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엽 스님의 자연힐링차] 16. 차를 대하는 일, 사람을 대하는 일
16. 차를 우리기 전에 할 일 4
제5식, 양성(養成)
기초 차식 중에서 양성은 찻잎과 따뜻한 물이 처음으로 만나는 차식으로 차를 우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다. 대지의 기운을 받고 자란 찻잎은 물과 만난 한 잔의 차로 재탄생한다. 자연의 영양분으로 자란 차가 우리에게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과 결합하여야한다. 찻잎이 물을 만나지 못하면 그저 마른 나뭇잎에 지나지 않다.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우려내기 위해 차의 종류나 성질에 따라 물의 온도나 우리는 시간을 세심하게 조절해야 한다.
물의 온도를 적당하게 맞추는 것은 본래 차의 성정과 성분을 발현시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지나치게 뜨거운 물로 차의 향과 성분을 변화시키며 너무 오랜 시간 차를 우린다면 쓰고 떫은 맛을 내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녹차는 곡우를 기점으로 채취하기 때문에 아주 여린 잎이라서 80~85℃ 정도의 물로 녹차를 우린다. 너무 뜨거운 물에 차를 우리게 되면 비타민 성분이 많이 파괴되고 카페인과 타닌 성분이 많이 우러난다. 백차는 90℃, 청차와 황차는 80~90℃, 보이차와 같은 흑차는 100℃에서 차를 우린다.
차의 종류. 물의 온도. 우리는 시간. 차를 마시는 사람의 기호 등을 잘 살펴서 찻자리에 모인 사람의 분위와 기호에 따라 향기로운 차를 우려야 한다. 차를 잘 우려내는 일도 중정법이며 중도법을 잘 지키는 일이 차사의 수행이며 행다수행법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차 한 잔을 우리고 대접하는 일이 쉽다면 쉽지만 한 잔의 차를 우리는 일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여 마신다면 스스로를 자양하며 세상과 사람을 크게 공경하는 일이며 자연의 은혜에 감사함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를 우릴 때 찻잎이 뜨거운 물을 만나게 되면서 여러 가지 성분들이 우러나는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만 비로소 색·향·미가 완벽하게 조화된 차를 얻을 수 있다.
제6식, 신수(身受)
기초 차식의 제6식 ‘신수’는 차가 우려진 다음 손님에게 권하기에 앞서 우린 사람이 먼저 차의 맛을 보는 것을 말한다. 손님에게 권하기에 앞서 우린 사람이 먼저 차의 맛과 향 그리고 차의 풍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다도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미루기보다는 내가 먼저 나서 실천하는 자세를 중시하기 때문에 먼저 차의 맛을 본 후 제대로 차가 우려졌다고 생각될 때 다른 사람에게 차를 권할 수 있다. 만약 차의 맛이나 향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처음부터 다시 차를 우리더라도 절대로 차맛이 완성되지 않는 차를 권하지 않는다. 우려진 차 맛이 쓴지, 단지, 차 기운이 충만한지, 향기가 원만한지, 맛이 풍부한지, 밋밋한지, 차를 우리는 사람이 직접 맛을 보아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도는 이론상의 도가 아닌, 실천의 덕목이며, 차인이라면 누구라도 평생토록 연마하고 실천하고 연구해야 한다.
<논어> 안연편(?쏽?)에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는 사람을 대하는 기본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남을 대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 해주기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다른 사람도 역시 내가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매사에 역지사지의 자세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비추어 다른 사람과 세상을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면서 다른 이를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자신의 독립된 인격체가 성숙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노자는 “내 몸이 아픈 것은 내 몸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고 행복을 꿈꾼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의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재에 대한 존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내가 좋아하거나 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 사람이 처음 태어나 갓난아기 때부터 점차 성장과정을 거쳐 성인이 되면서 자아는 점점 강해지고 단단해지며 자신만이 독점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그러한 집착이 강해지면서 타인의 상황과 감정은 보이지 않게 되면서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나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는 험담과 유언비어까지도 퍼트린다. 이러한 행동과 말은 자신과 상관없이 타인을 아프게 하고 상처가 되는 듯해도 결국 자신을 아프게 하는 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차를 남에게 판매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손에 들어온 차, 자기 가게의 차가 최고라고 주장하며 남의 가게의 차를 폄하하기도 한다. 누구나 맛있는 차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기에 내가 인정할 만한 차맛을 냈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자기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고 하였으니 자기가 마시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도 마시지 않게 하는 것이 차인의 도리일 것이다. 이를 실천하면 차의 아름다움은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차를 마시고 사람을 사랑하는 ‘정다애인(情茶愛人)’의 뜻이다. 또한 인생의 긴 고해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일이 차를 채취하고 만들고 우려 사람을 대하고 스스로를 수신하는 과정과 같다. 항상 자신에게 하듯 다른 사람을 성심껏 대한다면 스스로의 인생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