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 스님의 제주 산방일기] 남국 노스님 말씀

2023-06-13     현불뉴스

남국의 남녘, 바닷길이 끝나고 대륙으로 건너가는 섬들의 길목에 서귀포 보목동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귤꽃 향기 가득하면 그리운 임이 오시는 날이다. 부처님 오시는 날이다.

한 30여 년 전에 이곳을 처음 찾은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드문 남방의 돔 형태의 사찰이 신기하기만 했다. 사찰에 들어서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참배를 하고 나오니 자그마한 체구의 노스님이 나오셨다. 차담실로 안내를 받고 사찰을 짓게 된 유래를 들을 수 있었다. 

“절 앞에 보이는 오름 이름을 아시는가. 제지기오름이라고 하지. 절지기에서 변형된 이름이야. 예로부터 ‘저즈기 오롬’, ‘제지기 오롬’, ‘제제기 오롬’ 등으로 불러왔고, 한자 차용으로는 저즉악(貯卽嶽)·저좌지악(貯左只嶽)·저적악(儲積岳)·사악(寺嶽) 등으로 표기하지. 그 오름의 남사면은 매우 가파른 벼랑을 이루고 있는데, 중턱에 바위굴과 절터가 있어. 그 절을 지키는 절지기가 살았는데, 이로 인해 ‘절오름’, ‘절지기오름’이라 부르던 것이 변해서 ‘제지기오름’, ‘제제기오름’이라고 하는 것이야.

그런데 그보다 훨씬 전에는 그 오름을 ‘불래(佛來)오름’이라고 했어. 부처님이 처음 오셔서 머무신 오름이라는 뜻이지. 아마도 깨달음을 얻으신 고승이 처음 당도해서 그 굴에 머물며 탐라국을 살펴보고 수행하기 좋은 영실에 존자암을 창건했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 후로 사람들은 이곳 보목동 불래오름을 절지기오름이라 하고 존자암 뒤편의 오름을 불래오름이라 하게 되었어. 

어릴 적에 스님이었던 형님을 따라 영실에 가서 〈법화경〉 독송 기도를 많이 드렸어. 부처님께서 〈법화경〉이 설하신 곳이 영축산이잖아. 영실이 영축산의 여래향실이라는 말이거든. 그래서 〈법화경〉을 부처님께 직접 설법을 듣는 마음으로 영실에서 비바람 겨우 가릴 수 있는 움막을 짓고 간절하게 기도했지.

여기서 쇠소깍을 지나 효돈천을 따라 올라가면 고려 시대 절터인 영천사지가 있고, 그곳 천의 한편에 ‘관나암’이라 새겨놓은 바위가 있어. 옛날에 섣달그믐날 절에서 악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행했는데 그 의식을 지켜보던 곳이야. 이원조의 〈탐라지초본〉에 영천사의 스님이 새겼다는 기록이 있어. 때로는 영실 안쪽으로 들어가 기도를 했는데, 때때로 그곳에는 밤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 이상한 소리가 나서 무섭기도 했지. 하지만 그때가 그립고 형님도 그리워. 참 간절했는데. 형님이 좌익으로 몰려 총살당한 후에도 새마을운동 때 쫓겨 나가기 전까지 기도했어. 지금은 불가능하지.

그래서 그 부처님 도량의 출발지인 이곳에 법화도량을 만들었어. 형님은 억울하게 돌아가셨지만, 부처님 곁에 가셨을 거야.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고 정진하셨는데. 형님은 해방 후에 왜색불교를 혁신하여 참된 불교를 세우기 위해 열심히 운동도 하셨어. 옆에서 심부름하며 지켜보면서 무척 존경스러웠지. 지금은 늙은이가 되어서 이 도량에서 윤회의 모든 고통 벗어나 형님 따라서 부처님 계신 곳에 가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매일 기도하고 있어. 어떨 때는 마치 영실에서 형님과 함께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국토로 가신 노장님을 생각하며 등불을 밝힌다. 지금은 그 도량의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간절한 말씀은 가슴에 또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