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남 장편소설 아디카야의 검] 36. 혼란의 시작, 무쿠암은 두 개였다

36. 보석을 찾는 이 2

2023-09-26     백금남

그가 가리켜준 대로 이 골목 저 골목을 한참 헤매 돌았다. 전형적인 인도풍으로 지어진 집들 사이로 판자촌이 나타났다. 아무리 계급층이 두꺼운 나라라고 하지만 좀 전의 풍경에 비하면 조악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인지 으리으리한 집 저쪽과는 달리 골목길이 좁았다. 마주 오는 두 사람의 어깨가 닿을 듯 좁아지는가 하면 어느새 우마가 지나다닐 만큼 넓어지고는 했다.

왈리 슈트라 쉼라가 사는 집은 어지러운 거리 구석 자리에 안쓰럽게 처박히듯 끼어 있었다. 판잣집은 아니었다. 흙으로 벽을 세워 필시 나무껍질이지 싶은 재료로 지붕을 얹은 집이었다.

본채와 별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판자문 앞에서 주인을 찾았다. 몇 번을 불러서야 별채에서 여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분명 힌디어였다.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남인도에서 많이 쓰는 타밀어 계통의 어감이었다.

-뉴델리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말을 알아들은 오오스마 기자가 영어로 대답했다. 발음이 역시 유창했는데 힌디어가 인도의 공용어이긴 하지만 의식적으로 영어로 묻는 것 같았다.

-뉴델리에서?

인도에서는 어느 학과를 가도 기본적으로 배우는 과목이 공용어로 지정된 영어다. 열아홉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나왔다. 눈이 검고 컸다. 코가 오뚝하고 입 매무새가 야무졌다. 전형적인 이곳의 처녀였다. 그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선지 잠시 살피다가 물었다.

-뉴델리에서 왜…?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지 떠듬떠듬 물었다.

-이곳이 왈리 슈트라 쉼라 씨 집이 맞나 해서요?

심 작가가 물었다. 오오스마 기자만큼은 발음이 유창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이곳 사람이 아닌데 저 정도면 글 쓰는 사람답게 언어 구사력에 천부적인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예. 맞기는 하지만. 지금 집에 계시지 않아서요.

-어디 멀리 가셨습니까?

이번에는 오오스마 기자가 물었다.

-들어오실 때는 됐지만…. 무슨 일로?

-그분과 어떻게 되십니까?

역시 오오스마 기자가 물었다.

-제 아버지 되는데요.

-아, 그래요. 그럼 조금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사정이야 돌아오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 들어오세요.

소녀가 자신이 나온 별채로 안내했다.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코를 손으로 막았다.

무슨 냄새지?

방안으로 들어서서야 그 냄새의 근원지를 알 것 같았다. 방 옆이 바로 외양간이었다. 댓 마리의 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방은 흙벽 그대로였다. 한 쪽 벽만 신문지를 바르다 말았는데 도저히 성물을 숨기고 사는 집 같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차가 나왔다. 인도인들이 늘 먹는 짜이었다.

왈리 슈트라 쉼라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삼십 분 정도 지나서였다. 문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늙은 사내가 들어섰다.

-뉴델리에서 손님이 왔다고?

늙은 사내가 소녀에게 묻는 소리였다. 이곳 고유의 언어였다.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소녀의 말도 영어가 아니었다.

-네. 이상해요.

-뭐가?

-이곳 사람들이 아니에요. 중국 사람들 같아요.

-중국사람? 내 뭐랬냐? 아무나 들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그럼 그 먼 곳에서 와 기다리겠다고 하는데 어떡해요.

-넌 마음이 약해서 탈이야.

도저히 성물을 지니고 살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 사람이 방으로 들어섰다.

-누구시오?

갑자기 그의 말이 영어로 변했다. 분명 좀 전에 들려오던 이곳 지방어가 아니었다. 외국 사람인 걸 알고는 영어로 묻는 것 같았다. 늙은 사내가 물었다. 이제 칠순이나 되었을까. 얼굴에 주름이 깊었다. 전형적인 이곳의 농부였다.

삽화=김상규

 

-왈리 슈트라 쉼라 씨 되십니까?

심 작가가 일어나며 물었다.

-내가 왈리 슈트라 쉼라요만….

아! 하는 탄성이 오오스마 기자의 입에서 터졌다. 무쿠암으로 취재를 나갔다가 한 번 본 적이 있다는 탄성 같았다.

이 사람이 왈리?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늙은이가 윗옷을 벗고 윗목으로 가 앉았다. 그가 앉자 일어섰던 일행도 따라 앉았다.

-무슨 볼일이오?

주위를 둘러보던 늙은이가 그래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지 송 서화가를 향해 물었다. 송 서화가가 얼른 대답을 못 하고 눈을 껌벅거리는데 심 작가가 말을 알아듣고는 나섰다.

-이분들은 한국이란 나라에서 얼마 전에 오신 분들입니다.

-한국?

되묻는 음성이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늙은이가 심 작가에게 물었다.

-실은 스리나가르에 있는 무쿠암을 찾아왔다가….

늙은이가 얼핏 흔들렸다.

-무쿠암?

-네?

