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경] 20. 마하카피 자타가
인간을 깨우친 원숭이 왕 팔리어 본생담인 ‘마하카피 자타카’ 백성들 위해 희생한 미후왕 그려내 불교 초기부터 전해진 붓다 본생담 스투파, 석굴 부조·벽화로 재현돼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 훼손된 자연이 되돌려준 천재지변, 전쟁, 자원의 고갈과 식량난, 자국 우선주의 등 인간의 삶과 가치를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일련의 사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현안 앞에서 지도자의 자질과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 솔로몬 왕에 견줄 만큼 지혜가 뛰어난 지도자도 물론 필요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생담 중에 ‘진정한 지도자는 백성의 행복과 안전을 끝까지 돌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목표로 삼은 왕을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상으로 추천하고 싶다.
경전과 현존하는 유물을 통해서 볼 때 이른 시기부터 불교에서도 살신성인과 책임감 있는 행동을 왕의 자질로서 중요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왕을 깨우친 원숭이 왕 본생담’은 547편의 팔리어 자타카 중에서 407번째 이야기 ‘마하카피 자타카’(Mahakapi Jataka, 큰 원숭이 본생)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와 같다.
“먼 옛날 바라나시에 브라흐마닷타왕이 왕국을 다스리고 있었을 때, 원숭이 무리를 거느리는 원숭이 왕이 있었다. 그 원숭이 왕은 기골이 장대하고 힘세고 위엄이 있어 8만 마리도 넘는 원숭이 무리를 이끌며 히말라야의 숲에 살고 있었다. 그들이 사는 갠지스강 주변에 있는 거대한 망고나무(암바나무, 니그로다나무)에서는 맛과 향을 표현할 수 없는 천상의 열매가 달렸다. 원숭이 왕은 이 열매를 먹다가 아무도 이 신성한 나무를 발견하지 못하게 물 위의 가지에서 자라는 꽃을 모두 따서 열매가 물에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의에도 불구하고 개미집에 숨겨져 있던 열매 한 개가 익어서 강물에 떨어져, 멀리 하류로 떠내려가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렸다. 어부는 처음 보는 거대한 과일을 왕에게 진상하였고, 왕이 그 열매를 삼림관에게 보여주자 망고 열매라고 답하였다. 잘 익은 그 열매를 먹은 왕과 후궁의 여인들은 맛과 향에 온몸이 전율하는 것을 느꼈다. 그 맛에 홀린 왕은 삼림관과 함께 뗏목을 타고 강의 상류로 올라가서, 마침내 그 망고나무를 발견하고 망고를 배불리 먹었다.
자정이 되어 사람들이 잠들자 원숭이 왕과 그의 무리가 돌아와 열매를 먹기 시작했다. 이를 본 왕이 그의 궁수들에게 나무를 둘러싸고 원숭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자, 뛰어난 힘을 가진 원숭이 왕은 강을 뛰어넘어 망고나무에 닿을 수 있도록 긴 등나무 덩굴을 자신의 허리에 묶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망고 나뭇가지를 단단히 잡고 원숭이들에게 자신의 등을 밟고 도망치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건넌 악한 원숭이는 높은 가지에서 원숭이 왕의 등에 힘껏 뛰어내려 원숭이 왕의 등과 심장을 찢어놓고 도망쳐 버렸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왕은 짐승임에도 불구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한 원숭이 왕에 감동하여, 원숭이 왕을 구하려 하였다. 왕은 원숭이 왕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 물었고, 진정으로 훌륭한 지도자는 신하를 끝없이 돌보아야 하며 나를 따르는 이들의 행복과 안전이 유일한 목표라고 답하고 최후를 맞이하였다. 큰 깨달음을 얻은 왕은 원숭이 왕의 장례를 국왕의 장례식과 똑같게 치르도록 명령한 다음, 화장 후 남은 두개골을 금으로 장식하여 탑을 세우고 일생을 보시와 공덕을 쌓았다고 한다. 그때의 원숭이 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며, 왕은 아난이고 악한 원숭이는 데바다타의 전생이었다.”
