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문학살롱] 5. 나의 간화선 실참기

세상 전체가 ‘나’임을 알았다  정년퇴직 후 위빠사나 등 명상수행 매진 유튜브서 현재 법사님 만나 간화선 수행 어떤 현상도 본질과 하나라고 체감되자  세상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해  역경은 모두 내 수행을 위한 작업이었다

2023-03-03     백경임 명예교수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죽을 때 두려움 없이 편히 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삶의 과제를 갖고 있었다. 오래전 병고를 겪으면서 이대로 죽는다면 다음 생 역시 몸은 병들고 마음은 괴로울 것이 자명하여 이대로 죽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부처님께서는 분명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셨는데, 부처님을 따르면서도 또 많은 불교수행법을 접하면서도 나는 이 근본문제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수행에 몸을 던지고 싶은 갈증은 있었지만, 평생을 교직에 몸담아 있었고, 맡은 일들과 일상이 시간을 휘감아 세월은 흘렀다. 드디어 기다렸던 퇴임이 나에게도 왔다. 이제는 메인 곳 없어 내가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다. 65세 퇴임을 하고 나니 나는 이미 노보살, 늙음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편안하고 수행하기 좋은 여건이었다. 노년이라고 발목을 잡는 이런저런 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책임진 직책도 내려놓고, 아이들에 대한 책임에서도 벗어났고, 아직은 내 몸 내가 가눌 수 있으니,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참으로 기대되는 좋은 나날들이었다. 

어떤 수행을 할 것인가? 나에겐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간 회자된 간화선은 배울 곳이 마땅치 않을 뿐 아니라, 많은 시간을 보낸 후에 허탈할 가능성이 큰 것 같아 내려놓았다. 수소문 후 요즘 유행하는 이런저런 남방불교 수행법을 체험해 보았다. 다 배워가는 재미가 있었고, 업장 정화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다가왔다. 그 가운데 알아차림에 역점을 두는 ‘쉐우민 수행법’에 몰두해 보기로 하였다.

쉐우민 수행법인 위빠사나는 행동의 일거수일투족과 마음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는 통찰 수행법이다. 내 행동과 마음을 관찰하려니 아무래도 나와 거리를 두게 되어 자연스럽게 객관적으로 나를 보는 힘을 기르게 된다. 

정기적인 수행모임에도 나가고 집중수행도 하면서 한 3년 몰두하다보니 알아차림이 깊어져 대부분의 행동이 내 의도없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욕구에 의해 행동은 습관적으로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또 머리 속에서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잇속 빠르게 정리, 계산, 예측, 계획하고 있었다. 

나의 에고가 잘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살아온 습관의 관성(業)에 따라 행동은 자동발생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였다. 업(業)이라는 불교적 용어에는 의지라는 뜻이 내포돼있다지만, 나는 업에 따른 이 행동의 일어남에 의지라는 것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오히려 행동의 주체가 없음을 알 수 있어 이것이 ‘무아(無我)’이구나 했다. 내 습(業)이 행동을 하게하지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는 것이 알아차려졌다. 

나의 근본적인 두려움이 많은 방어를 만든다는 것을 알았고, 에고의 속절없는 이기심에 부끄러워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알아차림을 하다 보니, 언제나 허공에서 큰 눈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일상생활에서도, 걸어갈 때에도 눈이 나를 따라다녔다. 

“내 마음이 허공에 이런 눈을 만들었구나, 내가 아무래도 잘못된 수행의 길로 들어선 것” 같았다. 상황이 걱정스러워 지도법사 스님께 여쭈어보니 “눈이 어디에서 보고 있는가”하고 물어서, 나의 오른쪽 위쪽에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오른손잡이냐”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고 말씀드리자 “알아차리는 힘이 좋아서 그렇다”고 계속 수행하라며 오히려 격려해 주셨다. 

안심을 하면서도 그것이 뭔지 몰라 답답함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스님께서 “네가 너라고 알고 있는 네 몸이 너가 아니니, 너를 바라보고 있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 알아차림 해보라”고 말씀해 주셨다면 어떠했을까?

유튜브의 출현으로 전 세계 영성가들의 법문이 넘쳐나는 신세계가 열렸다. 내가 공부할 시점에 이런 시대가 도래한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나는 새로운 스승을 만났고 오래전 내려놓았던 간화선 수행을 새로 참구하게 되었다. 새로 만난 법사님은 해박한 동서양의 지식으로 막힘없이 간화선 수행의 요체를 일러주셨다. 깨달음을 근간으로 하는 이 수행법을, 경험을 기반으로 역설하시니 믿음이 갔다. 나는 이 가르침에 나를 던져보기로 하였다. 유튜브의 그 많은 법문에 빠져 살기를 한 얼마간은 정말 행복한 나날이었다.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이렇게 큰 내면적 기쁨을 주었다. 성장하기 위해, 참구하기 위해 삶을 사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유튜브나 줌을 통한 비대면 공부는 자연스레 대면 수업으로 이어졌고, 드디어 실참의 집중수행 기회가 왔다. 법사님과의 첫 집중 수행이었다.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고 “‘네’하고 대답하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화두가 주어졌다. 언제 적 간화선 수행인가? 그 옛날 대학생 때 해본 화두 참구, 이제 일흔이 넘어 재도전이라니! “네”하고 대답하는 내 소리를 따라 내면으로 내면으로 참구해 들어갔다. 답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면은 어둡고 깊고 답답하였다. 체기인 듯 답답함이 이어지는데, 이튿날 오후 갑자기 온 세상에 에너지가 꽉 차오르면서 모든 생명들이 생기에 넘치고, 모두 환희롭고 자비심이 넘치는 평등한 세상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에너지로 후끈한 벅찬 이 느낌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환상인가? 원래 세상을 이제야 바로 알아차리게 된 것인가? 법사님의 지도로 이 ‘에너지장 체험’을 수행의 한 과정으로, 환희로운 경험으로, 그러나 지나가는 경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집중수행을 종종 이어오면서 이러저러한 맑음과 평등, 보살심 등의 감정이 올라오는 경험을 하였으나 지나가는 경계일 뿐이었다. 

