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축 지상백고좌] 태고종 종정예하  운경 대종사

“자비 실천하라…여래에 한걸음 가까워지리니” 부처님, 전염병 창궐 베살리 구호 재난 구제 7일 만에 역병 사라져  슬픔 나누는 것이 불자 실천 덕목

2024-05-15     유응오 작가
본지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태고종 종정예하 운경 대종사를 예방하고 법을 청했다. 이 자리에서 운경 스님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한걸음씩 여래에 가까이 가는 길”임을 설하며, 불자들에게 ‘자비행’을 당부했다. 사진=신중일 기자

운경 대종사의 회고송(懷古頌)

팔십성상(八十星霜) 여영상(如映像)
행봉불법(幸逢佛法) 각주객(覺主客)
작일역래(昨日亦來) 기내일(旣來日)
침식기좌(寢食起坐) 미미소(微微笑) 

팔십여 년이 영상같이 지나갔지만
다행이 불법을 만나 주객을 알았다.
어제가 돌아오고 내일이 지나갔지만
침식의 나날 중 일어나 앉으니 실로 우습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태고종 종정예하인 운경(雲耕) 대종사에게 법문을 듣기 위해서 백련사를 찾았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소재한 백련사(白蓮寺)는 한국불교태고종의 3사(봉원사, 백련사, 청련사) 중 하나로서 신라 경덕왕 6년(747) 진표율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수행도량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시점이어서 백련사에는 사명(寺名)에 걸맞게 각 전각(殿閣)과 당우(堂宇) 앞은 물론이고 경내 마당에도 각색의 연등들이 걸렸는데, 그 곱고 단아한 자태가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들을 떠올리게 했다. 

꽃잎이 필 때 씨방도 함께 여무는 까닭에 연꽃을 인과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연화지에 가면 이제 갓 봉오리가 맺힌 연꽃과 활짝 꽃잎이 피어난 연꽃, 이미 꽃잎이 진 연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전세, 현세, 내세 등 삼세(三世)를 의미한다고 한다. 도량을 수놓은 연등들을 보면서 필자는 아득한 전생부터 니전(泥田)에 피어난 백련(白蓮)처럼 더러운 곳에 있어도 항상 청정함을 잃지 않았던(處染常淨) 수행승들이 있었기에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에 물든 중생들의 사바세계(娑婆世界)에도 깨달음의 향기가 세세생생 이어졌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백련사는 운경 스님이 설봉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한 도량이다. 그 법맥을 계승하기 위해서 운경 스님은 평생 동안 깨달음을 구하고 얻고 지켜왔다. 운경 스님은 백련사 주지 재임 시 친일파 이해승에게 뺏겼던 사찰 토지 4만7643㎡를 되찾기도 했다. 토지를 되찾고 열린 법회에서 운경 스님은 ‘백련사 일대 토지 봉증 발원문’을 낭독했는데 이 발원문을 듣고서 백련사의 원로스님들이 눈물을 장삼 소매로 닦았다고 한다. 

당시 운경 스님은 “백련사가 부처님께서 가르치는 근본 원력인 수행으로 정각(正覺)을 이루는 희유(稀有)한 도량이 되게 하시어 불음(佛音)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지고 세계만방에 불광(佛光)이 더욱 빛나고, 육도의 모든 중생들이 윤회에서 해탈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달라”고 발원했다. 

필자 일행이 삼배를 올리자 운경 스님도 맞절을 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 운경 스님의 수행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법체 청안하셨느냐”는 필자의 인사말에 운경 스님은 “낮에는 환하고, 밤에는 어둡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편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운경 스님의 대답은 〈벽암록(碧巖錄)〉제3칙 ‘마대사불안(馬大師不安)’의 주석(註釋)이기도 했다. 원주 스님이 안부를 묻자 마조 스님은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라고 대답했는데, 이에 대해 찰나와 영겁이 다르지 않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에 이르면 냇물소리에서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산색(山色)에서도 부처님의 법신을 볼 수 있다는 게 운경 스님의 견해이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에는 전국 사찰에서 봉축법요식을 봉행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어디서 오셔서 어디로 가신 것일까요”라는 필자의 우문(愚問)에 스님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킴으로써 현답(賢答)했다.  