-아하, 내 그럴 줄 알았지. 또 그 성물 때문에 오셨구만. 요즘 들어 좀 뜸하더니 웬 관심인지 모르겠네. 그래 뭘 알고 싶어서 먼 길을?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무쿠암에 소장했던 성물이 부처님이 남기신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지팡이인지…?

-예수의 지팡이?

-네.

잠시 일행을 살펴보던 늙은이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내가 되물었다.

-거 아이슈 무쿠암에 묻혔다는 그리스도의 지팡이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은데, 사실 이곳에는 두 개의 무쿠암이 있소. 하나는 보디 즉 깨달음이라는 말이 붙은 보디 아이슈 무쿠암(Bodhi-Aisb-Muquam)이고, 하나는 아이슈 무쿠암이오. 두 곳의 위치는 확연히 다르오. 아이슈 무쿠암은 보디 아이슈 무쿠암에서 정확히 1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이오. 스리나가르로부터 남동쪽으로 59km. 비즈비하라로부터 13km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보디 아이슈 무쿠암(Aisb-Muquam)이오. 그로부터 1km 더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이슈 무쿠암이고. 그러고 보면 잘못 찾아오신 것 같구려. 난 아이슈 무쿠암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우리가 찾은 무쿠암은? 퍼뜩 머릿속으로 이곳으로 오기 전 편집실에서 국장이 내밀던 종이쪽지의 글이 생각났다. 그 종이에 스리나가르로부터 59km. 비즈비하라로부터 13km,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럼 보디 아이슈 무쿠암을 찾았다는 말이 아닌가. 출발할 때야 어디든 적힌 대로 찾아왔을 뿐인데 다행스럽게도 보디 아이슈 무쿠암이었다? 그럼 그로부터 1km 후방에 예수의 무쿠암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 그리로 갈 수도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정확히 거리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국장도 보디라는 말을 모르고 있었다?

문득 아이슈 무쿠암을 찾아왔다는 알렉스 생각이 났다.

-전에 말입니다. 알렉스가 찾았다는 무쿠암 말입니다. 기자님이 제게 스리나가르로부터 동남쪽 60km. 모세의 돌이 있는 비즈비하라로부터 14km라고 하지 않았나요?

내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오오스마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그는 우리가 찾았던 무쿠암으로부터 1km를 더 갔어야 했다는 말이네요.

-그렇군요. 우리가 제대로 찾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노인이 말하는 오오스마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디카야의 검 말입니다. 저는 신문사 기자인데도 그리스도의 지팡이가 묻힌 무쿠암의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거든요. 오오스마 기자가 늙은이를 향해 말하자 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야 세월이 세월이라. 그랬을 거요, 아주 옛날얘기니까. 멀리서 왔다고 하니 몇 마디만 일러두겠소.

-감사합니다.

내가 깍듯이 예를 차렸다.

-아이슈 무쿠암에 묻혔다는 그리스도의 지팡이에 대해서는 그 전부터 말들이 많았소. 왜 거기 묻혔겠느냐 하는 거지. 로자발에 있다면 모를까. 아이슈 무쿠암에 살던 사람들도 자이누틴 왈리 쉼라의 후손들이 맞소. 그 당시에도 여기는 이슬람 문화권이었고 선조는 술탄이 파견한 지방관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곳은 쉼라 가문의 피붙이들이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보디 아이슈 무쿠암의 문제는 좀 다르오.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존할 때 그곳은 불교도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우리들의 선조도 불교도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아마 그 성물도 입수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소. 그리스도의 지팡이가 묻힌 아이슈 무쿠암에 대해서 들어보질 못했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게요. 어떤 작가가 예수의 흔적을 추적하다가 그곳에 지팡이가 묻혀 있다는 설을 퍼뜨렸고…. 그런데 예수의 지팡이가 세상에 공개되었어요.

-공개되었어요?

로자발 소장의 말을 떠올리며 내가 물었다.

-그렇소. 공개된 것을 사진으로 본 일이 있소.

-그런데 이상하군요. 로자발 소장님의 말에 의하면 그 성물에 근접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물렸다.

-그것은 보디 아이슈 무쿠암의 성물에 대한 것이 와전된 것이오. 보디 아이슈 무쿠암의 성물은 정말 잡인이 근접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석관에 든 것이 무엇일까 하고 정부에서 내시경으로 살펴보았는데 칼은 아니었소.

-그럼요?

이번에도 성질 급하게 내가 물었다.

-검은 물체가 보이기는 하는데…. 검고 넓적한 물건이었소.

검고 넓적한…?

그래서 아직까지 아디카야 검의 실제 사진이 없다? 지팡이가 아니라면 칼이라는 말인데 그런데 그것이 검고 넓적하다? 검고 넓적한 칼도 있나?

-지팡이도 아니었다는 말이군요?

오오스마 기자가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는지 그렇게 물었다.

-지팡이는 이미 세상에 나왔다고 하지 않았소.

-그 지팡이는 아이슈 무쿠암에서 나온 것이 맞나요?

늙은이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계속〉

▶한줄 요약

이 기자 일행은 마침내 왈리 슈트라 쉼라를 만나고 아디카야의 검의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무쿠암이 두 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슈 무쿠암과 보디 아이슈 무쿠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