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불자 신행일기] 3. 만담가 장광팔
뗏목을 버려라
왕십리 단우물 근방에 살고 계셨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나는 1950년대 말 심인당(心印堂)이라는 절에 다녔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참 특이한 절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울릉도에 본찰이 있는 대한불교 진각종 심인당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그곳 법당에는 불상도 없고 법단에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란 글이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왼손의 검지를 세워 오른손으로 말아 쥐고, “옴마니반메훔”을 30분 남짓 염송을 하면 딱! 딱! 딱! 전수님의 짧은 죽비 소리와 함께 몸을 편히 쉴 수 있었다. 염송만 하려 하면 왜 그렇게도 콧잔등이 가려운 지 30분이 참으로 길게만 느껴지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한 번은 가족들이 집에서 염송을 할 때마다 적립해둔 불전을 심인당 불전함에 넣고 오라는 어머니 심부름을 가다가 친구들을 만났는데, 하필 ‘만나당’ 아이스케키 장사를 만난 것이다. 주머니에 있는 불전 중 절반 정도를 꺼내어 아이스케키를 사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달게 먹고 나머지 절반만 불전함에 넣었다. 심부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혹여 배달사고가 들통날까 두려운 마음에 황급히 집으로 뛰어가는데 갑자기 배가 뒤틀리고 설상가상으로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남의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라는 내 좌우명은 그때 어린 마음에 새겨진 작은 깨달음이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를 따라 수륙재의 근본도량으로 알려진 진관사에 다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계(戒)를 받고, ‘삼소(三笑)’라는 법명을 받았다. ‘삼소’란 고승 혜원(慧遠)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동진(東晋)의 고승 혜원이 수행정진을 하던 동림정사(東林精舍) 밑에는 ‘호계(虎溪)’라 불리던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혜원이 찾아온 손을 배웅할 때 이 호계를 건너가면 호랑이가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혜원은 손님을 보낼 때는 이 개울을 경계로 하여 그곳 너머로는 절대 배웅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시인 도연명(陶淵明)과 도사 육수정(陸修靜)을 배웅하는 길에 이야기를 나누다 무심코 호계를 건너고는 호랑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 문득 이 사실은 깨달은 세 사람이 파안대소하였다는 고사로 이를 배경으로 그린 동양화 ‘호계삼소도(虎溪三笑圖)’에서 따온 말이다.
“계는 앉아서 받고, 서서 파하더라도 그 공덕이 수승하다”는 말씀으로 스스로 위안하며, 그저 초하루와 보름 법회에만 겨우 참석하는 이른바 날라리 신도였지만, 이런 연으로 만담가 장소팔 선친으로부터 사사한 만담을 통해 장사익 선배님 등과 함께 산사음악회의 단골 사회자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여성조선〉에 장만세(장광팔이 만담으로 본 세상만사) 기사를 연재하며 진행한 큰스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승한 가르침을 받게 되면서 불심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수락산 도안사 선묵 혜자 스님께서 청담 큰스님 시자승으로 계실 때의 일화이다. 큰스님께서 출타를 하셨는데, 노보살 한 분이 쟁반에 떡을 소복이 담아 오셨다. 그런데 때마침 법정 스님 등 몇몇 젊은 스님들께서 큰스님을 뵈러 오셨다가, “이게 웬 떡이냐”며 말릴 겨를도 없이 후다닥 접시를 비워냈다. 다음 날 큰스님이 돌아 오시자마자, 마침 노보살님이 쟁반을 찾으러 오셔서 “큰스님! 떡은 맛있게 드셨어요?” 하며 여쭈니, 큰스님이 의아해 “무슨 떡?” 하고 되물으셨다. “어제 올린 늙은 호박 버무리 안 드셨어요?” 하며 공치사를 하는 노보살 옆에서 시자스님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큰스님께서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달게 잘 먹었어”라고 답하시니 노보살이 흐뭇해하며 쟁반을 들고 나섰다. 이에 선묵 시자스님이 여차저차 상황을 말씀드리며 “왜 보지도 못한 떡을 달게 잡수셨다”고 하셨는가 여쭈어보니, “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방편이란다” 하셨다고 한다. 큰스님께서는 〈법화경〉의 〈방품편〉을 이 해프닝을 예로 들어 쉽게 알려주신 것이다. 이 일화를 듣고, 나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중아함경〉에서 붓다께서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뗏목이 필요하지만, 일단 강을 건넜으면 그 뗏목을 버려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라는 말씀에서 뗏목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닐진대, 다시 “너희들은 이 뗏목처럼 내가 말한 교법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신 부처님 말씀을 비로소 마음에 새겼다. 얼마 전 인연법에 따라 대한불교조계종 연예인전법단의 국악분과를 맡게 되었다. 이 뗏목을 타고 언제나 전법의 강을 건너 목적지에 이르러 뗏목을 태울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