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경] 17. 천마본생담
스리랑카 민족 기원설화된 부처님 전생담 역사서 小史·大史 기록된 설화 부처 전생 천마가 상인들 살려 스리랑카의 기원설화로 여겨져 부처님의 자손이라는 자부심도
우리 한민족이 하늘님의 아들 단군의 자손인 것처럼 모든 나라 혹은 민족은 모두 그들만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신비스러운 설화를 가지고 있다. 만약 석가모니 부처님이 민족의 시조 어버이라면 그 후손들은 모두 라훌라와 같은 부처님의 자식이 되며, 저절로 절실한 불교 신자가 될 것이다. 바로 스리랑카의 기원을 석존의 전생을 기록한 본생담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뿌리 깊은 친밀성 때문에 현재도 스리랑카 국민의 80% 이상이 열렬히 불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 법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스리랑카의 역사서 〈소사(小史)〉와 〈대사(大史)〉에 전하는 스리랑카의 개국설화에 의하면 ‘탐바파니’(Tambapan.n.i, 항상 보물이 있다는 뜻)라고 불리던 섬에 싱할라(Sinhala)가 기원전 6세기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실론의 섬 스리랑카의 풍경을 떠올리면 이른 아침 만다린 오렌지 색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줄지어 탁발을 나가시는 모습, 흰색의 옷을 입고 스님들께 정성을 다해 공양 올리는 신자들, 길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보리수 나무와 패엽경(貝葉經)의 재료가 되는 패다라니 나무, 흰색의 거대한 스투파와 사원 등 생각해 보니 이들 모두가 불교 그 자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 즉, 이전까지 구전되던 경전을 패다라니 나뭇잎에 팔리어로 새겨 성문화한 곳이 스리랑카의 중부 마탈레(Matale)에 있는 알루 비하라(Alu vihara, 새 절이라는 뜻)이라는 점이다. 지난 연재에서 종종 인용했던 547편의 팔리어 자타카가 바로 이 스리랑카의 알루 비하라 사원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오늘 이야기의 주제와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 스리랑카인들이 적은 그들의 기원 설화는 어떤 내용일까?
팔리어 자타카 중에서 196번째 ‘발라하사 자타카’(Valahassa Jataka)가 스리랑카의 기원 설화라고 이야기 한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 옛날 탐바파니 섬에 ‘실리사 밧투’라고 하는 야차녀들이 사는 성이 있었다. 평상시에 이 섬은 환술로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섬처럼 보이게 소 떼, 쟁기질하는 사람들, 가축 등의 환영을 만들어 놓았다. 이 섬에 조난당한 상인들이 밀려오면 아름답게 차려입고 온갖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수많은 하녀를 거느리고 아이들을 안고 상인에게 다가가 물과 음식을 권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남편도 상인인데, 배를 타고 나간 지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당신들의 아내가 되겠다고 말하며 그 상인들을 유혹하여 야차 성으로 데려가 고통의 감옥에 가두었다.
어느 날 이 섬에 오백 명의 상인들이 조난을 당해 야차녀들의 성 근처까지 흘러오게 되자, 야차녀들이 그들을 유혹하여 성으로 데려갔다. 우두머리 야차녀는 상인 가운데 우두머리인 대상인 싱할라(Simhala)를, 그 외의 야차녀들은 다른 상인들을 각각 자기의 남편으로 삼았다. 우두머리 야차녀가 한밤중에 남편 싱할라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일어나 고통의 감옥에서 남자들을 잡아먹고 돌아왔을 때, 싱할라는 자신의 아내가 사람이 아닌 야차녀임을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다른 상인들에게 여인들이 야차녀이며, 또 다른 조난당한 사람들이 오면 그들을 남편으로 삼고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니 도망가자고 말하였다. 그러나 상인들 가운데 250명의 사람들은 반대하며 떠나지 않겠다고 하여,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만 이끌고 야차녀들로부터 도망을 쳤다.