인간의 왕을 깨우치고 진리에 도달한 어진 사람의 행동이 무엇인지 이야기 한 ‘마하카피 자타카’는 불교미술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2~3세기경에 조성된 ‘바르후트 스투파’(Bhrhut Stupa)의 부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면의 중앙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강을 중심으로 원숭이 왕이 두 손으로 오른쪽의 망고나무 가지를 꽉 붙잡고 있으며, 등나무 줄기로 오른쪽 발목과 왼쪽의 나뭇가지를 단단히 묶은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의 어른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들이 왕의 궁사들이 쏘는 화살을 피해서 원숭이 왕을 밟고 강 건너 왼쪽의 나무로 도망치는 긴박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한편 화면의 가장 위에는 데바닷타의 전생인 악한 원숭이가 원숭이 왕을 해치고자 높은 가지 위에서 막 뛰어내리려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원숭이 왕의 아래에는 자신이 이끄는 무리들을 위해서 등과 심장이 찢어진 원숭이 왕을 구하기 위해 왕의 신하들이 옷을 펼쳐 들고 있는 모습과 죽기 전 왕에게 왕국, 백성, 길거리를 지나는 흔한 수레까지도 그 모든 것에 행복이 찾아오도록 바라고 구해야 진정한 왕이라는 깨달음을 전하는 내용이 잘 담겨져 있다.(그림①)
또한 중국 신장성 위구르 자치구의 쿠차현 키질석굴 13·17·38굴에도 위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벽화가 현존하고 있다. 이중 〈미후왕 본생도〉라 불리는 그림들 중에서 6세기경 그려진 키질 38굴의 벽화를 자세히 읽어보고자 한다.
마름모형의 화면 중앙에 과일나무가 있으며, 그 아래 푸른색 강을 가로질러 두 손은 나뭇가지를 두 발은 덩굴을 연결하여 길게 늘어져 있는 연갈색의 원숭이 왕이 묘사돼 있다. 그리고 원숭이 왕의 등을 타고 강 건너로 도망가는 파란색과 연갈색 두 마리의 원숭이와 이들을 노리고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궁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바르후트 스투파에서처럼 왕이나 악한 테바닷타가 도해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의 살신성인이 잘 전달되고 있다.(그림②)
이런 ‘마하카피 자타카’는 실크로드를 타고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전달돼 그림과 경전에서 그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오나라 시기 강거국의 승려 강승회(康僧會)가 한역한 〈육도집경(六度集經)〉 권 6 ‘정진도무극장(精進度無極章)’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원숭이 왕이 되어 500의 원숭이를 데리고 유희하였는데, 어느 해 가물어서 여러 가지 과실이 넉넉하지 않았다. 국왕이 살고 있는 성은 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 사이에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원숭이의 왕이 그 무리들을 이끌고 왕실의 동산에 들어가서 과실을 먹으니 동산 지기가 왕에게 알렸다. 왕이 원숭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자, 원숭이 왕이 과실을 탐하여 무리들을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하였다며 자책하였다.
그리고 무리들에게 흩어져 칡을 구해 오라고 한 뒤 칡덩굴을 이어서 한 끝자락은 큰 나뭇가지에 매고 또 한 끝자락은 원숭이 왕 자신의 허리에 매고 나무에 올라가서 몸을 던져 반대편 나뭇가지를 잡았으나, 칡이 짧았기 때문에 몸뚱이로 매달려 있어야 했다. 무리들에게 재촉하여 칡과 자신의 몸을 타고 건너가게 하였으나, 무리들이 다 도망간 뒤 원숭이 왕은 두 겨드랑이가 찢어져 물가 언덕에 떨어져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원숭이 왕이 깨어나 왕에게 말하길 가물어서 먹을 것이 없어 국왕의 동산을 침범하였으니, 이 죄는 나에게 있고 나머지 무리는 용서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왕이 탄식하며 짐승의 우두머리도 몸을 죽여서 무리들을 구하는 옛 성현의 넓은 어짊이 있거늘, 사람의 임금으로서 짐승만도 못한 자신을 탓하였다. 이후 왕은 원숭이의 먹이를 뺏지도 죽이지 말라고 명하였다. 원숭이의 왕은 석가모니이며, 국왕은 아난, 500의 원숭이는 500 제자의 전생이었다.”
〈육도집경〉에 적힌 ‘왕을 깨우친 원숭이 왕 본생’은 팔리어 본 ‘마하카피 자타카’와 달리 공간적 배경이 히말라야 산속이 아닌 왕의 동산, 등나무 덩굴이 아닌 칡덩굴, 망고 열매가 아닌 여러 과일, 원숭이 왕이 죽지 않고 기절했다가 깨어남, 8만 마리에서 500마리 원숭이, 악한 데바닷타가 등장하지 않는 등 몇 가지의 차이점이 있다. 이는 인도와 중국이라는 자연 환경적 차이점에서 기원한 것으로,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더라도 따르는 사람들의 행복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근본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처님의 전생인 원숭이 왕이 브라흐마닷타왕에게 이야기한 ‘진정으로 훌륭한 지도자는 신하를 끝없이 돌보아야 하며, 나를 따르는 이들의 행복과 안전이 유일한 목표이다’라는 말이 큰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