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남의 소설 아디카야의 검] 33. 데바닷다, 석존의 성불을 돕다

33. 회광반조 1

2023-09-10     백금남

그러자 그의 제자들은 무상사의 참뜻을 이해하게 되어 교단에 들어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쟈타삿투왕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자신이 믿었던 왕에게 외면당하자 그는 다시 무상사를 시해하려다가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때 그가 떨어진 지옥의 갱도가 그 탑 주위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서 가봐야 하겠군요.

송 서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

-그러시구려. 여기까지 와 그것을 보지 못하면 안 되지. 어서 가보시구려.

-아이고,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할 게 뭐 있겠소. 어서 가보시구려.

그때 저 만큼서 ‘아버지’ 하고 부르며 달려오는 청년이 있었다. 아들의 물건을 불사르고 있다더니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찾은 모양이었다.

-아니 이걸 다 불에 태웠단 말이에요?

가까이 다가온 아들이 소리쳤다.

-쓰잘머리 없는 것에 정신을 파니 그런 것이 아니냐.

-아버지 이게 뭔지나 알고 그러셔요?

-네놈이 요즘 신경 쓰는 것이 아니냐.

-학교의 숙제물이란 말이에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악종 데바닷다를 제도하는 경이오. 그 경줄을 스무 번 써오라는 숙제란 말이에요.

-뭐라고?

-악종 데바닷다가 이제 석가모니 부처님의 용서를 받아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대목까지 썼는데 이걸 다 태워 버리면 어떡해요?

-무엇이?

-하이고, 저 사람 큰일 났네. 주워들은 풍월은 있어서 그걸 우짖다가 무식이 들통 났으니…. 인간 참 묘해. 아들의 말에 놀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걷고 있던 심 작가가 한마디 했다. 내가 필필 웃었다. 선입관이란 게 무엇일까 싶었다. 우리는 얕은 지식으로 데바닷다라는 인물이 악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를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세월이 지나면서 석존은 추종자들에 의해 그의 진면모가 많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데바닷다가 떨어졌다는 갱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조작된 것일 터였다. 언젠가 데바닷다의 기록을 신문에 쓸 일이 있어 들여다보았더니 그는 결코 악인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야쇼다라를 두고 석존과 암투하거나 동년배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뒤의 기록을 보면 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붓다를 시해하려다가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고 하는 기록이 있지만, 〈법화경〉에 보면 눈을 의심할 정도로 그의 행적은 눈부시다.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진 데바닷다에 대해 붓다는 목이 마를 정도로 그를 칭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석존의 성불을 결정적으로 도운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나중 붓다의 경지에 오를 인물이라고까지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의 기록이 왜곡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방등무상경〉 〈법화경〉 〈묘법연화경〉 등 여타 경전에서는 그를 붓다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소승경전이 대승경전으로 이행되면서 그 기록들이 뒤바뀌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어느 지역에서는 데바닷타를 붓다로 받들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데바닷다를 나무라선 안 된다. 그는 진리의 수호자다. 중생을 구하겠다는 데바닷다의 방편 역시 보살심에서 나온 것이다. 데바닷다는 그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법의 근저에 이르렀다.

…그때 세상 사람들의 수명은 한량없었지만, 법을 위하는 까닭으로 국왕의 자리를 태자에게 물려주고, 북을 쳐서 명령을 사방에 내려 법을 구하되 누구든지 나에게 대승법을 설하여 주는 이가 있으면 내가 마땅히 종신토록 받들어 모시고 시중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때 한 선인이 와서 왕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대승경이 있으니, 이름이 〈묘법연화경〉이라. 만일 나의 뜻을 어기지 않으면 마땅히 설하여 주리라고 하였느니라. 왕은 선인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곧 선인을 따라가서 온갖 시중을 들었느니라. 과실을 따고, 물을 긷고, 땔나무를 하고 음식을 장만하며, 심지어 몸으로 자리가 되기도 하였지마는 몸과 마음이 게으르지 아니하였느니라. 법을 위하여 그렇게 받들어 섬기기를 1천 년이 지나도록 지성으로 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였느니라. 그때의 왕은 바로 내 몸이요, 선인은 지금의 제바달다(데바닷다)이니라. 그 제바달다 선지식이 나로 하여금 6바라밀다와 자비희사(慈悲喜捨), 32가지 거룩한 상과 18가지 잘생긴 모양과 자줏빛 도는 황금색과 10가지 힘과 4가지 두려움 없음과 4가지 붙들어 주는 법과 18가지 함께하지 않는 법과, 신통력과 도력을 구족하게 하였느니라. 등정각을 이루어 중생을 널리 제도하게 하였음도, 모두 제바달다 선지식 덕분이니라. 여러 사부대중에게 이르노니. 제바달다는 무량겁이 지난 뒤에 마땅히 성불하리니, 이름은 천왕(天王)여래, 은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한량없는 중생이 아라한과를 얻고 벽지불을 깨달으며, 불가사의한 중생이 보리심을 내어 물러가지 않는 자리에 이르리라. 오는 세상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제바달다를 이해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믿고 공경하여 의심을 품지 아니하면, 지옥, 아귀, 축생의 길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시방불 앞에 왕생하여, 나는 곳마다 항상 이 경전을 들으리라. 만일 인간세계나 천상에 나면 가장 훌륭하고 묘한 낙(樂)을 받고, 연꽃 위에 화생하리라.

