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스님의 능엄경 강해] 43. 잘못된 수행을 잘못된 줄 알라

43. 색음(色陰)

2023-11-20     지안 스님(반야불교연구원장)

〈원문〉
“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네가 도량에 앉아서 모든 생각이 소멸되어 그 생각이 다하면 곧 생각이 떠난 거기에 모든 것이 분명하게 밝아져서 동(動)·정(靜)에 달라짐이 없이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않거나 한결같거늘 마땅히 이곳에 머물러서 삼마제에 들어가면 눈 밝은 사람이 캄캄한 어둠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정교한 성품이 미묘하고 청정하나 마음이 빛을 발하지는 못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색음(色陰)의 구우(區宇)라 하느니라. 만약에 눈이 밝아지면 시방이 훤히 열려서 어둠이 없어지나니 색음이 다한 것이라 하느니라. 이 사람은 곧 겁탁(劫濁)을 초월하리니 그 말미암은 바를 관찰하면 견고한 망상이 그 근본이 되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이러한 상태에 있어서는 미묘하고 밝은 것을 정교하게 연구하며, 사대(四大)가 짜지지 않으면 잠깐 사이에 몸이 능히 장애를 벗어나리니 이는 정교한 밝음이 앞의 경계에 흘러넘치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는 다만 공용으로 잠깐 이와 같은 것을 얻었을 뿐 성과(聖果)를 증득한 것은 아니니라. 성과를 얻었다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좋은 경계이나 성과를 얻었다는 생각을 지으면 곧 사견(邪見)이 되고 마느니라."

〈강해〉
삼마지를 닦다가 모든 생각이 소멸되어 떨어져 나가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훤하게 밝아져, 생각이 없어졌으므로, 움직이고 고요함이 동시에 없어져 기억되는 일도 잊어버리는 일도 없이 공적(空寂)한 경계가 그대로 유지되어 삼마제에 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를 비유하여 말하면 시력이 좋은 사람이 캄캄한 어둠 속에 고요히 있는 것과 같아서 정신은 초롱초롱한데 바깥 경계는 빛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색음이 녹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아직 빛이 밖으로 비쳐 나오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가 마음의 빛(心光)이 생겨 밖으로 나오면 눈이 더욱 밝아져 시방이 훤히 열리어 어둠이 없어진다고 했다. 이때는 이미 색음이 없어진 경계이다. 구우(區宇)란 일정한 범위 구역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색음이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색음이 다해 없어지면 겁탁(劫濁)을 초월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를 겁탁이 견고한 망상으로 되었기 때문에 색온의 견고함이 없어지면 겁탁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보통 오탁악세(五濁惡世)라 하여 중생 세계에 다섯 가지 나쁜 점을 들어 말하는데 겁탁(劫濁), 견탁(見濁), 번뇌탁(煩惱濁), 중생탁(衆生濁), 명탁(命濁)이다. 〈법화경〉에도 오탁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능엄경〉에서는 〈법화경〉과 다르게 설명되고 있다. 오탁의 일반적인 개념을 살펴 볼 때, 겁탁은 시대적인 혼탁을 말하는 것으로 기근(飢饉)이나 질병(疾病), 전쟁(戰爭)이 발생하여 시대가 흐려져서 입는 재액(災厄)을 말하고, 견탁은 말법시대에 사법(邪法)과 사견(邪見)이 난무하여 사상의 혼탁이 넘치는 것을 말한다. 번뇌탁은 사람의 마음이 번뇌에 의해 흐려진 것을 말하고, 중생탁은 인간의 행위가 악행이 많아져 인륜 도덕이 무너지며 인과법을 무시하고 악업을 짓고도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명탁은 수명의 피해를 자주 입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비명횡사(非命橫死)하는 액운(厄運)을 말한다.

‘사대(四大)가 짜지지 않는다’는 것은 고체의 상태로 있던 몸이 색음이 다하면 색을 이루던 사대가 유리(遊離)되어 기체화(氣體化) 되는 것을 말한다. 매우 신비한 말이 위의 본문 문장 다음에 나오는데 색음이 녹아질 때 몸 안에 있는 회충 따위를 몸 밖으로 꺼낼 수가 있다 하였다.

(五陰) 가운데 색음을 음마(陰魔)라 한다.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 모두 음(陰)이지만 수음과 상음은 마가 외부에서 온다 하여 외마(外魔)라 하고 행음은 심마(心魔) 식음은 견마(見魔)라 부르기도 한다. 오음에 모두 마(魔)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삼마제를 닦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마(魔)라는 것은 결국 잘못된 수행을 잘못된 줄 모르고 옳은 수행이라 여기고 있는 병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떤 신비한 경계가 나타나면 그것에 도취되어 올바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뜻에서 마의 경계를 알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