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남 장편소설 아디카야의 검] 41. 칼에 찢긴 ‘춘다의 공양도’
41. 보석을 찾는 이 1
봄이면 라일락 향기가 자우룩했을 큰 라일락 나뭇가지가 방 앞까지 늘어진 곳에서 스님이 걸음을 멈추고 방문을 열었다.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간 스님이 벽장 속에서 책을 꺼내는 것 같았다.
-이 책입니다. 제가 간직해 둔 겁니다.
네 사람의 시선이 책으로 쏟아졌다. 경전이 아니었다. 사무엘 다커스의 불의 제전이었다. 소설이었다. 드륵하고 책갈피를 넘겼다. 책 중간쯤 종이쪽지 하나가 끼워진 것이 보였다. 종이쪽지를 집어 보다가 멈칫했다. A4용지 몇 장을 네 겹으로 접은 것이었다.
-뭡니까?
오오스마 기자라고 생각하며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모르겠습니다. 무슨 글을 써 놓은 것 같은데…….
-글?
-그래요. 아마도 그가 썼을 글 같긴 한데…?
-내려가려면 지금 가야 할 것 같은데….
밖을 내다보던 송 서화가가 말했다. 더 늦어지면 길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자고 갈 수도 없고….
-이곳 거리가 워낙 험한 곳이 돼놔서…. 웬만하면 내일 날이 밝으면 떠나세요. 내 그러잖아도 아랫사람에게 일러 놓았으니. 그래 뭐 좀 나왔습니까?
송 서화가가 중얼거리는데 저쪽에서 원주스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이미 소설책 속의 이석원의 글을 읽은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오는 원주스님을 향해 내가 돌아섰다.
-예, 뭐 이런 것이 나오긴 했는데….
-아 이석원의 글 저도 보았습니다. 그럼 이 방에서 묵으세요. 잠자리를 보게 할 터이니.
-그럼 하룻밤 신세를 지겠습니다.
송 서화가가 재빨리 대답했다.
-부처님의 도량에서는 신세란 없다오.
네 사람은 스님의 뒤태를 쳐다보고 섰다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참으로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그 낯설음을 부채질하듯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한동안 적막한 침묵이 주위에 감돌았다. 잠시 후에야 나는 접힌 종이쪽지를 펴들었다. 배고픈 자가 소중한 음식을 아껴 먹듯이.
승가사 뒤뜰에 가면 공양각이란 전각이 하나 있다.
이석원의 필체가 맞았다. 역시 맞춤법도 맞지 않는 글이었다. 거기에다 문맥도 맞지 않았다. 문맥을 맞춰가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신장 탱화를 부탁하는 바람에 머물게 되었는데 한동안은 뒤뜰에 공양각이란 전각이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우연히 그 전각을 발견했고 그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포로 지어진 다섯 평 남짓의 작은 전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단 위에 열 폭이 넘는 장엄한 화폭 한 점이 보인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부처의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고 눈을 부라린 신장이나 나한의 모습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늙은이 하나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공양물을 높이 쳐들어 머리를 조아린 모습이다.
사람들은 그 그림을 춘다의 ‘공양도(供養圖)’라고 불렀다. 춘다(純陀)라고 한다면 부처님이 살아 계실 당시 그분에게 마지막 공양을 올린 사람이다. 천축 파봐 성에 살던 대장장이의 아들로서 부처님께 독이 든 찬다나(뽲壇木)의 버섯 요리를 대접함으로써 부처님을 돌아가시게 한 장본인이다. 아버지가 만행할 때 이곳에 들려 그려 모신 것이라고 했다.
하루는 한 젊은 납자가 바랑을 메고 그 전각을 찾아왔다. 헝클어진 머리는 어깨를 덮었고 때 절은 법복은 헤어져 살랑이는 바람결에도 너풀거렸다. 수염이 성성이 자라난 얼굴은 백지장처럼 희었다.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서 섬뜩한 모습이었다. 그는 바랑 속에서 칼을 꺼내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달빛이 유난히 밝은 밤이었다. 그는 칼을 들고 그림 앞에 한동안 무서운 눈길을 하고 서 있었다.
그가 가고 난 뒤 대중들은 말들이 많았다.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그가 누구냐는 것. 그리고 왜 공양각을 찾아왔다가 그대로 떠났냐는 것.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한때 그와 생활을 함께했던 내가 그를 알고 있었다. 그날부터 그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때로 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고열과 기침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그를 기다리느라 얻은 감기 때문이었다.
신장 탱화를 마치던 날 밤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그동안 오지 않았던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날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스름이 지고 날이 어두워지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밖에서 다급한 부름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 스님!
벌떡 일어났는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후닥닥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왜 그래요?