석존의 칭찬이 이렇고 보면 과연 그를 악종이라 할 수 있을까? 데바닷다가 전생에 자기 스승이었으며 무량겁이 지난 뒤에 마땅히 성불하리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보석을 찾는 이 1

산을 넘어가자 개천이 나왔다. 개천가에 대가람이 있었다. 가람 안에 미륵보살상이 서 있었다. 금빛이었다. 높이는 1백여 척이나 될 것 같았다. 미륵보살이라면 장차 세상으로 나올 부처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경전에서 본 유마힐(비마라키르티)이 생각났다. 유마는 출가자가 아니었다. 시장바닥을 떠도는 장사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장바닥에서 얻어낸 대승사상이 무장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붓다의 말씀에만 연연하는 이들을 소승교도라며 힐난을 서슴지 않는 이가 바로 그였다. 미륵보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잡지에서 본 것 같네요. 이 보살상.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네요.

시선을 압도하는 미륵 보살상을 멀거니 쳐다보고 섰는데 심 작가가 말했다.

-이곳이 미륵보살의 거처지라고 하지 않았나요?

내가 기억을 더듬으며 심 작가에게 물었다. 심 작가가 미륵보살상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삽화=김상규

 

-그렇다고 하더군요. 잡지에 소개가 자세하게 나왔던데 기자가 취재하러 갔을 때 흰 수염이 길고 키가 큰 노인이 예배를 드리고 있더랍니다. 한눈에 봐도 덕이 깊고 도량이 넓어 보이더랍니다.

-무슨 소원을 빌고 있습니까?

아주 큰 석문 앞에서 노인은 무슨 주문인가를 열심히 외우고 있었는데 기자가 물었다.

-열심히 기도하면 세상을 구할 미륵불께서 오신다기에 스님이 가르쳐준 염불을 외우고 있습니다.

-기도를 드리면 미륵불께서 오신다고 생각하세요?

-벌써 3년째입니다. 언젠가는 오시겠지요. 내 기도가 하늘에 닿으면 말입니다.

-부디 오셔서 소원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심 작가의 말을 듣고 있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륵신앙! 미륵불이 정말 왔을까요? 그분에게.

-글쎄요? 그런데 그날 밤 미륵불이 내게 왔더라고요.

-예?

-그런 곳도 있구나 했었는데 낮에 본 미륵 보살상이 보이더라고요. 바로 여기 서 있는 이 미륵보살상 말입니다.

-하하하 그분에게 나타나지 않고…. 거참 희한하네요. 그래서요?

-이상해서 그날 잡지를 다시 꺼내 보았는데 이런 기사가 있더라고요. 그곳 그러니까 이곳이네요. 이곳에 이런 전설이 있답니다.

-전설? 무슨?

-기도를 열심히 하면 정말 미륵보살님이 나타난다고.

-그래요?

그러고 보면 미륵보살은 언제나 서민 곁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하러 다니다 보면 가장 흔히 보는 것이 미륵상이었다. 낮은 산정에도 있고 들판에도 있고 논밭에도 있다. 미래에 올 부처님이기에 언제나 서민의 곁에 있었다. 인간이 사는 세상, 어디라고 다르랴.

심 작가의 말이 이어졌다.

-옛날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사흘 동안 열심히 기도했답니다. 마지막 날이었다고 해요. 미륵보살님이 나타났다고 해요. 온몸이 휘황한 빛으로 둘러싸여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미륵보살님이 그에게 묻더랍니다.

-왜 나를 찾느냐?

-그대가 이 세상을 구할 미륵불입니까?

-그렇다. 나는 내세를 구하라는 수기를 석가모니 붓다로부터 받은 몸이다.

-그대의 몸을 볼 수가 없겠습니까?

-나의 몸을 보려면 먼저 너의 모습을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물음에 대답하라. 진정한 내(我)가 누구인가?

미륵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걸 깨쳤을 때 다시 나를 찾으라.

그렇게 말하고 미륵불은 사라져버렸다.

-나를 알 때 다시 보자? 그거 정말 무서운 말이네요. 진리가 입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보면 나란 존재는 남과 상반되는 개념이 분명하지요.

-내게 있어 나(我)는 주체라는 말이군요.

-내가 있다는 생각이 아닐까 싶네요. 바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주체. 바로 내가 있다는 즉 유아(有我). 그것의 반대는 무아(無我)가 될 것이고.

영원히 주체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하고 덧붙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것이 범부에게는 대립되어 있다?

심 작가가 되뇌었다.

-주체의 본성을 보는 자(亞實性)에게는 이 두 가지 생각이 있을 리 없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라고 하는 본질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내가 있다 없다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은 주체까지도 인지할 수 없는데 어떻게 주체가 없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겠느냐 그 말인가요?

-글쎄요?

-그렇다면 문제는 나의 본성을 봐야 한다는 말인데…. 〈계속〉

▶한줄 요약

이 기자 일행은 데바닷다가 떨어진 지옥의 갱도가 있다는 탑을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