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경전에세이] 11. 〈법구경〉(담마빠다) ②
얇은 법구경, 두꺼운 법구경 423개의 게송으로 이뤄진 ‘법구경’ 게송 마다 ‘진리의 말’ 담겨 있어 얇은 법구경은 법구경 게송 자체 두꺼운 법구경, 인연까지 담아내
알고 보면 이야기 창고
인터넷에서 〈법구경〉을 검색하면 늘 ‘담마빠다’가 따라다닙니다. 〈법구경〉을 빠알리어로 ‘담마빠다(Dhammapada)’라고 합니다. 담마는 진리·법, 빠다는 말을 뜻하니 진리의 말, 진리의 말씀이란 뜻이고 그렇다면 〈법구경(法句經)〉이라는 번역이 ‘딱’입니다. 〈법구경〉을 소개하는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경을 찬탄합니다.
“불교도가 아닌 일반 사람에게는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주기 때문에 교양서이고, 불교도들에게는 짧게 서술된 시들의 의미가 광대한 부처님의 가르침과 깊이 연관되어 있어 팔만대장경의 입문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전재성, 〈법구경-담마빠다〉 해제에서
“이 책은 서양의 독자들에겐 불교라는 종교적 배경이 굳이 강조될 필요가 없는 인도의 금언집이나 동양의 금언집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유통되었다.”
-현진 스님, 〈담마빠다〉 머리글에서
“어떻게 해서 그런 조그마한 시편이 그토록 사랑을 받아 오게 되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수록되어 있는 시편 하나하나가 윤리적·종교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철학적으로도 예지가 번뜩이고 있어서 만인의 가슴을 적셔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카무라 하지메, 〈불교경전 산책〉 중에서
“담마빠다는 가장 고층에 속하고 가장 원형에 가깝고, 샘물처럼 순수하고 맑아 감명을 주는 경전이다.(중략) 그 내용이 마치 격언이나 금언처럼 보편타당성이 있는 진리의 가르침이기에 성별, 나이, 종교, 직업, 학식, 지위를 초월하여 어느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일아 스님, 〈담마빠다〉 머리말에서
내 서재 책꽂이에서 손에 닿는 대로 펼쳐 드는 〈법구경(담마빠다)〉의 역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찬탄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저 “좋은 말씀이네”라고 생각하고서 이 경전을 다 읽었다고 여겼다면 진짜 중요한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법구경〉, 제대로 읽어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법구경〉 만나는 첫 번째 방법
거듭 말씀드리지만 〈법구경〉은 시집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자꾸 음미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한 단어 한 단어를 짚어가면서 가만히 마음을 머무르게 하며 읽어가야 하는 경전입니다.
〈법구경〉을 원어로 만나고 싶어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쪽지에 빠알리어 게송을 적고, 뒷면에 단어풀이를 적어서 종일 틈틈이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세 번째 날에 만난 시는 이랬습니다.
“(그가) 나를 욕했고, 나를 때렸고, 나를 이겼고, 내 것을 빼앗아 갔다. 이런 생각을 품는 이들, 그들의 증오는 가라앉지 않는다.”
-김서리, 〈담마빠다〉에서
욕했다, 때렸다, 이겼다, 빼앗았다라는 빠알리어를 음미하면서 이 싯구를 자꾸 읽었지요. 사실 처음에는 내용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할 만한 말이요, 빤한 이야기 아닌가요?
내가 누군가와 갈등을 빚거나 다투고 급기야 원한을 품는 것이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법구경 구절에 심드렁해졌습니다. 그런데 구절을 외려고 자꾸 읽고 되뇌다 보니 문득 세상 모든 갈등과 원한의 원인이 이 네 가지 속에 다 들어 있다는 법구경 구절이 틀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첫째, 상대방이 나를 흉보거나 비난한 경우, 둘째, 상대방이 나에게 물리적 해를 가한 경우, 셋째, 상대방이 나보다 논리정연했거나 세력이 있어 내가 제대로 따지지 못한 경우, 그리고 넷째, 상대방이 내가 아끼는 것을 함부로 가져가 버린 경우입니다.