“부처님은 시방 삼세에 아니 계신 곳 없으시고, 만유에 평등하사 일체 중생을 제도하십니다. 〈선문염송(禪門拈頌)〉에 이르길, ‘미리도솔(未離兜率) 이강왕궁(已降王宮) 미출모태(未出母胎) 도인이필(度人已畢)’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도솔천에 계시면서도 이미 정반왕궁에 오셨으며 어머니 태중에 계시면서도 이미 중생을 제도하셨으니, 불생불멸(不生不滅)한 부처님 공덕은 미래세(未來世)가 다하도록 우주법계에 두루 편재(遍在)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과거 전생에 이미 성불(成佛)하신 분이지만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는 모든 중생(衆生)을 구하고자 세상에 출현(出現)하시고 시현(示現)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실체(實體)는 달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천강(千江)에 비친 달처럼 부처님은 시방법계(十方法界)를 두루 비추고 계십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광명을 통해 나투시기도 하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 않을 때에는 부처님오신날 출현하시어 우리들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불성(佛性)의 씨앗에 싹을 움트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름이 끼어 있으면 달이 보이지 않듯이 마음이 흐리면 부처님의 자비광명의 빛도 반조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항상 맑게 해야 합니다.”

운경 스님은 이어서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곳”에 대해 설명했다. 

“부처님은 먼 데 계시지 않습니다. 우선, 누구나 불성(佛性)을 지니고 태어났으니 자기 자신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다음으로는 부모와 자녀의 인연, 부부의 인연으로 한 집에서 함께 웃고 울며 평생 살아가는 가족들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다음으로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하루 종일 합심해서 일을 하는 직장 동료들, 법회 때마다 만나서 함께 예불을 하는 법우들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같은 해를 바라보면서 일어나서 같은 달을 보면서 잠이 드는 사해동포(四海同胞)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러니 만나는 사람마다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빈부격차도, 지위고하도 따지지 않고 공경하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걸으신 길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것만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부처님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것입니다.” 

운경 스님은 불자가 실천해야 할 최고 덕목으로 ‘자비행(慈悲行)’을 꼽았다.  

“부처님께서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베살리를 직접 방문해 구호활동을 전개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도착하셨을 때 베살리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우선 제자들과 함께 발우에 물을 담아와 뿌리면서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삼보에 귀의하라고 설하셨습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재난 구제에 나선 지 7일이 지나자 베살리에는 전염병이 사라지고 하늘에서 비가 내려 가뭄도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불자들이 실천해야 할 덕목입니다. 여래란 진리의 세계에서 왔다는 의미입니다.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한걸음씩 여래에 가까이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운경 스님의 말을 듣고 나니 “어떤 사람이 무엇이 온갖 선행의 근본이냐고 묻거든 자비심이라고 대답해라. 자비심은 진실해서 헛되지 않고, 선한 일은 진실한 생각에서 일어난다. 신실한 생각이 곧 자비심이며, 자비심이 곧 여래”라는 〈열반경(涅槃經)〉의 구절이 떠올랐다.

운경 스님은 이어 한국불교가 부흥할 수 있는 방법으로 “초발심을 가질 것”을 역설하면서 남허 스님을 모시고 태고종의 기틀을 다졌던 과정을 회고했다.

불교 분규 끝에 태고문손은 한국불교태고종을 정부에 등록했다. 태고종 창립 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터라 남허 스님은 종단이 향후 과제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남허 스님은 도별 종무원 산하에 시·군·구 분원을 조직했고, 불교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불교중흥기원대법회’를 봉행했다. 

‘불교중흥기원대법회’에는 무려 2만여 명이 참석해 장충체육관 안팎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 남허 스님은 “불자들은 최상종승(最上宗乘)을 참수(參修)하여 도생(度生)하고 성불(成佛)함을 목표로 삼고, 원융통화(圓融統和)의 종풍을 계승하여 선(禪), 교(敎), 주력(呪力), 예참(禮懺) 등 각자 근기에 맞도록 정진하며, 자(自)보다는 타(他)를 위하여 불국(佛國)을 이룩하자”고 역설했다. 불교중흥기원대법회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태고종은 1만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수륙재를 봉행한 데 이어 보살계, 구족계, 유발 합동 득도식을 차례대로 봉행했다. 