중요한 결정적인 체험으로는, 어느 날 저녁 집에서 BTN 불교TV에서 법사님 강의를 듣는 데 “있던 물건이 없어져 안 보여도 없어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 있다”라는 말씀에서 확 시야가 열리면서 ‘본질’이 알아진 경우이다. 벌떡 일어나 걸으며 웃었다. 좀 싱거웠으나 확실했다. 그 이후 법문 듣기가 훨씬 편했다. ‘나’라고 생각했던 이 몸이 내가 아니고, 무한한 그곳이 내 고향임을 아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는 실마리라 하겠다. 

우리 모두 다 한 뿌리이며, 다 이런저런 파도이며 바닷물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라는 법문이 실감나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욕심은 일었고, 큰 스님들이 말씀하시는 ‘중생이 부처’임을, ‘평상심이 도(道)’임을 알 수 없었다. 모든 현상이 파도임은 알겠는데, 나에겐 예쁜 파도, 좋은 파도, 나쁜 파도가 있는 것이다. 

수행은 계속됐고 어느 때 점심식사 후 하루 중 가장 긴 4시간의 정진 때였다. 법사님께서 깨달음의 필요성을 역설하시고, 남은 3시간 제대로 참구하면 충분히 깨칠 수 있다고 하셨다.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이것이 무엇인지?” 독한 사냥개가 상대를 물고 절대 놓지 않듯이, 질문을 한 3시간만 물고 늘어지면 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3시간을 죽기 살기로 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제로 나는 지금 죽어도 현실적으로 큰일이 날 일도 없었다. 나는 사나운 사냥개가 본질을 강하게 물고 ‘네가 뭐냐’고 3시간을 버텨보고자 각오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대답하고 내 몸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이 생명 자체를, 사냥개가 단단히 물고 “너가 뭐냐”고 다그쳤다.

그러기를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도대체 이 승강이 하는 당체가 뭐지”하는 의문이 들어 상황을 짚어보았다. 본질은 이 몸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이것이고, 물고 늘어지는 쪽은 “너가 뭐냐”며 다그치는 그것이었다. 대답도 하고 온갖 작용하는 본질인 이것이나, ‘너가 뭐냐’고 묻는 그것이나 같은 생명 현상, 같은 성질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어? 이상한데? 다 같은 작용인데 왜 대적하고 있지”하는 자각이었다. 내 몸을 다루는 같은 기능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사나운 개가 물고 있던 이빨을 스르르 빼는 것이다. 불현듯 맥락을 짚어보는데, 나를 움직이는 본질과 다그치는 개가 서로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형상화된 관념의 판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새로 조각이 맞추어지는 것이다. 이해 안 되는 것은 이 현상이다. 

나의 무의식에서 관념들이 재조정되는 찰나인 것 같았다. 진동하며 재구조화되는 것이 이미지로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치유나 깨달음, 모두 무의식의 재구조화인가보다. 긴장감 속에서 다시 찬찬히 맥락을 살펴보았다. 

“그렇지!” 어떤 현상이라도 본질과 하나라고 체감되자 세상의 부정적인 면들이 모두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내 인생 역경의 많은 상황들이 모두 내 수행을 위한 작업이었다. 힘든 투병생활도, 날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모두 날 위해 연극을 했던 것이다. 연극의 막이 내린 듯 ‘몰랐지’하면서 웃는 것 같았다. 모두 고마운 스승들로 재조명되며 감사함에 울컥하였다. 장에서 소화가 되느라고 소리가 크게 났다. 온몸이 좀 더워지는 것 같았다. 

‘중생이 부처’라는 말이 받아들여졌다. 3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났다. 법사님께서는 ‘완전히 방점을 찍도록 하라’고 방향을 짚어주셨다. 생각만큼 기쁘지는 않았지만 편안하였다. 이제부터 수행 시작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죄책감과 수치심이 많이 사라졌다. 상담에서 치유하기 힘든 부분이 이렇게 한꺼번에 해결되니 기뻤다. 

원래 도는 ‘언어도단 불립문자(言語道斷 不立文字)’이거늘, 드러낼 수 없는 것을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고 보니, 나의 법상(法相)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 인격적 성숙을 기대할까 두렵다. 단지 내 수준의 체험을 전제로 시작했으니, 최근 얼마 전 경험으로 마무리할 일이다. 역시 집중수행에서 내면으로 진화두를 참구하는 중이었다. 가슴의 답답한 공간이 몸을 박차고 확 열리면서 이 세상 전체가 ‘나’라고 알아지며 서늘하였다. 

그것이 나를 포함하고 있다고 알았는데 ‘내가 전체’임을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소심하게 살고 있었다. 너무나 크고 대단한 존재인데 참 쪼잔하게 살았다. 보살심을 발원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넉넉해졌다. 처음 공부할 땐 체험이 법상(法相)이 될까 저어했다면, 이번에는 습에 의해 작아져 있는 나 자신을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그릇을 키우는 일이 남았다.

백경임 명예교수는
이화여대 가정관리학과,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경희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오리건 주립대학 교환 교수를 역임했다. 동국대 가정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했다. 불교적 관점에서 아동학 연구에 매진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구체적 조작기 아동의 부처님 개념에 관한 조사연구’ ‘불교적 관점에서 본 수태 타태 출생’ ‘불타의 재가아동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