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휴 스님의 능가경 강설] 44. ‘있다’도 아니고 ‘없다’도 아니다
44. 오온이 없다는 뜻은 무엇인가
오온이 없다는 뜻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문장 전체가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문장은 하나의 문제 같지만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이 문장을 하나의 문장으로 생각하고 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누구도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물음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장을 분리하여 오온의 의미는 무엇이고, 없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구별해서 참구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문장 전체를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들은 기본적인 질문을 많이 하였다. 기본적인 사유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의 가르침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대승에서 수행의 과위를 한자어로 만들다 보니 어떤 의미로 사용하였는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처음 얻어지는 과위를 수다원과라 지칭한다. 아마 〈금강경〉을 독송하다 보면 한 번이라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수다원이 무엇입니까?”물어보면 대부분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부처님은 수다원이라 지칭하지 않으시고 흐름에 든 님이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강물과 같아 배를 만들어 띄우기만 하면 그 흐름을 따라 큰 바다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 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기본적인 사유인 것이다. 배는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못과 배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아교 등이 필요하듯, 기본적인 사유도 오온이 가지고 있는 특징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사유를 무시하면 밖의 대상으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밖의 문제로 인식하여 바깥에서 해결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오온에 대한 기본적으로 사유한 수행자들은 밖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밖에서 해답을 찾지 않고, 오온에 대한 바른 사유를 통해 어떠한 해결 없이 고요해진다. 기본적인 사유가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기본적인 사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몸이 구성하고 있은 것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다. 만약 이것에 대해 관찰하는 것이 어려움이 있다면 〈맛지마니까야(전재성 역주)〉, ‘10. 새김의 토대에 대한 경’을 참조하기 바란다. 오랜 시간을 들여 성과 없이 수행하고 입으로 “나는 건물을 짓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건물을 짓지 않는 이유는 건물을 세울 줄을 모르기 때문이지 진리를 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세울 줄 모르는 사람은 세우지 않는 것이 무봉탑인 줄 알겠지만, 그것은 무봉탑이 아니다. 건물을 세웠지만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만이 참으로 무봉탑이 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이 이치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본이 튼튼한 수행자는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음을 알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을 알고 있으니 현상계가 아무리 현란하게 변하더라도 이런 이치를 벗어난 현상은 없으니 눈속임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보이고 들리는 사물은 우리의 판단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자. 그리고 진리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형태와 위치에 따라 그 사물의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관찰자에 의해 나타난 사물은 고정성을 가진 사물이지만 관찰자가 없는 사물은 고정성이 없는 사물인 것이다.
고정성이 없다는 말은 고유한 성질을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유한 성질이 없는 사물에 대해 단정적인 이름을 붙여 그것이라고 사용한다고 그 사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색이 즉 공이요”라고 말할 때 그 공의 의미는 고유한 성질이 없다는 뜻이고 고유한 성질이 없는 색을 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텅 비어 있는 공이 아니다. 이렇게 이해하였기 때문에 색즉시공은 어떻게든 이해한다고 하겠지만 공즉시색은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풀어보면 형태와 위치라는 고유한 성질이 없는 색은 우리의 눈으로 그 형태와 모양을 본다고 있는 것이 아니고,보지 못한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색의 본래 성질 자체가 공이고, 공의 성질 자체는 고유한 성질이 없는 색이므로 크기도 없고 모양도 없다. 그러므로 오온은 ‘있다’라는 개념도 아니고, ‘없다’라는 개념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