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국수기행 스님이 웃는다] 2. 성화 스님의 팥칼국수
세상 어둠 물리치는 ‘붉은 힘’ 동짓날 팥물을 조금 남겨 칼국수로 소금 설탕 넣고 동치미와 한 그릇 완벽한 겨울 한 상 훌륭한 보양식 사찰 겨울 팥, 추위 이겨내는 마음
겨울이 깊어지면 동글동글 붉은 팥알을 모아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한다. 삶은 팥의 구수하고 달큰한 향기가 사방을 채울 때면 어느새 겨울의 냉랭한 얼굴도 조금은 유순해지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여서, 오랜 시간 뭉근히 끓여 내야 하는 팥은 온기도 그만큼 오래오래 남는 법이다. 끓는 솥단지의 열기가 공간을 데우고, 구수한 냄새에 취해 노곤해질 즈음이면 어느새 동장군마저 곁에 앉아 졸고 마는 시간. 지독한 겨울밤의 냉기도, 깊은 어두움도 어느새 그렇게 지나쳐간다.
빛과 생명력의 상징, 팥
우리에게 팥은 단순한 먹을거리를 넘어 좀 더 큰 임무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
‘귀신은 붉은 색을 싫어한다’는 오랜 속설과 함께, 팥은 타고난 본연의 붉은 색 덕분에 예로부터 귀신과 역병을 쫓는 특별한 의무를 다해왔다.
6~7월에 첫 파종을 하여 한여름 태양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성장하는 곡식. 그 힘을 농축시킨듯한 검붉은 팥을 옛사람들은 특별히 여겼다. 그런 이유로 제사나 차례상에는 되도록 붉은 팥떡을 피하고, 또 반대로 어린아이의 생일에는 수수팥떡을 하여 건강을 기원한다. 이삿날이나 새로운 터를 닦을 땐 팥시루떡을 나누거나, 소금과 팥을 뿌려 잡신과 부정한 기운을 쫓아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해가 짧은 동지(冬至)는 팥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밤이 길어 음의 기운도 가장 성한 날. 붉은 팥죽을 한가득 끓여 치성을 드리고, 먹고 나누며 양의 기운을 채우는 것. 그것은 벽사(邪)의 기능과 함께 다가올 한 해 동안 집안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동지는 어쩌면 24번의 절기 중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동지의 밤이 지나는 순간, 바로 그날을 기점으로 태양은 기적처럼 겨울로부터 제왕의 자리를 탈환한다. 이제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지며 한낮의 태양은 오래오래 그 힘을 자랑할 것이다.
길고 긴 밤을 지나 태양이 부활하는 때, 팥은 다시 한 번 푸르른 생명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절식(節食)인 것이다.
그리운 사람을 닮은 음식
“저는 겨울 하면 팥칼국수, 팥칼국수 하면 저희 상노스님이 떠올라요.”
큰 눈이 반달이 되도록 환하게 웃으며 말을 꺼내는 성화 스님. 종로구 안국동에 자리한 한국사찰음식체험관에서 만난 날, 스님은 따뜻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기억 속의 그리운 조각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놓는다.
동진 출가로 어린 나이에 불가와 인연을 맺은 성화 스님에게 사찰음식은 말 그대로 추억의 집밥. 그런 스님에게 겨울의 국수는 단연 팥칼국수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에는 상노스님과 함께 했던 어린 날의 추억이 머무른다.
“동화사 내원암에서 주석하신 상노스님은 입적하시기 전까지 동화사 호랑이라고 불릴 만큼 아주 엄하셨다고 해요. 하지만 스님과 함께 살았던 그때, 겨우 열 살 남짓했던 저에게는 언제나 친절하고, 자비로운 분으로 기억됩니다.”
수행에 방해되거나, 대중 화합을 깨고 법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는 제자들에게 거침없이 불호령을 내렸던 상노스님. 하지만 성화 스님은 어릴 적 자신의 이름만은 한없이 다정하게 불러주시던 그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어른스님들께 전해 듣기로는 상노스님께선 화를 내시다가도 홍두깨로 국수를 밀고 있으면 슬며시 웃을 만큼 국수를 좋아하셨대요. 겨울에는 만두 경, 여름에는 칼국수 경을 읊는다고 농담하실 만큼요. 승소라는 말이 딱 맞지요(웃음).”
팥죽은 동짓날을 대표하는 먹을거리지만, 팥칼국수는 되레 동짓날이 여러 날 지난 후에 슬그머니 나타나는 별미였다.
“동짓날 절에서 팥죽을 쑤고 나면 팥물이 조금씩 남기도 해요. 산중에 한겨울이니 냉장고에 넣을 필요도 없이 바깥에 두면 꽁꽁 얼지요. 그 팥물을 잘 두었다가 거기에 국수만 훌훌 넣고 끓이는 거예요.”
동지 불공을 올리고 사부대중이 한데 모여 팥죽을 나누어 먹는 것은 사찰의 중요한 의식. 그때 남은 팥물은 훌륭한 영양식이 되어 다시 한 번 모두의 든든한 한 끼가 되어주곤 했다.
