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작법’은 무형유산…전승은 ‘빨간불’
[봉축특집] 태초의 성보, 가사 [커버스토리] 가사 짓는 전통이 사라진다 교단 발전하며 복식 필요해져 불제자·외도 구분하는 가사 부처님 지시로 아난이 만들어 오래전부터 ‘가사불사’라 칭해 가사단 규율도 선방 못지않아 교단서 가사짓는 일 관심 저하
선재해탈복(善哉解脫服)
무상복전의(無上福田衣)
아금정대수(我今頂戴受)
세세상득피(世世常得被)
옴 마하가바바다 숫제 사바하(3번)
훌륭하도다 해탈복이여
위없는 복 밭의 가사여
이마에 공손히 받드노니
널리 모든 중생 제도하리
-가사정대게-
불교 袈裟의 탄생
세 가지 가사(袈裟)와 발우 하나, 삼의일발(三衣一鉢). 불교의 탄생과 함께한 태초의 성보다. 출가수행자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의발(衣鉢)이자 때로는 불제자를 외도들과 구분 짓는 수행 방편이다. 선종에선 스승이 제자에게 의발을 전수하며 자신의 법맥이 계승됐음을 증명할 정도로 큰 의미를 갖는다.
26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무상정등각을 이루고 다섯 비구에게 진리를 설한 이후 불교는 개인을 넘어 교단의 형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부처님에게 법을 전해 듣고 깨달음을 얻는 수행자들이 늘어나 불교의 교세가 점차 커지자 일부 외도들은 불교를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됐다. 외도들이 일부러 범계를 저지르고 스스로를 불교도라고 사칭하니 불교에 대한 대중의 오해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로써 불교는 대외적으로 불교도를 구분할 수 있는 복식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십송율(十誦律)>을 비롯한 율장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선 제자인 아난과 함께 왕사성 남쪽으로 유행하며 논과 밭두렁이 가지런하게 정비된 것을 보고 법의를 만들도록 했다. 외도와는 차별화된 복식을 마련해 불교도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고, 교단이 발달하면서 허름한 옷의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진 것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장례를 치를 때 사용한 천이나 병자의 피가 묻은 천과 같이 사람들이 버린 천을 세탁해 입던 분소의(糞掃衣)에서 벗어나 대중성과 편의성을 적당히 갖춘 불교만의 복식이 탄생한 것이다.
가사를 만들 때는 큼지막하고 좋은 천을 굳이 조각으로 자르고, 청·황·적·백·흑의 정색을 피해 일종의 잡색인 탁한 느낌의 괴색으로 물을 들였다. 옷감에 대한 가치를 낮춰 수행자로서 잘못된 애착을 줄이게 한 것. 논밭 형태로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드는 지금의 가사인 ‘할절의(割截衣)’는 그렇게 탄생했다.
한국불교의 ‘가사불사’
한국불교는 오래전부터 가사 짓는 일을 ‘가사불사(袈裟佛事)’라고 했다. 불사(佛事)라고 표현할 만큼 값지고 무엇보다 불교적이라는 뜻이다. 가사 한 벌 쉬이 구할 수 없던 1960~70년대만 해도 제법 큰 절에서 하던 가사불사는 100여 명이 모여 같은 원력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대작불사였다. 가사에 침이 튀지 않도록 입을 가리는 구포를 쓰고, 바느질 한 땀마다 관세음보살을 외던 시절. 가사불사에 동참할 때는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중간에 해우소라도 다녀오려면 헌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만큼 가사단의 규율은 선방에 못지않았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가사불사 전통은 역사로만 전해질 위기에 처했다. 윤달이 든 해에 일부 총림에서 가사단을 꾸리고 가사불사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수십 년 전 스님들이 직접 가사를 만들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며 대량 제조가 가능해져서일까, 아니면 이제는 승복집에서 돈을 주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교단 내에서 손수 가사 짓는 일에 대한 사부대중의 관심이 낮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1960년대부터 손수 가사를 지었던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나주 심향사 주지인 성오 스님과 법주사 율주이자 조계종 가사원 도편수 무상 스님은 어느덧 팔순에 가까운 나이가 됐다. 전통가사를 공부해 고려·조선시대 가사를 재현하는 함양 향운암 주지 명천 스님도 환갑을 넘겼다. 이제는 누가 전통을 이어갈지 알 수 없는 현실이다.
불상을 조각하거나 불화를 그리는 이들을 흔히 불모(佛母)라고 높여 부른다. 우리는 가사 짓는 일을 ‘불사’라고 하면서 가사 만드는 이들을 무엇으로 불렀는가. 불상이 없어도, 불복장이 없어도 불교 고유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지만 가사가 없다면 불교라고 할 수 있을까.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가사작법의 의미와 방법, 가사의 전래, 가사불사 공덕, 전승 과제 등을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