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전형 모두 가치…본격 연구 시작된다

[봉축특집] 태초의 성보, 가사 -‘가사작법’전통 전승 어떻게? 전통가사 제작 매뉴얼 없어서 원형 파악하는 연구 쉽지 않아 가사원 설치해 대량생산하자 전통기법 전승 관심도 낮아져 최근 가사작법 중요성 높아져 조계종 6월 중 연구용역 예정 ‘가사명장’ 무상스님 지정 유력

2024-05-20     윤호섭 기자
전통가사를 만드는 밑그림인 가사초. 명천 스님 작품. 사진=정승용 작가

가사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탄생해 불교의 역사와 함께해왔지만 가사 짓는 일에 대한 사료는 극히 제한적으로 전해진다. 율장에 ‘안타회’ ‘울다라승’ ‘승가리’ 삼의(三衣)를 분류하고, 가사로 인정받을 수 없는 조건 등이 언급돼 있긴 하지만 불교는 2700년간 전 세계에 전파되며 각 지역 토착문화와 융합해 많은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고려가사 고리 일습. 명천 스님 작품. 사진=정승용 작가

삼국시대에 공인돼 점차 퍼지기 시작한 한국불교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며 시대에 따른 가사의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가사 제작에 대한 일종의 매뉴얼과 조선시대 이전 실물 가사가 현전하지 않아 무엇이 전통이고 원형인지 파악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불교 장자종단인 조계종의 경우 2006년 삼보륜이 직조된 지금의 ‘통일가사’를 도입하면서 조선시대 주류를 이뤘던 홍가사는 태고종의 상징으로 남았다. 조계종은 스님들의 가사가 통일되지 않아 승복업체 로비 의혹이나 원단 공급에 대한 독점 논란이 암암리에 불거지자 통일의제 확립을 위해 가사원을 설치하고, 모든 스님들의 가사 제작을 일원화했다. 다만 1980~90년대 늘어난 스님 수에 맞춰 가사의 대량생산이 요구되면서 전통제작기법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몇 년 전 서울 봉은사는 가사 전시인 ‘한국 전통 가사의 과거와 현대전’을 개최하고, 가사 바느질을 중심으로 한 서울시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지만 일부 반대로 인해 무산된 바 있다. 이로 인해 가사제작을 비롯해 가사점안 등의 의례의식을 포함한 통합적인 가사작법 연구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조계종은 지난 3월 열린 제230회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진각 스님(통도사)이 가사작법의 보존과 전승에 대한 종책질의를 한 뒤부터 조금씩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가사의 특징 중 하나인 통문(通門).

진각 스님은 〈현대불교〉에 “가사는 승속을 구분하는 옷으로, 일반인들이 입진 않는다. 전법의 증표로도 의미가 있고 일반 옷을 만드는 과정과도 차이가 크다”며 “불교 고유의 전통문화가 산발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 데 묶어 거점을 마련하고 체계적인 무형유산으로 전승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와 관련,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는 지난 5월 7일 성보보존위원회 무형분과 회의에서 ‘가사작법 조사 관련 심의의 건’을 논의했다. 회의에선 무형문화유산 지정 추진에 앞서 가사작법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용역을 거쳐 현황 파악에 나설 것을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종 법계품서식에 사용되는 가사봉투.

문화부장 혜공 스님은 “소중한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선 무형문화유산 지정이 필수적이고, 불교만의 노하우가 정리돼야 가능한 일”이라며 “연등회보존위원회와 같은 무형유산의 주체도 필요하다. 연구용역을 통해 충분한 타당성이 입증된다면 가사작법보존위원회 같은 단체를 조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보보존위원회 차원의 연구용역은 다음 달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통일가사 도입으로 원형과 차이가 커진 조계종은 원형뿐만 아니라 전형(典型)으로서의 가치도 조망할 계획이다. 원형 보존을 중심으로 하던 기존의 무형유산 지정은 최근 전형 추세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전형은 같은 종류의 여러 것 가운데 가장 본질적으로 일반적인 특성을 지닌 본보기를 뜻한다.

문화부장 혜공 스님은 “지금의 쥐불놀이에 신라시대 원형의 잣대를 적용하기보다는 원형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현 시대에 어떻게 전승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곤 한다”며 “통일가사가 전통가사와 다른 모습이라고 해도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가치와 제작방식은 동일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조계종은 지난달 15일 ‘2024 대한불교조계종 명장 접수 공고’를 내고, 한 달간 불교문화의 전문 기능을 보유한 스님들의 명장 신청을 받았다. 부문은 불교문화 전반으로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20년 이상 종사하고, 명장 선정 분야에서 최고의 기능을 보유했다고 인정되는 스님을 대상으로 한다. 가사 부문에는 조계종 가사원 도편수인 무상 스님이 접수된 가운데, 종단 가사 제작을 대표하는 스님인 만큼 명장 지정이 유력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