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의 미디어 인 붓다] 39. 빌 모리슨 감독의 〈사건〉
사건 인과 영상들로 그려낸 ‘만다라’ 2014년 美시카고 총격 사건 조명 바디캠 등 영상 조합해 진실 좇아
마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곧고 굳은 심지가 있어야 할 나이, 어른이 어른다워야 할 나이, 그러니 이 정도 살아냈으면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쉬이 흔들리지 말아야 어른일 것이다. 그런데 흔들리지 않는답시고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만 고집하면 그것도 흉하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는 불혹이라 하지 않고 ‘꼰대’라고 한다.
사람만 그럴까?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그럴 것이다. 영화로 보자면 창작자와 관객이 함께 만나는 행사인 영화제도 그렇다. 부산에는 부산국제영화제보다 더 오랜 영화제가 있다. 지난 4월 25일부터 30일까지 ‘영화&현실(Cinema&Reality)’이라는 주제로 116개국에서 출품된 3682편의 영화 가운데 국제 경쟁 39편, 한국경쟁 20편을 포함해 총 43개국 136편의 영화가 상영된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잘 어른이 된 영화제다운 품새로 올해의 행사를 치렀다.
하필 개막식을 바로 앞둔 시기에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영화계를 뒤흔드는 발표를 했다. 지난해까지 40여 개 영화제에 52억원 규모로 지원하던 영화제 지원사업이 딱 10개 영화제에 절반 지원으로 혹독하게 줄어들었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다. 그뿐이랴. 국내외 큰 영화제에서 영화진흥위원회가 세계영화인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던 ‘한국영화의 밤’ 행사를 예산이 없다며 아예 없애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뜻을 잘 세우고 자리 잡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제의 모습으로 영화 손님들과 관객들을 맞았다. 영화제 개막에 앞서 먼저 ‘현실, 가상, 그리고 영화’라는 주제로 진행된 포럼에서 현재 영상문화가 겪고 있는 변화의 양상들에 대해 발표와 토론을 통해 이해의 지평을 넓혀간 것도 좋았고, 영화 생태계 안에서 ‘촬영’을 통한 창작이 아니라 ‘발견’과 ‘구성’으로도 놀랍도록 창의적인 시선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파운드 푸티지’ 기법 영화로 이름 높은 빌 모리슨 감독과 함께 한 것은 관객, 이론가, 영화창작자뿐 아니라 모든 세상에게 말 거는 작업이 영화라는 것을 느끼게 한 귀한 시간이었다.
빌 모리슨 감독은 디지털이 일반화되기 이전에 영화의 매체였던 필름 가운데 이미 다른 이들이 찍어놓은 필름-이것을 영화 용어로 푸티지라고 한다-들을 재사용해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가령 2021년 작 장편영화 〈빌리지 디텍티브: 송 사이클〉은 구 소련에서 1969년에 개봉한 〈마을 탐정〉의 푸티지를 사용해서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망실되었다가 아이슬란드의 바닷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빌 모리슨 감독은 이 프린트가 발견되었을 때 구 소련 사람들에게는 그저 예전에 잘 알려진 영화 필름이 버려졌던 것을 주운 것 정도로 넘어갈 일이 서양인의 시선에는 오랫동안 사라졌던 고대의 필름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누구에게 사라진 것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렸다고 한다.
빌 모리슨 감독이 이미 사용된 필름, 이미 만들어진 영화, 촬영되었으나 잊힌 영화 등의 필름 더미들을 재사용해서 영화를 만들어온 까닭은 “왜 이 영화는 보여지지 않는가? 왜 관객이 보이지 않는가”가 늘 의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질문의 범위가 셀룰로이드 필름이라는 물질적 폐기물에서 디지털로 확장된 최근 작품이 이번 포럼에서 논의된 30분짜리 단편영화 〈사건〉(2023년)이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 포럼에서는 영어 원제 〈인시던트〉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에서는 번역 제목 〈사건〉으로 소개되고 있다.
끌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에서 베스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영화는 2014년 시카고에서 경찰관 여럿이 서있던 거리에서 마을 이발사인 라콴 맥도널드라는 청년이 경찰관 제이슨 반 다이크에게 무려 16발이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사망한 사건을 담고 있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영상은 당시 거리에 설치되어있던 CCTV, 현장 상황을 지켜본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직접 찍은 동영상, 주위 자동차들이나 경찰차의 블랙박스 영상, 총격 당사자를 비롯해 그 자리에 있던 경찰관들의 제복에 장착된 바디캠 영상 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감독이 직접 의도하고 촬영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사건을 오직 이미 촬영된 영상들을 발견하고 재구성해서 ‘진실을 알리는 시선과 목소리’로 재구성한 놀라운 작업인 것이다.
경찰이 변명하고, 과장된 행동으로 상황을 왜곡하고, 카메라를 의식해 가며 여론과 언론을 의식한 발언과 행위로 수선을 떠는 동안, 그 현장의 모든 카메라들에 담긴 제각각의 시선과 충돌들이 스크린을 나누고 차지하고 밀려난다. 어떤 일을 우연으로 넘기면 ‘사고(accident)’가 되지만 인과 연을 펼쳐보면 ‘업을 짓는 사건(incident)’이 된다. 그러므로 파운드 푸티지란 영상들 사이의 인연을 발견하고 구성해서 빚어낸 영화적 만다라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극장 스크린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이렇듯 상업영화관이 아니라 단편영화제라는 축제에서 관객과 만나는 영화들은 30분 안쪽의 짧은 시간 안에서 저마다의 고민과 세계관을 담고 있다. 〈범죄도시4〉가 영화관이란 영화관의 모든 스크린을 독차지하는 동안도 영화제들은 이렇게 영화라는 은하계가 펼쳐내는 세계관의 별자리들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개막작이자 한국단편경쟁 최우수작품상으로 선정된 〈내 어머니 이야기〉(김소영, 장민희 감독)는 15분 남짓한 시간 안에 역사와 일생을 펼쳐보인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피난과 실향을 겪어내는 거대한 한국사 속에서 할머니가 된 엄마가 TV에 비친 풍경 하나에 고향을 떠올리면, 딸은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 그림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움직이고 노래하며 할머니는 소녀가 되고, 그리움이 되고, 떠나온 고향이 되고, 두고 온 부모님의 목소리가 된다.
이 작품은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의 애니매이션 작품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과 미덕을 한국적 이미지와 음악으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면서, 비극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실향민 할머니에게 소녀로서의 사랑과 희망을 되돌려주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내고, 그 기적 안에서 관객들에게 공감과 희망을 나누어 주는 이 작품도 영화제가 있기에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가령 매년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치러져온 세계일화 국제불교영화제 또한 불교적 시선으로 영화라는 세계를 펼쳐 보이는 소중한 자리였다. 이 영화제를 통해 영화 자체가 불경을 두르고 있지 않아도, 스님이 등장하지 않아도, 배경이 절이 아니어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불교적으로 인과 연의 고리를 통해 이어지는지를 볼 수 있었다.
굳이 불교영화제가 아니더라도 ‘충무로’라고 하면 한국영화를 일컫게 만들었던 그 대한극장이 66년 동안 밝혀왔던 스크린을 거두게 되었다는 소식은 영화의 인연이 다 했다기보다 영화 외적 셈법으로 소중한 인연을 무참하게 끊어내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끼게 한다. 영화제들이, 오랜 영화관들이 이익과 권력이 아닌 다른 가치의 인연으로 쌓은 공덕이 존중받고 보존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