행자가 얼추 얼이 빠진 모습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공약각만 자꾸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신발을 꿰차고 공양각으로 내달렸다. 공양각의 문을 열려 있었다 들어서기가 무섭게 눈에 들어온 것은 갈기갈기 찢어진 공양도였다. 나는 그가 칼질해 버리고 간 탱화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성스럽게 그려진 붓다가 칼을 맞았다. 그를 중심으로 모여든 보살들도 칼을 맞았다. 붓다에게 독이 든 공양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춘다도 칼을 맞았다. 그들을 옹위하듯 눈을 부라리고 서 있는 신장과 금강역사들도 칼을 맞아 제 모습을 잃었다. 금어 제일로 추앙받는 아버지가 그린 공양도가 그렇게 칼을 맞아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4살 무렵이었다. 하루는 필통을 멘 내 또래의 청년이 하나 암자로 들어섰다. 불화를 공부하기 위해 만행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유명한 금어승(金魚僧)들을 찾아 이 절 저 절 다닌다는 것이다. 그때 한국에는 아버지 지안 스님 말고도 내로라하는 금어 몇 분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의 스승 조산 스님도 부처의 모습을 그리는 금어승이었다. 그 역시 매도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화승이 아니었다. 그는 민속공예의 기능 근처를 맴도는 단순한 단청장이 아니었다. 도에 근거해 부처의 모습을 그리는 금어승이었다.
청년을 만난 아버지는 단번에 고개를 내저어 버렸다. 모방과 기교만이 현란한 그의 솜씨가 눈에 들 리 없었다. 아버지는 오늘날까지 전승 발전되어 온 도제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한 사람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과 기법을 터득하고 있는 그로서는 그의 그림이 눈에 찰 리 없었다.
-이게 그림이냐?
그의 그림을 본 아버지의 첫 물음이었다.
그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그림이 아니다. 모든 이가 그렸고 너 또한 본을 떴을 뿐이다.
그러니까 스승이 제자에게 물려주는 그림본에 의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본시 불화의 세계에는 불통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된 체형과 격식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스승에게서 그림을 배웠기에 도식적인 그림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금어의 법통을 정면으로 거부했던 아버지다운 말이었다. 내가 봐도 아버지의 그림은 전통적인 기법에서 완벽히 탈피한 것이었다. 부드럽고 장엄하기보다는 오히려 거칠고 난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버지가 그림을 개봉하는 날이면 그림 앞에 촛대나 향 그릇 대신 시퍼렇게 간 소도 한 자루를 놓았다. 웬 칼이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이유를 알 때쯤 다시 오시지요.
사람들이 아버지를 비웃었다. 칼과 그림. 알 수 없는 그림 주인의 말.
어느 날 미술계의 거두가 아버지 앞에 앉았다.
-그림이 살아 있지 않는다면 그 칼로 찢으라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칼을 들어 빈틈이 보인다면 찢어보시지요.
미술계의 거두가 칼을 들고 벌벌 떨다가 그대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단숨에 자신을 내쳐 버리자 그는 막무가내로 버텼다.
-스님 자자거리의 하찮은 중생도 배고픈 거지에게 밥을 적선하거늘 어찌 중생을 구제하는 스님으로서 부처의 얼굴을 그리겠다는 사람을 이렇게 박대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저를 제도해 주십시오.
-금어도 금어 나름인 것. 매도를 일삼는 단청질이나 하겠다면 잘못 찾아온 게야. 난 자네를 제도할 힘이 없는 사람이야.
-스님, 제도할 힘이 있으면서 제도하지 않는다고 함은 그 또한 중생구제를 외면한 부처의 미망이 아닐는지요.
-허어, 입만 살아서는, 고약한!
그는 그렇게 암자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쯤 금어로서의 자세를 얼추 갖추어 가고 있었는데 그에게서 가끔 한 서린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하기야 내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더라도 그 역시 뼈를 깎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었을 것이었다. 버드나무를 깎아 유탄을 만드는 작업에서부터 종이에 풀물을 들여 홍두깨로 다듬는 법, 묵 위에서 등긁기 모사를 하는 법, 갑옷 입은 천왕초와 보살초, 여래초…. 그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을 것이었다.
우리는 자주 산길을 거닐었다. 어느 날 나는 그의 과거를 알고 말았다.
-아버지는 한 신문사의 주필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런 말이었다.
아버지의 덕망과 인품은 세상이 인정하는 바였다. 무엇보다 정직하고 무엇에나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글은 당대 최고의 명문장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그 무서운 필력으로 사회 암적 존재로 떠오른 인사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것이 발단이었다. 그 글로 인해 세상은 벌컥 뒤집혔고 그 인사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다.
그 인사의 결백이 법에 의해 증명되던 날 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한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머니나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아버지의 영혼을 달래듯 절로 올랐다.
아아, 전생의 나는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의 뒤를 따라 법당으로 들어섰을 때 내 시야를 덮쳐 오던 장엄한 모습들. 이상스러운 느낌으로 인해 나는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단청에 미쳐서는 이 절 저 절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그녀를 만났다. 라일락 피는 도량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 그녀의 자태, 그녀의 향기, 그녀의 손길, 그녀의 모든 것을 가슴속에 안았다. 그녀의 웃음도, 그녀의 눈물도, 그녀의 번민도, 그녀의 희망도…. 갈새소리 들리는 강변에서 서로를 느끼며 바라보던 석양, 그 석양의 빛기둥들, 바닷가를 거닐면서 속삭이던 그녀의 음성. 절에 들러 부처님께 절을 올리면서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계속〉
▶한줄 요약
이 기자 일행은 이석원이 남긴 글을 보게 된다. 글에는 찢어진 ‘춘다의 공양도’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