감로당 학인들이 울력을 가서 그렇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 당시엔 학인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강사를 불러서 따질 만큼 후학들의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학인스님들이 다 외워야 진도가 나갈 수 있어요. 그러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요. 예전엔 감로당에서 책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교과목도 개편되었고, 책 읽는 소리가 옛날처럼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은 어차피 변해가는 거지만 옛날의 절집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안 스님은 2011년 사단법인 반야불교문화연구원을 창립했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반야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하게 된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일반인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종교는 신앙심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기복신앙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을 자주 다니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지인이 하는 말이, 일본은 중고등학교 교사나 대학 교수들은 6할이나 7할이 불교를 강의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은 아마 10명 중에 1명이 될까 말까, 아마 한 명도 안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 말이 저에게 연구원을 설립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지식인들에게도 불교가 바로 전달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지성화’를 주장해 왔습니다.”
스님은 기존에 전통적으로 해오던 신도 교육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수준 높은 불교 강좌를 열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주위 불자 교수들이 ‘연구원을 만들라’는 조언을 해줬고, ‘반야불교문화연구원’ 창립으로 이어졌다.
반야불교문화연구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불교강좌를 15년 동안 개최해오고 있다. 매년 세미나도 열고 있다. ‘반야불교 학술상’을 만들어서 매년 9월에 시상식을 하는데 올해로 14회를 맞이한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는 불교와 인문학을 접목해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대학교 교수들을 강사로 초빙하고 있으며, 강의 테마는 개강할 때마다 달라진다. 2024년 봄에는 ‘치유의 인문학’이라는 테마로 강좌를 열었는데, 70명이나 등록했다. 반야불교문화연구원은 지난해에 학술지 〈프라즈냐(prajna)〉를 창간했다. 학술지 명칭인 ‘프라즈냐’는 깨달음에 이르는 뛰어난 지혜인 ‘반야(般若)’를 의미한다. 학술지를 창간한 배경과 지향점이 궁금했다.
“〈프라즈냐〉에는 논문 주제는 자유로이 쓰지만, 어떤 분야에 대해 원고를 의뢰하기도 합니다. 수준 높은 논문도 있어요. 원고 주제들은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불교적인 입장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기후위기, 전쟁, 질병 및 계층 간의 갈등과 기계문명의 문제점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원리를 불교에서 찾아보는 기획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불교의 지성화’를 주창하는 지안 스님에게 불교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먼저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삶의 지혜와 복덕을 성취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어요.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요. 마음의 정체에 대해 가장 차원 놓은 이론적 설명을 해놓은 책이 〈대승기신론〉입니다.
모든 분별은 자기 마음을 분별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일체분별 불별자심(一切分別 分別自心), 일체 법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고 망령된 생각에 의해 차별이 생기므로 결국 모든 분별은 자기 마음을 분별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존재의 중심이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이 빚어낸 경계가 마음 밖에 따로 있을 수 없어요. 마음을 따라 생기고, 마음을 따라 없어지는 법의 허망성이 거울에 나타나는 영상과 같아 실체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마음이 생기면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법이 없어진다는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지안 스님께서는 〈금강경〉을 2만여 번 독송했다. “이렇게 많이 읽다 보면 경안이 열리게 된다”는 게 지안 스님의 설명이다. 세종대왕의 독서법은 어떤 책이든지 백독을 하는 것이었단다. 어려운 경전도 백 번을 읽으면 이해하게 되니, 경전도 다라니 외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 독서에 대한 스님의 철학이다.
실제 지안 스님의 글에는 플라톤,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 등 서양의 많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독서의 철학이 남다른 만큼 그 스펙트럼도 폭이 넓다. 스님은 “별로 대단한 건 아니라”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지요. 중학생 때는 수업 마치고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었어요. 책에 빠져 살았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성적이 떨어지거나 그런 일은 없었지요. 시골의 작은 도서관이긴 하지만, 주위에서 ‘도서관의 책은 거의 다 읽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 습이 남아있어 책을 읽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예전 만큼은 책을 읽지 못해도 지금도 매일 2~3시간은 책을 보면서 생활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한 번 형성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좋은 습은 익히기 어렵지만, 한 번 몸에 밴 좋은 습관은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편이 된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 마음과 시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서로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하여 법문을 청했다.
“생각이 움직이는 것을 생멸심이라 합니다. 생멸심이 곧 시간입니다. 생멸심에 의해 시간의 장단이 느껴지지요. 잠을 잘 때는 시간을 못 느끼는 것처럼 생멸심을 여윈 선정 상태에서는 시간의 장단이 없어요. 번뇌가 있는 마음에서는 길고 짧은 시간 의식이 일어나지만 삼매에 든 상태에서는 시간을 느끼는 의식이 없어져 시간을 초월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이 곧 생각입니다. 시간의 단위 중 ‘찰나’라는 말이 있는데, 한자로 번역하면 염(念)이 됩니다. 1찰나가 일념입니다. 1찰나에 900생멸이 있다고도 합니다. 현대 시간으로 말하면 1초에 75찰나가 있다는 말이 있어요. 생각이 일어날 때 시간이 진행되는 거예요. 시간은 생각이 움직이는 겁니다.”
스님께서는 더 중요한 것은 “사바세계에서 시간은 중생들의 업보가 들어있어 겁탁(劫濁)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 겁탁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전염병이 돌며 천재지변에 의한 재앙이 일어난단다.
“일상에서 나타나는 사고와 사회에 물의를 빚는 일들, 또 거대한 재해 등이 모두 시간이 오염된 결과이지요. 반면에 이 시간의 오염을 해소하는 일은 무상(無常)을 깨닫고 시간 의식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찰나무상을 통해 헛된 생각을 벗어버리고 참자아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제도하는 길입니다.”
생각이 오염되면 시간이 오염된다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 수행한다는 것은 자성청정심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내 마음을 닦는 것이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며, 인류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의 우울과 불안에 대해서 좋은 방안이 없을까요?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합니다. 어떻게 살면 될까요?”
“어떤 사람이 스님에게 ‘날씨가 이렇게 더울 때는 어떻게 하면 더위를 이길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스님은 ‘벌겋게 달아있는 난로 속으로 들어가면 될게야’라고 답했어요. 더워 죽겠다는 사람에게 뜨거운 난로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니 엉뚱하기 짝이 없지요. 큰 더위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작은 더위쯤은 수월하게 넘길 수 있겠지요. 우리가 힘든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크게 먹으라’고 합니다. 사실 마음을 크게 먹고 살면 괴로움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어요. 우리의 본래 마음은 모든 것을 이기는 마음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큰 마음을 가져라는 가르침입니다. 크게 이해하면 오해하는 마음이 없어요. 큰마음으로 크게 행하면 아플 일이 없지요.”
부처님오신날 즈음인 만큼 지안 스님께 현대불교신문 독자들에게 좋은 말씀을 청했다.
“우리가 등을 켜는 것은 자기 마음을 밝히고, 세상을 밝게 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자리이타는 밝은데서 나옵니다.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교의 인생관이 되어야 하며, 내 스스로 밝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씀 마친 지안 스님은 환히 웃어보였다. 스님의 미소엔 말씀하신 ‘밝은 마음’이 담겨있는 듯했다. 반야암의 계속 물소리도 밝고 청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