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남 장편소설 아디카야의 검] 43. 그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43. 보석을 찾는 이 2
내가 묻자 오오스마 기자는 정말 못 믿을 정도로 생기에 찬 눈으로 말을 이었다.
-밤새 생각하다 보니 그 생각이 났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가봅시다. 가보면 그 어떤 해답이라도 나오겠지요.
오오스마 기자가 힘차게 말했다.
마을로 내려와 차에 올랐다. 나는 의외로 사건이 쉽게 풀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어디를 어떻게 헤맨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갑자기 나환자촌이라니. 우선 느낌부터가 좋지 않았다. 일이 풀려가도 참 더럽게 풀려간다는 그런 생각이었다. 저절로 머리가 내저어졌다.
차가 너무 덜컹거려 나는 창 쪽으로 기우는 몸을 간신히 바로 잡았다. 마을을 거의 벗어날 때까지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계속 말없이 차창 밖만 바라보고 있는데 심 작가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해요.
내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심 작가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왜요?
-어제 그놈의 글 때문에 정신이 산란해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의 그 글 때문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나뿐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화엔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그 절대라는 말이 잊히질 않아요.
-그는 불화를 절대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던데….
오오스마 기자가 끼어들었다.
-그렇겠지요. 그에게 있어 불화는 신앙의 대상물 아닙니까.
햇살 속에 물러가고 있는 안개가 자우룩이 주위를 감싸오고 있었다. 지나치는 산정마다 꽃들이 이곳저곳에 자우룩이 피어 있는 게 보였다. 심 작가는 불쑥 그렇게 말을 던져 놓고 더 말이 없었다. 그들 역시 난해한 문제이다 보니 질문의 우문성을 뒤늦게야 깨닫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잠시 후에야 심 작가가 오오스마 기자를 돌아보았다.
-도대체 종교와 예술이 무엇이기에…. 무슨 연관이 있기에 그가 그런 행동을 하고 다니는지. 그림이란 매개체를 통해 절대의 세계를 얻을 수 있다?
말이 되느냐는 듯이 심 작가가 말했다.
-그것은 종교가 먼저 왔느냐, 철학이 먼저 왔느냐, 아니면 그것들이 소멸된 뒤에 예술이 성립되었느냐 하는 말로 대답해야 할 성질일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그래요? 하지만….
심 작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는데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은가요. 하물며 미인을 뽑는데도 진선미가 있는데 도대체 그가 말하는 절대의 잣대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지…? 종교? 아니면 철학? 아니면 예술? 아니면 무조건적인 신앙의 대상물?
-그것은 문화마다 다르지 않을까 싶어. 때로는 미라는 예술이 선을 지향하는 종교보다도 가치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겠고 그 위에 철학이라는 진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 또 종교가 최하위로 밀려날 수도 있겠고. 예술이 그 아래 놓일 수도 있겠지.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별개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융합된 것이며 시간적 관계가 아니라 개념적 관계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야.
오오스마 기자가 말했다.
-하나로 본다?
심 작가가 되뇌었다.
-동시적으로 공존하며 얽혀있다는 것이지.
오오스마 기자의 말에 심 작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말이 없었는데 그런 그를 보고 있노라니 이석원이 말하는 절대는 그런 관계마저도 단절된 곳에 있다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이제야 뭔가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읍내에서 주린 뱃속을 채운 다음 갈루촌을 향해 다시 차에 올랐다. 갈루촌에 도착한 것은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이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햇살이 눈에 부신데도 어쩐지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람 그림자라고는 없었다. 어쩐지 마을은 황폐해 보였고 불을 놓아 개간한 밭의 둔덕에도 잡풀이 어우러져 있어서 을씨년스러웠다. 마을로 들어서다가 오오스마 기자가 마침 등에 짐을 지고 산으로 오르는 중늙은이에게 물었다.
-이 마을에 사십니까?
늙은이가 날 선 눈으로 일행을 쳐다보았다. 이방인의 모습이 낯설다는 표정이었다.
-어디서들 오셨소?
-이 마을에 사시면 누굴 좀 찾을까 해서요.
-난 이곳에 살지 않소만 그래 누굴 찾으시오?
-혹시 이 부근에 나환자촌 아니 한센병 환자촌이 있습니까?
-한센?
-네. 아십니까? 그렇게 물으면 안다고 하던데…?
늙은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휘적휘적 산기슭 쪽으로 걸어갔다. 네 사람은 멀거니 그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걸어가던 늙은이가 한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으로 가려거든 나를 따라오시오.
노인네가 산길로 들어섰다. 풀섶이 발길에 채였다.
-그곳을 알고 있습니까?
심 작가가 물었다.
-알고 있으니까 따라오라고 하는 게 아니겠소.
-아니 어디에 있기에 산으로 오르시는지…?
노인네가 돌아서더니 심 작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 그곳엔 왜 가려고 하시오?
-누굴 좀 찾을까 해서요….
심 작가가 대답했고 노인네는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왜 산속으로만 들어가십니까?
심 작가가 잠시 걷다가 노인에게 물었다.
-그곳이 이 산 너머에 있기 때문이오.
-이 산 너머에요?
