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 스님의  제주 산방일기] 제주의 관문, 추자도

2023-08-11     현불뉴스

후풍도(候風島), 제주의 첫 관문인 추자도의 옛 이름이다. 바람의 길 위의 섬이다. 조선 최고 표해록 중의 하나인 최부의 〈금남표해록〉도 추자도에서 태풍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추자도는 사람이 최초로 거주한 연대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주도와 한반도를 잇는 뱃길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고려사〉에 삼별초를 진압하기 위한 여몽연합군과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한 최영의 병력도 이곳에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후로 주민들은 최영의 사당을 세워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바람의 섬은 격변의 역사를 겪었다. 고려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여 충정왕 때 주민들을 제주의 도근천 주변으로 이주시켰으며, 조선에서는 공도정책으로 주민들에게 섬을 비우게 했다가, 다시 임진왜란 직후부터 추자도를 방어할 목적으로 주민들을 거주시켰다.

추자도에 불법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일까. 〈고려사〉에 보면, 송나라로 불법을 배우러 가던 일본의 관선대사 일행 230여명이 추자도로 표류하였다고 한다. 물론 불법의 전래는 이보다 앞서 탐라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의 중심지는 상추자의 대서리항구 주변인데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영흥리 일대였다. 〈마을지〉을 보면, 이 영흥리의 옛 지명은 절골이다. 영흥 마을은 절이 있어 절골 또는 사곡(寺谷) 마을이라 불리다가 일제 이후 개칭되었다. 추자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큰산을 병풍 삼아 산 19번지 일대에 자리한 절은 섬마을의 안녕을 지켜주었다. 지금까지도 절기미라고 불리는 산신당에 ‘산신령신위’라고 쓴 비석이 모셔져 있다. 이 산신제는 대서리에 있는 최영장군의 당제 그리고 해신제와 연계되어 음력 2월 15일 해질 무렵 같은 제관이 제를 지내는 풍어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사람이 죽어서 운상을 하고 장지에 봉분할 때까지 장례 전 과정에서 부르는 추자도 ‘상부소리’가 있다. ‘가난보살’로 시작한 노래는 동네를 떠날 때, 매장을 마무리할 때 이르기까지 “가난보살 가난보살 …”하고 송을 한다. 이 노래는 전체적으로 사설적 흐름보다는 음악적 흐름을 중시하여 본사(本辭)보다는 여음구와 후렴을 많이 활용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장례 의식과정에서 인생무상을 노래하여 상주와 공감을 형성하고 ‘가난보살’을 염송해서 위안을 주고 있다.

‘가난보살’은 어떤 보살일까? 제주의 영등신화의 ‘개남보살’과 같은 인물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증의 〈남사일록(南傭日錄)〉을 보면, “4월 4일에 제주에서 출항하게 됐다.… 대소화탈섬을 12시에 지나는데 물결이 높고 배가 흔들려 멀미를 했다. 뱃사람들은 합장을 하여 관세음보살을 외우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 갈 때쯤 추자도를 지났다”고 한다. 

이처럼 바다와 바람을 의지해 사는 사람들에게 고해를 건내주는 관음보살은 큰 의지처이었던 것이다. 〈관음경〉에 “혹 큰물에 떠내려가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즉시 얕은 곳에 이를 것이며, 혹 …보배를 구하기 위해 큰 바다에 들어갔을 때, 설사 큰 폭풍이 불어와서 그 배가 뒤집혀 떠내려가게 되더라도 그 가운데 누구든지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다 죽음의 난을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추자도 아니 후풍도는 관음의 보타낙가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