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불자 신행일기] 4. 가수 웅산
재즈뮤지션으로 걸어온 수행의 길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의 영원한 불제자가 되겠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기도로 하루를 연다. 대대로 불자였던 집안에서 스님을 꿈꾸셨던 아버지와 유독 자녀 사랑이 깊은 어머니 슬하에 태어나 불교는 모태신앙으로서 자연스레 삶의 일부이자 전부가 되었다. 한창 밖에서 뛰어놀기 좋아하는 어린 나이에도 저녁이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관음정진을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던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은 스님과 음악가였다. 이후 학교에 진학하며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 합창단, 중창단, 브라스밴드 등 교내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음악 활동을 하며 음악에 빠져 스님의 꿈은 잠시 잊힌 듯 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불현듯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길로 짐을 싸서 절로 들어갔다. 절에 너무 가고 싶어서 무작정 찾아간 충북 단양의 구인사. 그곳에서 스님이 되기 위해 학교도 그만둔 채 수행생활을 하며 지냈다. 스님이 되겠다는 의지는 굳건했고 한 점의 의심도 없었다. 그렇게 2년여 시간이 지났을 즈음, 선방에서 관음정진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스님의 죽비를 맞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깼는데 그 순간 갑자기 나도 모르게 노래가 튀어나왔다. 황당해하며 쳐다보는 도반들 사이에서 다시 합장을 하고 관음정진을 하려는데 음악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산사로 떠나온 것처럼 큰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홀연히 산을 내려왔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즉, ‘어느 곳에도 마음을 머물지 않게 하여 마음을 일으키라’는 <금강반야경>의 구절처럼 어디에 가서 무슨 일든 하든 불자인 것은 변함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산을 내려와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가수가 되기 위한 유일한 등용문이었던 ‘대학가요제’의 꿈을 꾸며 상지대학교 밴드 동아리 ‘돌핀스’에서 여성 록커로 활동하며 종횡무진 무대를 누볐다. 파워풀한 가창력과 헤드뱅잉을 선보이며 관객을 사로잡는 무대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주위 학교 축제에 초청받아 공연을 하며 바쁘게 보냈다. 꿈꾸던 대학가요제에서 인기상을 받기도 하며 곧 가수가 될 것이라 믿었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스카웃 제의를 받지 못했고 슬럼프에 빠지게 됐다.
그때 곁에 있던 친구가 다른 노래도 한 번 들어보라며 건네준 것이 바로 재즈였다. 재즈는 그렇게 운명처럼 찾아왔다.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I’m a fool to want you‘라는 노래에 완전히 매료되어 재즈보컬의 꿈을 새롭게 꾸게 되었다. 재즈보컬이 되는 길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수행의 과정이라 여기며 하루도 게을러지지 않으려 정진하며 굳건히 걸어왔다. ‘웅산(雄山)’은 구인사에 머무는 동안 어느 스님께서 주신 법명이다. ‘큰 산’이라는 뜻으로 산처럼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큰 마음을 가진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나라는 의미다. 처음에는 웅산이라는 이름이 재즈 뮤지션에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록커의 음색이 너무 짙다는 비평도 있었다. 그러나 수행의 과정을 통해 이러한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매일 가부좌를 틀고 복식호흡을 하며 호흡법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꾸준히 관음정진을 염송하며 나만의 독특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게 되어 이제는 국악 발성도 가능할 뿐 아니라 힙합, 클래식 등과 다양하게 콜라보하며 새로운 음색을 만들어낸다.
뮤지션의 길을 걸으며 한시도 녹록지 않았지만 흔들리고 힘들 때마다 약해지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모든 순간은 불법(佛法)을 통해서 가능했다. 한 번은 공연을 앞두고 컨디션 난조로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아버님께서 “기도실 들어가서 기도할 테니 걱정 말고 공연 잘해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전해 듣고 무대에 올랐는데 걱정은 사라지고 어느새 환희에 찬 느낌이 들더니 천상의 노래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하고 멋진 공연을 할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동안 음악을 하며 마주한 수많은 경험과 소중한 인연들은 모두 부처님의 가피로 가능했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응무소주이생기심’, 독실한 불자 집안의 뮤지션으로서 머무는 바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행하며 오늘도, 앞으로도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연예인전법단원으로서 불법을 전하는 발걸음을 한 걸음 더 내디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