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춘 차 이야기] 7. 차를 즐기기 위한 조건

茶品 감별 안목, 제다 이해서 나온다 茶事 핵심, 좋은 차 감별에 있어 제다, 차 따는 시점 파악서 시작 차 덖는 불의 강도 조절도 필수

2024-03-29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이인문의 ‘연정수업’. 옛날 선비들은 제자를 가르칠 때에도 차를 끓여 마셨으니 이는 여름날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차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지름길은 차를 만드는 원리를 아는 것이다. 다사(茶事)의 핵심은 좋은 차를 감별할 수 있는 능력에 있고, 이에 따라 차의 격조가 다르게 구현되기 때문이다. 물론 차의 이치에 두루 밝은 다인(茶人)이라면 좋은 차를 감별할 능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차의 진수를 드러낼 조건이 무엇에 있는지를 간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차를 잘 즐기기 위한 첫째 조건은 차의 품질을 잘 감별할 안목을 갖추는 것인데, 이는 제다의 오묘한 원리를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결국 다사는 차를 즐기는 전반 사항으로, 차의 진수는 제다를 통해 드러나므로, 제다의 원리 이해는 다사의 핵심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되는 셈이다. 

제다의 시작은 차를 따는 시점의 적절성을 파악하는 것이고, 그 요체는 제다인의 판단 능력과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데 좋은 찻잎을 얻었다고 하여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를 덖는 불의 강도를 균등하게 조절할 수 있는 순발력에 의해 차품의 80%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외적인 조건 이외에도 차를 만드는 사람의 순선한 마음가짐이 명차로써의 수준을 드러내는 요소라 할 수 있으니 이는 제다인의 마음이 차에 오롯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차를 만드는 사람은 모름지기 도가에서 단약을 만드는 것처럼 불의 강약을 조리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 바로 불과 찻잎 사이를 넘나드는 불의 기세를 어떻게 조절해야 찻잎을 알맞게 익힐 것인가, 그 적정한 순간을 판단할 순발력과 통찰이 절대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초의 선사는 “삼매(三昧)의 솜씨, 기이한 향이 피어나네(三昧手中上奇芬)”라고 말한 것이다. 바로 차에서 기이한 향이 핀다는 것은 화후가 적절하게 조절되었다는 뜻이며, 삼매의 솜씨란 차를 만들 때 제다인의 마음 상태와 몰입 정도를 언급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마음의 번뇌와 막힌 몸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는 선품(仙品)의 차란 어떤 품격을 갖춘 차를 말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명대 주권(朱權)의 〈다보(茶譜)〉 ‘품다(品茶)’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차에 여러 가지 향을 섞어 (차)자연적인 본성이 사라지면 차의 진미를 빼앗는다. 대개 (차)맛은 맑고 달며 향기로워 오랫동안 (입안에)단 맛이 감돌고 정신을 상쾌하게 할 수 있어야 상품의 차이다.(雜以諸香 失其自然之性 奪其味 大抵味甘而香 久甘回味 能爽神者욇上)

윗글은 명대 문인의 품다(品茶) 관점을 드러낸 객관적인 관점이다. 문예의 감수성을 지닌 것으로, 이는 당시 차 문화의 흐름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문자향(文字香)과 감향(甘香)과 청온(淸溫)한 품색(品色)을 즐겼던 명대 문인들이 희구(希求)했던 차의 가치요, 안목의 반영인 셈이다.

그가 말한 차의 격조는 첫째 차의 천연적인 본성을 상실하지 않아야 하며, 둘째 차는 맑고 감미로워야 한다. 이는 차가 지닌 순수한 참맛의 조건을 밝힌 것이며, 입과 코로 느낄 수 있는 표면적인 차의 세계는 향기로움이요, 쓰거나 떫은맛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감미(甘味)가 오래도록 입안에서 회감(回甘)돼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특히 선차(仙茶)의 특징적 요소는 정신을 상쾌하게 하며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는 차가 사람에게 주는 이로움 중에 단연 첫째로 거론될 덕목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바로 번뇌·분노·우울함·공포·조급함·답답한 심리 상태 등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바로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차의 어떤 향과 맛이, 그리고 기운이 그렇게 작용하는 것일까. 잘 만들어진 차에는 난향(蘭香)이 난다. 이는 화한 허브 향과 비슷한 향이다. 화한 난향이 드러난 차를 마시면 가슴이 시원해지며 경쾌한 기세가 온몸을 감싸는 듯하고, 차가 목젖을 타고 내려가면서 식도와 위까지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차에서나 난향이 나는 것은 아니다. 난향을 지닌 차는 차나무의 생육 조건이 좋아야 한다. 오염이 되지 않은 산하 계곡에서 자란 차로, 차 싹(一槍)이나 일창일기(一槍一旗), 즉 작설처럼 생긴 차 싹에서 잔존하는 향이다. 만약 차 싹이 자라 크게 퍼져 버리면 찻잎의 난향이 엷어져 희미해지며, 쓰고 떫은맛이 강해진다. 그러니 제다와 채다 시점이 적절하면 난향이 드러나는 차를 만들 수 있으니 이런 차는 명차 중의 명차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명대 주권(朱權)이 찬술한 〈다보(茶譜)〉 ‘품다(品茶)’에는 “차의 본성은 냉하므로 병이 든 사람이 아니면 (차를) 많이 마시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茶性쏐, 不疾者不宜多?)”고 하였다. 이는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원래 차는 음(陰)하고 찬(冷) 성질을 지닌 초목인데 이런 기질 때문에 맑은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차의 냉한 기질을 순화시켜 차의 좋은 점을 취하고자 했다. 바로 뜨거운 증기나 불에 찻잎을 익혀 차의 독성을 중화시킨 것이 그것이다. 아울러 차를 끓일 때 뜨거운 물로 우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무튼 차가 답답함과 막힌 것을 풀어 주는 공(功)이 있다고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차의 폐해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차에는 좋고 나쁨이 양립하므로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차의 근원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명대 시인 악순(樂純)는 차의 폐단을 그의 〈설암청사(雪庵淸史)〉에서 “옛사람이 하는 말에 (차는) 응어리와 막힌 것을 풀어준다고 하지만, 일시적인 이로움으로 잠깐 좋은 것이다. (차가 사람의) 기운을 수척하게 하고 정기를 소모하여 끝내 몸에 해롭다(昔人有言釋滯消壅 一日之利 暫佳 瘠氣耗精 終身之害)”고 하였다. 이는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주의사항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