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스님의 능엄경 강해] 38. 어리석은 생각을 없애기 위해선…
38. 삼마제를 닦는 세 가지 준비
〈원문〉
“아난아, 네가 지금 부처님의 삼마제를 닦아 증득하려면 근본 원인이 되어 본래 있던 어지러운 생각(亂想)에 세 가지 점차를 세워야 어지러운 생각을 제거해 없앨 수가 있느니라. 마치 그릇에 묻은 독밀(毒蜜)을 제거하려면 끓는 물이나 재, 향으로써 그릇을 씻고 나서야 감로를 담을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세 가지 점차는 첫째 수습(修習)이니 그 조인(助因)을 제거하는 것이요, 둘째는 진수(眞修)니 그 정성(正性)을 도려내는 것이며, 셋째는 증진(增進)이니 현업(現業)을 어기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조인(助因)인가 하면 아난아, 세계 12종류의 중생이 먹지 않고는 온전하지 못하나니 사식(四食)을 의지해 있으니 이른바 단식(段食)과 촉식(觸食)과 사식(思食)과 식식(識食)이니라.”
〈강설〉
〈능엄경〉 8권에 들어가면 삼마제를 닦아 증득하려면 세 가지 준비과정이 있다는 것을 밝힌다. 이것을 삼점차(三漸次)라고 하는데 수행 계위(階位)에 해당하는 것으로 〈능엄경〉에서는 이 삼점차를 합하여 60계위를 말하고 있다. 수행의 계위(階位)를 범부, 현인, 성인의 과정을 거쳐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등각(等覺), 묘각(妙覺)의 52로 설명하고, 십신(十信) 앞에 간혜지(乾慧地)를 두고 십회향 다음에 난(煖), 정(頂), 인(忍), 세제일(世弟一)의 사가행(四加行)을 두어 57위로 벌리고, 간혜지 앞에 삼점차를 붙이면 60위(位)가 된다.
〈능엄경〉에서는 중생의 종류를 12류로 구분하는데 이 모든 종류의 중생이 모두 전도에서 비롯되고 난상(亂想)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밝힌 뒤 이 원초적 난상을 소멸시키는 것이 삼마제를 닦는 것이라 한다. 삼마제는 삼매(三昧)를 달리 말하는 것이고 생각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정(定)을 말한다. 능엄이라는 경명이 수능엄의 줄인 말로 선정 이름이다. 이 선정을 닦으려면 필수적으로 세 가지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도와주는 원인을 제거한다는 것’(제기조인(除其助因)은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마늘, 파, 부초, 달래, 흥거의 다섯 가지 야채다. 흥거는 인도에만 있는 것으로 중국이나 우리나라에는 없는 채소다. 이들 오신채는 날로 먹으면 진심(嗔心)을 조장하고 익혀 먹으면 음심(淫心)을 조장한다고 한다. ‘그 정성을 도려낸다’(媒其正性)는 것은 청정한 계율을 지켜 살(殺), 도(盜), 음(淫), 망(妄)을 끊으라는 것이다. 이른바 바라이(波羅夷) 죄를 범하면 수능엄정(首楞嚴定)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술도 마셔서는 안 되며, 오계(五戒)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고(媒)자는 도려내어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현업(現業)을 어긴다는 것’(違其現業)은 육근(六根)이 육진(六塵)을 짝하지 않아 신(身), 구(口), 의(意)를 통해서 일어나는 십악(十惡)을 완전히 봉쇄하여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삼계(三界) 중생이 먹는 음식을 네 가지로 설명하는 것도 특이한 내용이다. 단식(段食)은 음식이 모양이 있어 씹어 먹는 것을 말한다. 욕계 중생이 대부분 단식을 하는데 물을 마시고 밥과 반찬을 먹는 등의 식사 방법이 단식에 속한다. 촉식(觸食)은 귀신이 먹을 것을 말한다. 입 안에 넣어 씹어 먹지 않고 만져서 먹는다는 뜻이다. 사식(思食)은 색계(色界) 사선천(四禪天)의 음식으로 생각으로 먹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법희선열(法喜禪悅)로 배가 불러 음식을 먹은 것과 같이 된다는 것이다. 또 음식을 생각하는 그 자체로 배가 불러지는 경우도 사식(思食)이다. 식식(識食)은 무색계(無色界) 중생들의 경우로 오음(五陰)이 다 있지 않고 식(識)만 있으므로 저절로 식식(識食)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계 중생과 12류 중생이 모두 밥을 의지해 산다고 하였다. 중생이 음식을 먹는 것은 몸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이고 정상적인 활동을 위한 에너지 확보라고 볼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먹지 않고 굶으면 죽는 것이지만, 그런데 의외로 단식(段食)을 하던 중생이 때로는 천공(天供)을 받아먹었다는 설화도 있다. 천상의 음식을 가져다주어 받아먹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선정 속에서 사식(思食)을 수용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