“초발심을 잃지 않으셨던 남허 스님이 계셨기에 태고종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남허 스님이 걸으셨던 길을 따른다면 한국불교계의 미래도 어둡지 않을 것입니다.” 

운경 스님은 남허 스님을 ‘행정능력과 교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선적(禪的) 혜안을 지닌 선지식(善知識)’으로 평가했다. 실제, 남허 스님은 문병을 가서 의식이 없는 정암 스님에게 큰소리로 ‘놓치지 말라’고 할(喝)을 했고, 그 소리를 듣고서 정암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만나는 모든 이가 부처, 공경하고 공경하라”

부처님은 먼 곳에서 계시지 않아
누구나 佛性 지녔으니 모두 부처
佛法대로 따르는 게 佛恩 갚는 일

3월 30일 서울 서대문 백련사에서 봉행된 종정 추대법회에서 운경 대종사가 추대 법어를 설하고 있다.

필자는 운경 스님이 동안거 해제법어에서 “나는 현현(玄玄)한 무아(無我)이면서 동시에 역역(歷歷)한 진아(眞我)”라고 설하신 의미에 대해 물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내 마음을 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구도자(求道者)는 ‘삼계는 오직 마음이며, 삼라만상은 한 개 마음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달마 대사는 ‘삼계가 혼돈 속에서 일어났으나 본체에서 보면 모두 일심(一心)으로 귀결된다. 과거의 부처님과 미래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들은 마음으로써 깨달은 그 마음을 전할 뿐 말이나 문자를 빌리지 않는다고 설했습니다. 이 가르침을 듣고서 한 사람이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으로 전합니까’라고 물었고, 달마 대사는 ‘지금 그대가 묻는 것이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그대의 질문을 받고서 내가 대답하는 것이 내 마음이다. 만약 그대에게서 마음이 없다면 무엇에 근거해 나에게 질문하는 것을 알 것이며 내게 마음이 없다면 무엇에 근거해 그대에게 대답하는 것을 알 것인가? 오랜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시공간이 모두 그대의 근본 마음이니 이것이 바로 그대의 근본 부처이다. 청정한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이니, 이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를 얻을 수 없고 이 마음을 떠나서 보리와 열반을 찾을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달마 대사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청정한 마음이 곧 보리이고 열반인 것입니다. 마조 선사가 ‘마음이 곧 부처님’이라고 설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운경 스님은 이어서 ‘본원청정심(本源淸淨心)’을 설명하면서 물을 예를 들었다.  
물은 얼면 얼음이 되고 증발하면 수증기가 된다. 고정적 본질이 없지만 고체도 되고, 액체도 되고, 기체도 되는 것이다. 이처럼 본원청정심은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는 게 운경 스님의 설명이다. 

“‘암환주인(巖喚主人)’이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서암(瑞巖) 사언(師彦) 화상은 매일같이 자신을 ‘주인공’하고 부른 뒤 ‘예’하고 자문자답했습니다. 이런 자문자답을 통해서 깨어 있어야 하고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는 자기암시를 걸었던 것입니다. 구도자가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유는 이전의 식신(識神)이 본래 자기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구도자라면 자신의 본성(本性)을 살피는 주인공을 알아야 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운경 스님은 〈열반경(涅槃經)〉에 실려 있는 ‘공덕천과 흑암녀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서 불자들에게 덕담을 전했다. 