이때 온몸이 새하얗고 새와 같은 머리를 하고 있으며, 신비한 힘으로 하늘을 나는 하얀 말발라하사가 성 근처 호수에서 야생 쌀을 먹고 있었다. 상인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들은 천마가 250명의 상인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허리에 올라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꼬리에 매달렸으며, 어떤 사람들은 합장한 채로 서 있었다. 말은 합장하고 서 있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포함하여 250명의 상인 전부를 신비한 힘으로 인간 세상으로 데리고 와서 각자가 살던 곳에 내려놓고 자신이 살던 히말라야로 돌아갔다.한편 야차녀들은 다른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오자 그곳에 남아 있던 250명의 상인들을 모두 잡아먹어 버렸다. 그때 우두머리 상인 싱할라의 충고를 들은 250명의 상인들은 부처님의 제자들의 전생이며, 하늘을 나는 천마 발라하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었다.”
위의 ‘발라하사 본생담’은 ‘말의 왕(Horse King)’이라는 뜻의 ‘아쉬바라자(Avarja)’라고도 부르며, 천마가 부처님의 전생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천마 발라하사를 석가모니의 전생이 아닌 관음보살의 화현으로 그리고 상인 우두머리 싱할라를 석가모니의 전생으로 서술한 ‘싱할라 본생담’ 이야기도 있다.
항해 중에 관세음보살이 도움을 준다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문품(觀世音普門品)’에 바다에서 거친 풍랑이나 나찰을 만나 곤경에 처했을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과 서로 통하는 이야기로서, 아마도 5세기경 인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항해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발라하사 본생담’의 주인공이 천마에서 상인 싱할라로 바뀌어 ‘싱할라 본생담’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사실 현존하는 관련 유물을 보았을 때 천마 발라하사를 주인공으로 한 것이지, 혹은 상인 싱할라를 주인공으로 것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발라하사 본생담’ 혹은 ‘싱할라 본생담’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으로 먼저 5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는 아잔타(Ajanta) 17굴의 ‘싱할라 아바다나(Simhala-avadana)’가 있다.
벽화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화면의 오른쪽 하단에서 시작돼 중단을 거쳐 상단에서 끝을 맺는다. 하단 오른쪽에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젓는 상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중단 왼쪽에 어린 아이를 안은 여인과 음식을 든 여인들이 남자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어 야차녀가 상인들을 유혹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실리사 밧투 성안에 각각 두 명의 여인과 남자가 가까이 앉아 음식을 먹거나 신체를 밀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어서 화면의 상단에는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남자들, 흰색 말을 향해 합장하는 사람들과 말 등에 타거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는데, 남자들을 미혹시켜 잡아먹는 무서운 야차녀들로부터 무사히 탈출하는 긴박한 상황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발라하사 본생담’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벽화에는 무사히 섬을 탈출한 싱할라가 군대를 조직하여 나찰녀들의 섬을 정벌하러 코끼리 군단과 말 군단을 배에 싣고 가서 나찰녀들을 무찌르는 장면도 그려져 있다. 이 장면이 대상인 싱할라가 스리랑카를 건국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부분으로서, 스리랑카 국민들 스스로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손이라는 이야기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증거가 되고 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Angkor Wat, 도시의 사원)에는 12세기 후반 자야와르만(King Jayavarman) 7세에 의해 건축된 니악삐안(Neak Pean, 도사리고 있는 독사를 뜻함)이라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의 동쪽 언덕에 거대한 천마 발라하사가 조각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일반적인 말의 모습과 다르다.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발라하사의 앞 다리는 앞으로 쭉 뻗어 날아가는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현재 날개는 훼손되어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목을 감싸고 꼭 끌어안고 있는 사람, 뒷다리에 필사적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람, 꼬리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의 신체 표현과 얼굴의 표정이 매우 절박하게 표현되어 있어 탈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였을지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스리랑카 민족의 시조가 천마 발라하사이든 아니면 대상인 싱할라이든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라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오늘날 정치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스리랑카 국민들이 민족의 시조가 석존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잃지 않고, 불교의 발전과 보호에 더 많은 힘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이 하루라도 빨리 되돌아오기를 부처님께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