공양간에 무심히 놓여 있던 정겨운 팥칼국수 양푼, 그리고 식어서 굳어버린 팥칼국수도 최고의 별미처럼 맛있게 드시던 상노스님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한, 따뜻하고 아련한 겨울의 전경이다.
모두의 힘이 되어줄 한 그릇
“팥칼국수나 팥죽을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팥물을 준비하는 과정이지요. 먼저 잘 고른 팥을 미리 불려서 삶는데,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끓여 낸 첫물은 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약한 불에 아주 오래오래 삶아주어야 해요. 그걸 맷돌로 곱게 갈아낸 뒤, 거름망에 걸러내어 맑은 팥물만 다시 끓여주는 겁니다.”
지금은 맷돌 대신 믹서기를 사용해 품이 덜 든다 해도 팥물 내기는 여전히 수고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지나고 나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반드시 알게 된다.
김이 펄펄 나는 팥칼국수에 소금과 설탕을 취향껏 넣고, 짝꿍인 동치미와 묵은김치를 더해 한 그릇 뚝딱 해치우면 그야말로 완벽한 겨울 한 상. 깊고 은은한 단맛이 느껴지는 녹진한 국물과 쫄깃한 칼국수면이 어우러진 그 맛은 쉽게 만든 음식은 결코 전할 수 없는 충만함이 있다. 특히 단백질과 섬유질은 물론 비타민B와 미네랄까지 풍부해 더없이 훌륭한 겨울 보양식!
“출가 후 운문사에 머물 때 정성껏 고른 팥을 머리에 이고 와서 공양을 올리던 노보살님들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어요. 참 귀한 음식이구나. 팥죽 한 그릇이 참 귀하다, 하구요.”
불공을 드릴 때나 동짓날이 다가오면 쌀과 팥을 한 알 한 알 골라 가장 깨끗하고, 좋은 것만 모아 공양을 올리던 노보살님들의 마음. 어쩌면 모든 것은 그것에서부터 시작임을 어릴 때는 알지 못했다.
마음이 힘이다
밤의 어두움 너머에 숨어있는 액운을 대자연의 기운을 받고 자란 곡식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것.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고 맹목적일지 모르는 믿음은 때때로 어떤 실체가 되어 자신을 증명한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 하여 살생을 금하고, 조선시대에는 가난한 백성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백성들에게 책력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책력은 별과 달, 하늘의 움직임과 절기 등을 기록한 책으로써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목숨처럼 귀한 보물이었을 것이다.
“옛날 전염병은 대부분 못 먹어서 생기는 병이었어요. 봄, 가을처럼 따뜻할 땐 자연에서 채취한 것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겨울이 되면 그마저도 힘드니까요. 지금도 사찰에서 팥죽을 끓여 이웃과 나누는 전통은 양의 기운을 취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어떻게든 이 겨울을 잘 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난하고 고단한 역사 속에서 냉혹한 계절을 이겨낸 방법은 다시 돌아올 빛의 시간을 믿는 것. 그리고 보리심과 자비행으로 공생의 길을 열어 혹독한 시간을 끝내 함께 이겨내는 것이었다. 아득한 그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끝내 살아 이어온 이 땅의 뭇 생명이 바로 그 증거이리라.
오래전 상노스님께서 ‘스님 100명보다 네가 더 귀하다’고 품어주신 그날의 따뜻함. 내리사랑으로 전해진 은사스님의 보살핌까지. 붉게 여문 작은 팥알이 세상에서 가장 긴 밤을 잠재우듯 그 반짝이던 기억이 제자의 오늘을 밝힌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이 겨울에 필요한 것은 오직 마음, 마음뿐이다.
▶한줄 요약
팥죽은 동짓날을 대표하는 먹을거리지만 팥칼국수는 동짓날이 여러 날 지난 후에 슬그머니 나타나는 별미였다. 깊고 은은한 단맛이 느껴지는 녹진한 국물과 쫄깃한 칼국수 면이 어우러진 그 맛은 쉽게 만든 음식은 결코 전할 수 없는 충만함이 있다.
재료
팥 1컵, 물(팥의 6배 분량), 칼국수면
만드는 법
1. 팥 1컵을 최소 반나절 동안 물에 불려준다.
2. 불린 팥을 끓인 후, 첫 물은 버리고 새 물을 담아 다시 삶는다.
3. 처음에는 센 불로, 한소끔 끓어오르면 약한 불로 오래오래 뭉근하게 끓인다.
4. 삶아진 팥을 식힌 후 믹서기나 블렌더로 갈아준다.
5. 곱게 갈린 팥은 체에 걸러 깔끔한 팥물만 받아낸다.
6. 걸러낸 팥물에 칼국수 면을 넣고 끓인 후, 소금 간을 하고 설탕을 함께 낸다.
* 깔끔한 맛을 원하면 면을 따로 삶아 넣고, 되직한 것을 좋아하면 밀가루만 털어내고 함께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