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결사 인도순례 일지]28일차, 카쿠타강 손씻자 법비(法雨) 내리다

삐뻐라까낙부터 쿠시나가르 다비장까지 24km 행선 부처님 마지막 목욕한 강가서 회주 스님 손 씻고 의미 다지자 건기 중 비오는 상서로움 내려 현지인 "부처님께서 아끼는 마음" 부처님 가피에 순례단 환희 더해 육신 고통 이기고 당당한 걸음 보인 부처님 모습 떠올리며 정진 또 정진

2023-03-08     인도=노덕현 기자
상월결사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이 부처님께 올릴 지화를 들고 부처님 다비장에 세워진 라마바르 스투파를 참배하고 있다.

‘가자, 쿠시나가로!’ 카쿠타 강에서 목욕을 하고, 춘다를 위로한 부처님은 쿠시나가르로 향하며 이렇게 말하셨다. 늙고 병든 몸이지만 대중의 앞에 서서 당당히 걸어가신 모습으로 부처님은 그렇게 걸으셨다. 낡은 수레와 같았다, 혹은 사자와 같이 당당했다는 인간붓다 그 자체, 부처님을 닮아가는 순례단도 그와 같이 걸었다.

인도 순례 중후반부를 부처님 열반길을 따라 걷는 상월결사 인도순례단(회주 자승)은 3월 8일 부처님께서 열반을 향해 걸은 마지막 길을 따라 걸었다. 약 30여일간 쌓인 피로도, 아픈 몸도 순례단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파질나바르의 춘다스투파는 일출 후 문이 열리는 관계로 순례단은 파질나바르 외곽에서 잠시 휴식을 가진 후 다시 행선을 이어갔다. 사진은 춘다스투파가 있는 곳의 골목 입구 모습.
카쿠타 강 입구에서는 1961년부터 인도에서 전법활동 중인 미얀마 출신 카니소아르 스님과 스님, 신도들이 나와 공양을 올렸다.

이날 순례단은 행선을 시작한지 4km만에 부처님의 마지막 공양이 이뤄진 춘다마을, 파질나바르에 도착했다. 인도에서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일출시간 전 유적지 참배가 금지되어 있다. 이 관계로 순례단은 춘다스투파가 조성된 파질나바르를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공양보다 더 중요한 상락아정(常樂我淨)이 남아 있기에 순례단의 발걸음에는 걸림이 없었다.

인간붓다로서 육신의 목마름으로 표현되었지만, 번뇌와 갈애를 여읜 경지를 나타낸 500대의 마차가 지난 깨끗한 개울, 그리고 열반에서 탐친치(貪瞋癡)에 대해 한번 더 가르침을 주신 카쿠타강까지 순례단에게는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회주 자승 스님이 카쿠타 강에 손을 씻고 있다. 신기하게도 회주 자승 스님이 카쿠타 강에 손을 씻자 약 20분 가량 비가 내렸다. 건기인 인도에서 비가 내리는 것은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진다. 회주 자승 스님은 순례단에게 부처님 가피니 그대로 비를 맞으라고 했고, 순례단은 탐진치 먼지 티끌을 지운 이 비에 환희심이 나서 더욱 정진했다.
  순례단 스님들이 행선 전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목욕하신 카쿠타 강변에 손을 씻고 있다.

자연스럽게 행선은 빨라졌고, 해가 뜨기 전인 새벽 5시 경, 순례단은 출발부터 13km, 춘다마을부터 8km를 더 걸어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목욕하신 카쿠타 강에 도착했다. 순례단을 맞아 미얀마 출신인 인도 스님과 신도들이 나와 꽃을 공양하며 환영했다.

여느 때보다도 이른 시각, 해조차 뜨지 않은 카쿠타 강은 부처님의 유훈을 간직한 채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 목욕으로 세속의 인간으로 남은 티끌을 털어버리셨듯, 순례단은 저마다 마음 속 불교 중흥의 원을 세우며 티끌을 지우는 의미로 강물에 손을 적셨다.

순례단의 행선은 조금씩 내리는 빗속에서 진행됐다. 그동안 쌓인 먼지, 탐진치의 속세 티끌을 부처님이 내린 비로 씻어버리며 카쿠타 강의 다리를 건너는 순례단의 모습.
약 20분간 내린 비는 많지는 않았지만 먼지를 잠재우고, 마음 속 티끌까지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순례단은 더욱 환희심에 차 정진했다.
그동안 행선 도중에 먼지가 많이 쌓인 작은부처님도 이 비로 인하여 깨끗해졌다. 마지막으로 목욕한 부처님 처럼 황금색으로 빛났다.

그 간절함이 닿아서 일까. 회주 자승 스님이 카쿠타 강에 손을 적시자 순례 시작 이후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 인도 건기에는 비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다. 인도 현지인들 조차 상서롭게 생각하는 비는 순례단에 묻은 먼지를 모두 지웠다. 순례단이 이운하는 큰부처님도, 작은부처님도 마치 마지막 목욕을 마친 인간붓다로의 부처님처럼 밝게 빛났다.

현지인들조차 이 비가 부처님의 가피라고 여겼다. 현지안내를 맡고 있는 라지 야다부 씨(40)는 "인도 건기에는 정말 비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것 자체를 굉장히 좋은 의미로 생각한다"며 "특히 부처님이 씻으신 강물에 스님이 손을 씻자 내린 비는 부처님이 회주 스님과 순례단에 보내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환희심으로 행선을 이어가 부처님 다비장인 라마바르 스투파에서 회향했다. 부처님의 열반 후 말라족에 의해 화장 후 나온 사리 등은 다시 불탑신앙으로 이어지고, 가르침은 마하가섭 등 수많은 제자들에게 이어져, 지금까지도 많은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었다. 기나긴 세월, 끝없는 고난을 딛고 뭇 중생에게 가르침을 전한 인간붓다 부처님. 열반 후 2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 숭고한 길 위에서 순례단은 슬픔과 함께 불제자로 가르침을 전하겠다는 새로운 원을 세웠다.

환영 나온 쿠시나가르 인도주민들이 큰부처님상에 꽃잎을 뿌리고 있다.
이날은 인도 최대 축제 중 하나인 홀리 축제날로 얼굴에 염료 등을 서로 묻히고 나온 인도주민들은 '해피 홀리' '나모 붓다야' 등을 외치며 순례단을 환영했다. 격한 환영 속에 순례단 행렬이 잠시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힌두교도들에게도 부처님은 존귀한 존재로 귀의처가 되고 있다. 열반지에서 기도한다는 그들은 순례단 행렬에 자연스럽게 합장하고 귀의했다.

 총도감 호산 스님의 대표발원으로 순례단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마하가섭에 단 밖으로 두 발을 보이신 도리를, 저희 상월결사 순례단에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편, 순례단은 3월 9일 쿠시나가르 열반당에서 열반지 대법회를 봉행한다.  순례단이 지금까지 걸은 거리는 689km로 쿠시나가르 열반지 대법회 이후에는 네팔로 넘어가,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에서 법회를 갖고 다시 인도로 넘어온다.

순례단이 부처님 다비장에 세워진 라마바르 스투파에 행선 도중 받은 꽃과 준비한 지화 등을 공양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