이것 말고 상대방에게 원망과 미움과 증오를 품는 이유가 또 있을까요? 없더라고요. “웬만해야 내가 참지. 들어봐. 내가 왜 그 사람에게 화가 나 있는지 그 이유를 말해줄게”라고 하면서 자신의 증오와 분노는 더 특별하다고들 말하지만 결국은 위의 네 가지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상대방을 자꾸만 떠올리고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분노와 증오가 피어오릅니다. 잠을 자려고 이불을 덮고 누웠다가 이불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를 화나게 만든 장본인과 마주치면 우물쭈물하는 내 자신! 이런 내가 밉고 서글픈데, 어쩌면 좋을까요.
잘못이 내 쪽에 있다면 시원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면 끝날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를 이토록 서운하게 만들고 모멸감을 느끼게 해도 되는가 말이다’라며 우리는 상대방을 미워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이 꼬였으면 잘 풀어야 하고, 일을 망쳤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상대방에게 증오를 품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을 망친 상대방을 향해 미움과 분노, 증오를 터뜨리느라 일을 바로 잡을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법구경의 다음 구절에서는 ‘증오는 가라앉지 않는다’라고 한 것입니다. 증오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사람들은 일단 악감정에 얽매이고 더 얽혀들어 문제 해결을 아예 망치고 맙니다.
내 분노 바닥에는 상대방이 내게 끼친 네 가지 이유가 있는 것이니, 그런 줄 알아차리면 분노는 가라앉습니다. 무조건 “화내지 마라”라고만 할 일도 아닙니다. 그냥 참고 지내라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먼저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빤하기 이를 데 없는 싯구인데 이 구절을 외우려고 자꾸 읽으며 생각하다보니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는 현대인들의 실상을 부처님이 제대로 짚어내셨구나 싶습니다.
자, 문제는 어떻게 해서라도 증오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싯구에 담겨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증오는 결코 증오에 의해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에 의해 가라앉는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법칙이다.”
-김서리 역주 〈담마빠다〉에서
〈법구경〉을 잘 만나는 첫 번째 방법은 이렇게 시 한 수를 자꾸 음미하면서 그 속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그러다보면 내게 일어난 일들도 떠오르고, 불쑥 묵은 감정이 솟구치기도 해서 애써 진정시킨 마음에 파문이 일어나 괴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경전을 몸으로 읽는 방법입니다.
싯구 하나하나에 내 이야기와 내 감정과 인간관계들이 펼쳐지면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 수씩 해서 423편의 시를 다 음미하려면 1년도 더 걸리겠지만 이것도 경전으로 하는 수행이라 생각한다면 아주 괜찮은 수행법일 것입니다.
모든 시에는 사연이 있다
가수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 좋아하시나요? 강원도 사람인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 머리가 시리도록 맑고 추운 날씨에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길이 떠오릅니다. 양양에 살고 있던 친척 집을 방문하고서 서울 올라오면서 그 길을 지나쳤지요. 아버지는 그리고나서 오래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노래는 정덕수 시인의 〈한계령에서1〉이란 시에서 가져왔습니다. 시인이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견디다 못해 가출해서 서울로 올라온 뒤에 온갖 고생을 하며 지내다가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고향인 설악산을 찾은 길에 오래 전 자신이 떠나온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풀어낸 시입니다.
그저 모든 것 다 내려놓으라는 탈속(脫俗)의 메시지보다, 진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은 사람에게 ‘네 마음 다 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라는 늙은 부모의 손짓이 느껴집니다.
사실, 이 세상 모든 시에는 저마다 사연들이 다 있지요. 구구절절한 사연을 짧은 몇 구절 속에 녹여내거나 살짝 감춘 것이 시입니다. 〈법구경〉 이야기로 다시 돌아갈까요? 〈법구경〉 속 423개의 시(게송)도 그렇습니다. 저마다 배경 이야기가 있습니다. 배경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책은 ‘법구경 인연담’으로, ‘법구의석(法句義釋)’이란 이름으로 불립니다.
저 유명한 붓다고싸 스님이 지었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이견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시에 ‘옛날 옛적에…’하면서 사연이 다 따라붙으니 법구의석은 얼마나 두껍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법구경을 사서 읽으면 좋은가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서점에 가셔서 일단 그 두께를 보십시오. 얇으면 온전히 법구경 그 자체인 것이고, 아주 두꺼우면 법구경 인연담(법구의석)입니다. 얇은 법구경을 읽으셔도 좋고 두꺼운 법구경을 읽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