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휴 스님의 능가경 강설] 38. 마음도 사물도 없으니
38. 무상
여섯 감각기관이 없는 사실을 찾아내어 발견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한, 시작 없는 그대로의 사실에 대해 알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의 뇌는 세상을 그대로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의 뇌는 분석된 정보로 분별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것을 찾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야 하는, 알지 못하는 심리적인 압박에 의한 인식 작용 때문일 것이다. 지속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물질이 가지고 있는 진실을 보고자 하는 마음은 생길 수가 없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물질을 발견하여 영생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런데 참 다행스러운 일은 그런 물질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 행위의 결말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만약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우리가 가진 잘못된 생각을 바로 보는 일이지, 행위의 부족으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멸하는 동안 충분히 많은 행위로써 행위의 잘못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할 때마다 우리는 행위 때문에 거듭 실패했다. 이런 행위의 반복이 어처구니없는 짓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이제는 행위로써 벗어나려는 시도를 멈추는 시도를 하여야 한다. 오직 멈추는 시도만이 물질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볼 수 있다.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물질의 유무에서 허덕이고 헤매는 일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물질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물질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우리는 가정을 하고 그 가정한 것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연구하고 분석한다. 그러다 그것이 가정한 결과로 도출되기도 하고 의외의 결과를 내기도 한다.
수행자는 마음을 알기 위해 마음을 분석하고, 과학자는 밖의 사물을 알기 위해 사물을 분석한다. 그러나 정작 그 마음과 사물이 없다는 앎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고 있지만 그 사실에서는 가장 멀리 있는 것이다. 분석하고 연구하는 자가 있는 한 그 결과는 항상 다르게 나타난다. 분석하고 연구하는 자가 없으면 그 결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르게 나타난다.’와 ‘나타나지 않는다.’라는 이 언어는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앎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보편적인 것이지만 오온의 입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언어이다. 앎과 오온은 이 언어를 같이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앎은 이 두 단어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사용하고, 오온은 세상에서 배운 언어 그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것이다. 물질에 대한 진실은 누구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못한다. 물질은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물질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물질을 있다고 말할 때 우리가 “있다”라고 하는 그 순간,그 물질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한다. 또 물질이 없다고 말할 때는 그것은 나에게만 없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만약 나에게만 보이지 않고 다른 이에게는 보인다면 그것은 “없다”라고 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물질에 대하여 유상하다, “무상하다”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텅 비게 만드는 조건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모든 것이 의식의 조작인 줄 알면, 우리는 자동으로 멈추게 된다.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은 과거의 인연에 의해 움직인다. 주어야 하는 조건은 주는 인연으로 만나게 되고, 받아야 하는 조건은 받아야 하는 조건으로 만나게 된다. 인연의 조건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는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다. 세상은 신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 개입성을 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부처님은 사물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연기로 말씀하셨다. 이것에 의존하면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에 의존하지 않으면 저것은 생겨나지 않는다. 의존성이라는 것은 그 물질에 사실적인 존재성이 있을 때 의존한다고 한다면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물질의 존재성이라는 것이 오직 나의 착각에 있다면 한 번쯤은 자신의 생각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세상에 보이는 물질은 유상한 것도 없고 무상한 것도 없고 텅 빈 것도 없다. 오직 내가 있다는 생각으로 짓는 불필요한 생각들이다. 그러니 보고 들리는 그대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