“공덕천은 복덕(福德)을 주는 여자이고, 흑암녀는 복덕을 없애는 여자입니다. 이 자매가 찾아와 함께 살기를 청하자 부유한 사람은 거절한 반면 가난한 사람은 승낙했습니다. 공덕천과 흑암녀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일까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구별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르침일까요? 그렇다면 받아들이지 않는 부자는 어리석은 사람이고 받아들인 가난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공덕천과 흑암녀 이야기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공덕천이 주는 행복이 흑암녀가 불행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공덕천으로 인해 아무리 권세를 누리며 잘 산다고 해도, 나중에는 흑암녀로 인해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되고, 공덕천으로 인해 천상에 태어난다고, 나중에는 흑암녀로 인해 육도윤회를 면하지 못하게 됩니다. 공덕천과 흑암녀 이야기의 진정한 교훈은 행복과 불행은, 순경계와 역경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운경 스님은 백련사 경내까지 나와서 필자 일행을 배웅했다. 필자가 “백련사가 왜 서방정토 도량이냐”는 우문을 던지자 이번에도 운경 스님은 현답을 내놓았다. 운경 스님은 먼저 ‘정찰’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정찰(淨刹)’은 ‘청정한 세계의 사찰’을 일컫는다. 그러다 보니 ‘생어정찰(生뭈淨刹) 유심정토(唯心淨土) 후생극락(後生極樂)’에 대한 뜻풀이도 제 각각이다. 혹자는 “살아서 정토에 간다”고 주장한다. ‘생어정찰’의 뜻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현세에서 복락을 누리자는 현실론자들의 주장이다. 다른 혹자는 “마음에 정토”라고 말한다. ‘유심정토’의 뜻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혹자는 “죽어서 정토에 간다”고 한다. ‘후생극락’의 뜻에 방점을 찍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운경 스님은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사견(私見)이지만 세 견해 모두 틀리지 않습니다. 세 견해는 종적으로 횡적으로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살아서 정토에 간다는 견해는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렵습니다. 인생은 고해(苦海)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生), 노(老), 병(病), 사(死),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성음고(五盛陰苦) 등 팔고(八苦)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이 세상을 어떻게 정토로 구현하겠습니까?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에 정토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팔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는 원효 대사의 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원효 대사는 지난밤 마신 물이 해골 속에 담긴 물임을 알고서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골에 담긴 물은 애초 더럽거나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더럽다고 생각하면 더러운 것이 되고 깨끗하다고 생각하면 깨끗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불자라면 마땅히 원효 대사의 화쟁(和諍)정신에 입각해 〈육화경(六和敬)〉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몸으로 화합해 항상 함께해야 합니다.(身和同住)
입으로는 다툼이 없어야 합니다.(口和無諍) 
생각을 함께 하여 어긋남이 없어야 합니다.(意和無違) 
계율을 다 같이 지켜야 합니다.(戒和同遵)
견해를 다 같이 해야 합니다.(見和同解)
이익을 균등해야 나눠야 합니다.(利和同均) 

운경 스님의 말을 듣고 나니 우리가 사는 이곳이 바로 부처님의 집이 아닐까 싶었다. 백련사를 빠져나오는 길, 필자는 〈화엄경〉 ‘탐현기(探玄記)’에 기술된 연꽃의 네 가지 덕이 떠올랐다. 연꽃은 향기롭고 고결하고 맑고 청정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더러운 곳에 있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씨앗이 진흙에 떨어진 뒤에는 썩지 않고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다가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다시 피어나는 연꽃들. ‘불법(佛法)의 인연을 만나 주객(主客)이 따로 없기에’ 연꽃들은 ‘어제가 다시 돌아오고 내일이 이미 지나갔어도 침식의 나날 중 일어나 앉아서 살포시 웃는 것이리라.’ 

태고종 종정예하 운경 대종사는 

1943년    일본 혼슈 야마구치현 출생. 

1959년    서울 백련사에서 설호 스님을 은사로. 금봉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백련사 강원 사미과 및 사교과를 수료하고 법륜사와 선암사에서 대교과를 졸업함. 

1975년    묵담 스님을 계사로 대승계 및 비구계 수지.
태고종 중앙종회의원, 백련사 상임법사, 총무원 종무위원 태고종 보건공제회 전무이사, 월간 〈불교〉 주간 등 태고종 주요 소임 두루 역임. 

1996년    백련사 주지 재임 시 친일파에 빼앗긴 사찰 토지 되찾음.  

2002년    태고종 종권수호위원회 위원 역임. 이후 종단 소임에서 물러나 대중포교와 후학양성에 매진함. 

2016년    부처님과 조사스님께서 밝힌 현현하고 역력한 도리를 새기길 발원하여 23개 불교경전을 해석한 〈제경요제〉출간. 

2017년    태고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고, 2018년 태고종 원로회 원로의원으로 위촉

2023년    태고종 제21세 종정에 추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