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한 스님의 불교시 감상] 29. 앙상한 것들은 왜 단단해지는가?

29. 조온윤의 ‘공복 산책’

2023-04-01     승한 스님(불교문학연구소장)

공복 산책/ 조온윤

걸어가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하염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 가지 대답을 만나고 싶었지

이봐,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자 하는 거지?
깨달음을 얻고 싶었지만 글쎄, 이곳은 보리수 아래가 아니고
이곳은 사과나무 아래가 아니어서 사과가
내 발밑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허기가 생각을 이길 때
나는 텅 빈 몸을 채우러 외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리에는 다만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제 몸을 끊임없이 마르게 하는 것으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리수 대신 천막으로 그늘을 치고 그 아래 가부좌를 틀고

식도까지 탑을 쌓아 올리는 대식가들이
헉헉대며 먼저 수건을 던질 때까지

고작 허기 따위에 지고 싶지 않은 건가?
링 위에 선 깡마른 복서가 갈비뼈를 드러내며
두 팔을 벌릴 때

앙상한 것들은 왜 자꾸 단단해지는가
추운 계절들과 싸우기 우해
가로수가 가지를 흔들며 계체량을 줄여갈 때

나는 거리를 걷다가 나무 위에서 뱀이 속삭이는 둣한
이상한 질문을 들었다

이봐,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자 하는 거지?
삶이 아니면 배고픈 일이 없고
삶이 아니면 싸우는 일이 없고
삶이 아니면 슬퍼하는 일 하나 없다
그런데 왜 아직도 대답을 내놓지 않는 거지?

고민할 필요다 없겠다지만 글쎄,
글쎄,
오래 인간으로 살다가
환생의 문 앞에 서서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혹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고작 배곯는 게 두려워 떠나진 않겠지
흘리는 눈물만큼 내 몸도 말라갈까 두려워서
떠나진 않겠지
검불처럼 가벼워진 빈속으로 오늘도 많이도 걸었구나

거리에는 다만 걸어가는 사람들 걸어오는 사람들
제 몸을 끊임없이 마르게 하는 것으로
오늘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 나무들

살아가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이 살아가다
만나게 되는 아주아주 단순한 풍경

내 지친 마음은
거기에 가 쉬어도 충분하겠지

-조온윤 시집,《햇볕 쬐기》. 창비, 2022-

“제 몸을 끊임없이 마르게 하는 것으로 / 싸움을 하는 사람들”, “링 위에 선 깡마른 복서가 갈비뼈를 드러내며 / 두 팔을 벌릴 때”, “앙상한 것들은 왜 자꾸 단단해지는가”. 이 시를 읽는 동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석가모니의 고행상(苦行像)이었다.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 할 만큼 피골이 상접하고,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석가모니 고행상. 기회가 없어 아직 직접 친견하진 못했지만, (사진 속에서) 살가죽만 남은 얼굴에 깊게 패인 눈으로 앞을 가만히 응시하는 그 모습은, 필자의 뱃가죽이 1mm씩 늘어날 때마다 필자의 출가 목적과 비만한 내면을 되돌아보게 했다.

각설하고, 이 시는 불교시 중에서도 뛰어난 사회 참여적 불교시다.

사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철저한 개혁가(사회운동가)였다. 지금도 완고하게 지켜지고 있는 인도사회의 카스트(Caste, 인도의 세습적 계급 제도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불가촉천민으로 나뉜다. 1947년에 카스트 제도에 의한 사회적 차별을 법적으로 금했지만, 아직도 카스트 제도 자체는 폐지되지 않았다.) 제도 타파를 가장 큰 목표로 내세웠다. 지금으로 말하면, 뜨거운 사회혁명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이 고행주의만으로는 정각(正覺)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중엔 수정주의를 택한다. 하지만 석가모니의 6년간의 이 설산(雪山) 고행이 없었다면 석가모니는 결코 부처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조온윤 시인은 틀림없이 석가모니의 그 고행상에서 이 시의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복(公僕)과 깨달음과 보리수와 천막과 가부좌, 탑, 환생 등의 불교 소재를 동원해, 이 시를 짰을 것이다. 아니, 이 시가 저절로 왔을 것이다.

지금도 광화문 앞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여의도와 각종 “대식가들” 앞에서 “보리수 대신 천막으로 그늘을 치고 그 아래 가부좌를 틀고”, “깡마른(앙상한) 복서가 갈비뼈를 드러내”듯이 “계체량을 줄이고 있는 ‘배고픈 배[공복(空腹)]’” 참 많다. “지친 마음”들,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