-나도 그곳에 사는 사람이라오.
보기엔 멀쩡한 모습이어서 별 거리낌 없었는데 그가 한센촌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 네 사람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노인네가 희미하게 웃었다.
-걱정들 놓우. 난 한센병 환자는 아니니까. 그곳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보는 사람이라오.
-일전에 환자의 가족분들까지 함께 모여 살기에 한센인 환자촌으로 부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옛날과는 달라서 한 지붕 아래에서 평생 같이 살면서도 전염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로, 의술도 위생도 많이 발전되었다는….
심 작가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 이석원이란 이름을 가진 스님이 기거하고 있습니까?
오오스마 기자가 능숙한 원어로 노인에게 물었다. 대학에서 언어를 전공했다고 하더니 정말 능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사람을 찾소?
막상 노인네의 입에서 그를 안다는 말이 나오자 네 사람이 얼어붙었다.
-그럴 일이 좀 있어서….
가까스로 오오스마 기자가 대답했다.
-그 사람 처음엔 봉사요원으로 와서는 아예 이곳에서 눌러앉은 사람이라오. 생각해 보면 지금 세상에 그만한 사람도 없지. 제 나라도 아닌데 이 먼 곳까지 와서 어느 누가 피고름 질질 흘리며 썩어 문드러져 가는 환자들을 돌보누.
-그 사람이 이석원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맞습니까?
심 작가가 믿기지 않는지 물었다.
-그렇다오.
-이런 곳에 환자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요?
심 작가가 그래도 못 믿겠는지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물었다.
심 작가의 물음에 늙은이가 고개를 홰홰 내저었다.
-예전엔 이 산등성이가 온통 그들 천지였다오. 정부에서 여기로 환자들을 분산시켰는데 저 산 아래 동리를 보시오. 주민이 몇 명이나 사는가. 고향이니까 살고 있지만 골짜기 물이 어디로 흐르겠소. 그래서 마을이 저렇게 텅 빈 거라오.
구불거리는 산길을 얼마나 헤쳐 갔는지 몰랐다. 산정이 눈앞이다 싶었더니 곤두박질치는 산 중턱에 나지막이 엎드린 움막들이 보였다. 움막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칠 않았다. 그러잖아도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판이었는데 저 움막이 한센병 환자들이 엉켜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자 더욱 그랬다. 불어오는 바람 곁에도 병균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옹기종기 이마를 맞댄 움막 한 쪽으로 한 스무 평이나 될까? 슬레이트로 지어진 단층 건물이 보였는데 어찌나 낡았는지 금방이라도 폭삭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병원이라는 간판이 언뜻 보였는데 나는 그 건물 밖 산 중턱 중간 중간에 서 있는 낡은 집을 몇 채 발견하였다. 병원 앞까지 가서야 병원 앞 뜰 가에 앉아 있는 환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자 매우 당황하는 것 같았다. 더욱이 제 나라 사람들이 아니니.
-방문하는 객들은 방문록에 기재해야 하니 일단 병원 안으로 들어가야 할게요.
앞선 걷던 노인네가 돌아보며 말했다.
-그야 그래야 하겠습니다마는 이석원 씨를 바로 만날 수 없을까요?
오오스마 기자가 물었다.
-환자들을 방문하고 있지 않다면 병원 안에 있을게요. 조심해야 하오. 여기는 음성 환자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전염성이 강한 양성 환자들만 수용하는 곳이니까. 절대 환자들에게 근접해서는 안 되오.
-알겠습니다.
심 작가가 약간 긴장된 어조로 대답했다.
노인네를 따라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병원 안은 밖에서 보기보다는 제법 깨끗한 편이었다. 환자들이지 싶은 사람들이 몇몇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는데 나는 그 중 한 늙은이와 눈길을 마주치다가 깜짝 놀랐다. 온통 눈썹이 문드러지고 코가 내려앉았고 한 쪽 볼이 없는 사람의 시퍼런 눈길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걸친 옷들이 화려하다. 붉고 푸르고 인도식 복장이 유별나 보였다.
어떻게 원장실로 안내되었는지 몰랐다. 수녀 한 명이 우리를 맞았고 원장실로 들어가니 오십 대의 수녀가 앉아 있었다. 미국인 것 같았다. 자초지종을 얘기해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안내해 드리세요. 마가렛에게 간다고 갔으니까요.
-그러지요.
우리를 데려왔던 노인을 따라 넷은 밖으로 나왔다. 울긋불긋한 옷을 걸친 환자들의 눈길이 네 사람에게 쏠렸다.
밖으로 나온 노인네가 산 중간 중간에 지어져 있는 판잣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던 노인네가 입을 열었다.
-환자가 한정되었을 땐 이렇게 환경이 열악하지 않았는데 환자 수가 늘다 보니 사는 게 이렇다오.
-그렇다고 국가 보조도 있을 터인데…? 그리고 요즘에는 약이 좋아 일상생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 아닌가요?
심 작가 역시 그런 점을 느끼고 있었던지 말끝을 흐렸다.
노인네가 자조적으로 웃었다.〈계속〉
▶한줄 요약
소문대로 이석원은 한센병 환자촌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 기자 일행은 마침내 이석원을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