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 스님의 제주 산방일기] 오등동사지 발굴 이야기
음력 2월 초가 되면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아득한 바람의 궁전에서 제주를 찾는다. 영등할망은 보름 동안 제주의 땅과 바다에 풍요와 생명의 ‘씨 뿌림’을 한다. 그러면 복수초와 매화를 시작으로 동백·수선화·유채 등 바람의 꽃들은 기운을 차리고 그 향기를 강렬하게 내뿜는다.
봄바람이 살랑거려도 아직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기구한 사연을 가슴에 담아둔 씨앗들도 있다. 이번 오등동사지 발굴에 따른 이야기들이 그렇다. 우선 이번에 출토된 자기류 가운데 청자가 많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제주에서 흔치 않은 사례다. 제주불교의 문화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 청자는 전남 강진에 있는 국가가 운영하는 가마터에서 제작한 상위층 문화에 해당한다. 따라서 청자를 소비할 만큼의 제주불교와 고려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 머물렀을 것이라 짐작된다.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이번 발굴에서는 북송시대에 제조된 동전꾸러미도 일괄 출토됐다. 북송은 960년에서 1127년까지 중국에 있던 왕조다. 차례로 보면, 북송 진종 함평년간 (998년~1003년) 주조해 발행된 함평원보(咸平元寶)와 북송 인종 황송년간(1039년~1054년) 주조해 발행된 황송통보(皇宋通寶), 북송 영종 치평년간(1064년~1067년) 주조해 발행된 치평원보(治平元寶) 등이다. 특히 함평원보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와 자바에서 주조했을 만큼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 화폐였다.
더불어 공주 신원사 오층석탑을 해체 복원(1975년)하는 과정에서 목이 긴 병과 함원통보, 황송통보가 발굴되었다. 그리고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유적 고려시대 대형 적심 건물지에서 치평원보가 출토(2013년)되었다. 이런 사례는 오등동사지 연구를 이들과 연관 지어 진행해볼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탐라)는 고려가 새롭게 한반도의 강자로 부상하면서부터 사신을 주고받았다. 탐라의 사신은 고려 국가축제인 팔관회에 참석했을 때도 송·여진과 함께 환대를 받았다. 탐라는 고려 초기까지는 사실상의 독립국이었다. 그러나 고려 조정이 지방 호족을 지배 체계에 편입시키며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해나가자 탐라국 역시 차츰 지방 행정 단위로 편입되었다.
고려 이전에도 탐라는 국제교류가 활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주시 건입포 항구에서 발굴된 오수전이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산지항을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를 벌이던 중 오수전, 화천, 대천오십, 화포 등 중국화폐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이 화폐들이 사용되었던 시대가 오수전은 B.C118~621이고, 화천은 왕망이 만든 것으로 사용 시기가 아주 짧아 서기 14~40년에 불과한 것들이라 탐라국 초기에 활발한 해외 교역을 증명해준다.
이처럼 이번 오등동사지의 발굴은 불교문화에 한정된 사건이 아니라 탐라사 특히 고려 중 후기 격변기의 역사를 밝히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더는 개발과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역사의 씨앗을 다시 땅에 묻는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제주의 가장 큰 불교 유적인 수정사 터가 도시의 주차장으로 변모했고 그 유물들을 항파두리 야외와 박물관에 흩어 전시되고 있다. 따라서 옛 사찰 터의 발굴이 종교적 편향에 따라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