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바느질 몇 뜸으로 악연 끊어내다

[봉축특집] 태초의 성보, 가사 -가사 공양과 불사 공덕 '청평사와 평양공주' 평양공주 사랑한 당나라 평민 뱀으로 환생해 공주 곁에 붙어 공주가 무심코 동참한 가사불사 10년간 괴롭힌 뱀, 벼락에 죽어

2024-05-20     무상 스님/조계종 가사원 도편수
그림 김상규

아름다운 호수가 유명한 호반의 도시 춘천. 한때 젊은이들의 여행 성지였던 이곳엔 꽤 규모가 큰 전통사찰 청평사가 있습니다. 사시사철 빼어난 풍광으로 등산객과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도량입니다. 청평사를 관심 있게 다녀오신 분이라면 이 도량에 가사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는 걸 아실 겁니다.

당나라의 한 평민이 당 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워낙 미모가 빼어나 그 일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했던 공주이기에 이 청년이 품은 연정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감히 마음을 표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머니, 나 공주 좀 보게 해주세요. 공주가 아니면 나는 죽습니다.”

점차 병세가 악화돼 몸져누운 상황에서도 청년은 좀처럼 공주를 잊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거듭된 애끓는 소리에도 어머니는 방도가 없었습니다.

“나라에서 그 얘기를 들으면 5족을 멸할 거다. 감히 그런 생각일랑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 장가도 가고 건강을 되찾는 게 어떻겠니?”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도 고집 많은 청년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잃는 그 순간 맹세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죽어서라도 몸을 바꿔 그녀와 함께 하리라.’

하루는 공주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몸이 이상해서 살펴보니 난데없이 뱀 한 마리가 자신을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기겁한 공주는 부모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왕과 왕후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뱀을 떼어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죽어서라도 공주를 사랑하겠다던 청년이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상사뱀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해결되지 않아 고민을 거듭하던 공주. 공주는 마침내 자신이 기거하는 궁을 버리고 길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 맘껏 세상을 돌아다니고 산천경계를 자유롭게 구경하다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거지 옷차림을 하고 이 산 저 산을 오르내리다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람들은 공주를 감싸고 있는 뱀을 보고 질겁해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며내 공주는 중원을 다 돌았으나 그를 치료할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에서 금강산을 알게 됐습니다. 기암절벽이 만불산을 이루고 사계의 산색이 저마다 달라 가히 천하의 명산이라 하니 금강산을 한번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공주는 배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왔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길을 잘못 들어 영서로 빠져 공주는 지금의 춘천 땅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곳에도 금강산처럼 유명한 곳이 있는지 궁금했던 공주. 사람들에게 귀동냥을 하니 청평천 건너편 청평사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왕 오게 된 곳, 공주는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몸에 꼭 달라붙어있던 상사뱀이 요동을 하면서 청평사에 들어가려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10년이나 함께하며 어느 곳에서도 떨어진 적이 없던 상사뱀인데 이날만은 유독 청평사 회전문 앞에서 이상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내가 너와 상종한지 10년이다. 처음에 두어 번 너를 떼어본 뒤로는 한 번도 너의 마음을 거슬려 본 일이 없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내가 좋아하는 절 구경도 하지 못하게 하느냐? 만일 네가 싫거든 잠시 여기에 떨어져 있어라. 그러면 내가 절 구경을 하고 돌아와 너와 함께 가리라.”

뱀은 그 말을 듣고 칭칭 감고 있던 몸을 풀어 넓은 바위 아래 똬리를 틀고 앉았습니다. 10년 만에 처음 홀몸이 된 공주는 그 개운함에 하늘을 나는 듯 기뻤습니다. 공주는 사찰 옆 계곡에 들어가 몸을 씻고 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밥 때가 되어 스님들은 다 큰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절에서는 가사불사가 한창이었는데, 빈 법당에 아름다운 비단 조각이 바늘과 함께 널려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공주는 무심코 들어가 아름다운 비단을 어루만지며 바늘로 몇 땀을 떴습니다.

“어디서 빌어먹는 거지가 들어와 신성한 가사불사를 망쳐 놓느냐!”

바느질을 하던 공주를 보고 스님들이 나와 호통을 쳤습니다. 스님들은 노발대발하며 거지행색의 공주를 꾸짖었습니다. 화들짝 놀란 공주는 결국 회전문을 지나 절 밖으로 나오려는데 갑자기 마른하늘에서 뇌성벽력이 내려쳤습니다. 공주를 기다리다 지친 상사뱀이 절 안으로 들어가려다 회전문 앞에서 벼락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뱀은 그 자리에서 새까맣게 타 죽었고,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원치 않게 뱀과 함께 삶을 보내온 공주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 길로 다시 청평사 대웅전으로 뛰어 들어가 부처님께 백배, 천배 절을 올렸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부처님의 영험하신 신통력입니다. 스님들께서 입는 무상복전의를 만진 큰 공덕 덕분입니다. 아무쪼록 이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공주는 대웅전을 나와 후원에 들어가서 주지스님을 뵙고 말했습니다.

“이 절에 종노릇이라도 하고 싶으니 자비로 허락하여 주십시오.”

거지차림으로 가사불사 현장에 들어와 비단을 만진 모습이 탐탁지 않았지만 스님은 공주의 간곡한 요청에 마지못해 승낙했습니다. 행색은 초라했지만 결연한 눈빛과 올곧은 자세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공주는 절에서 밥을 짓고 찬도 만들며, 때로는 밭에 나가 김도 맸습니다.

얼마가 지나고 하루는 대중스님들이 가사불사를 마친 뒤 공사를 하는데, 서로 화주를 맡지 않으려 손사래를 치고 있었습니다. 공사는 퇴락한 큰 법당을 중수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얘기를 후원에서 듣고 있던 공주는 단정히 옷깃을 여미고 스님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화주는 제가 맡겠습니다. 소녀가 비록 미약하오나 부처님의 은혜가 지중하므로 이 불사는 제가 홀로 맡아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공주는 붓과 벼루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손끝으로 춘천부사와 강원감사에게 각각 편지를 한 통씩 써 전했습니다. 이 편지가 닿자마자 춘천부사와 강원감사는 한달음에 찾아왔습니다.

“공주마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공주님이 내국 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수소문하던 참인데 잘 되었습니다.”

공주를 만난 춘천부사와 강원감사는 조정에 알려 법당을 중수할 돈과 곡식, 노역을 나라에서 맡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사찰 안에 삼층석탑을 세워 이 일을 기렸습니다. 이것이 현재 춘천 청평사에 전해지는 가사불사와 얽힌 설화입니다.

청평사 설화 알고 가기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7세기 인물인 당 태종 이세민과는 그 시기가 맞지 않아 항간에는 평양공주가 14세기 원나라 황제인 혜종의 딸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또한 역사를 살펴보면 평양공주는 당 태종이 아닌 당태종의 아버지 당 고조 이연의 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진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전해주는 의미와 상징을 돌아봐야 한다는 뜻이죠.

지금도 청평사에는 이런 설화와 함께 계곡에 평양공주의 동상과 공주가 목욕재계를 했다는 공주탕, 공주가 절에 들어가기 전 하룻밤을 묵었다는 공주굴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사불사의 영험함을 기리는 삼층석탑은 또 다른 이름인 ‘공주탑’으로도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