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경]16. 두껍전과 자고새 본생담

동물들이 전하는 깨달음 이야기 동물 의인화 통해 가르침 전해 한국의 고전 소설 ‘두껍전’ 기원  고려대장경서 등장…앞서 전승 권학사상 담겨 여러 형태 변형

2022-08-29     조성금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강사
그림① 태국 방콕 왓 크루아완 와라위한 사원 벽화 〈자고새 자타카〉의 부분. 태국 아유타야 왕국시기인 15세기 경 조성됐다.

우리의 고전 소설 혹은 전래동화 중에는 특히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웃음과 지혜를 주는 이야기가 많다. 의인화되는 동물에는 토끼, 거북이, 호랑이, 여우, 학, 곰 등 매우 다양한데, 특히 두꺼비는 독을 뿜는 지네와 싸우거나 하늘에서 죄를 짓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업을 씻는 천인으로 등장하기도 하여 주로 선한 주인공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일반적으로 두꺼비를 의인화해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통틀어서 ‘두껍전류 고소설’이라고 하는데,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숲속 동물들의 나이 자랑으로 널리 알려진 ‘두껍전’이다. ‘두껍전’은 조선 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작자나 연대 미상의 동물 우화소설로서, 노루가 주최하는 잔치에 모인 동물들이 상좌(上座)를 다투며 서로 어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슬기와 연륜을 뽐내는 이야기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조선 인조 때 충청도 오룡산에서 열린 노루의 생일 축하연에 모든 짐승들이 초대된다. 토끼가 제안하기를 나이에 따라 윗자리를 정하되, 문견이 많고 적음을 그 기준으로 하자고 하여 두꺼비와 여우가 자리다툼을 하게 된다. 여우가 천하를 편력한 이야기를 하자 두꺼비는 고금의 역사로 맞섰다. 이에 여우가 다시 하늘나라를 구경한 이야기와 천문·지리·시서의 지식으로 맞서자, 두꺼비는 둔갑술·병법·관상법 등으로 응수해 결국 두꺼비가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우는 이에 불만을 품고 갖은 꾀로 두꺼비를 골탕먹이려 했으나, 더욱 창피만 당하고 결국 윗자리를 두꺼비에게 빼앗겼다는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동화책이나 ‘배추도사 무도사’ 등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접했던 이 이야기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고문편에도 실려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두껍전’의 이야기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은 아마도 잘 모를 것이다. 547편으로 이뤄진 〈팔리어 자타카〉의 37번째 ‘자고새 자타카’(Tittira jataka)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히말라야의 숲속에 나이를 알 수 없는 아주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항상 그 나무 아래에서 코끼리, 자고새, 원숭이가 앉아서 놀았는데 어느 날 원숭이가 서로 예의 없이 지냈음을 아쉬워하며 이제부터 공경하며 살자고 이야기했다.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공경하기 위해서 서로의 나이를 이야기하게 됐는데, 코끼리는 이 나무의 꼭대기가 자신의 배꼽에 닿았을 때부터 보아왔다고 자랑하였다. 그러자 원숭이는 자신이 어렸을 때 이 나무의 어린 새싹을 뜯어 먹었다고 말하며, 가장 나이가 많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자고새가 이 나무는 옛날 먼 곳에 있던 용나무의 열매를 먹고, 내가 그 씨를 배설한 것이 이렇게 싹이 나고 자란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가장 나이가 많은 자고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었으며, 코끼리는 목건련, 원숭이는 사리불이었다고 한다. 

이 ‘자고새 자타카’ 이야기는 태국 수코타이 박물관(Sukhothai Museum)과 태국 방콕의 왕실 사원 왓 크루아완 와라위한(Wat Kruawan Worawiharn) 사원 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547종의 자타카를 모두 표현한 왓 크루아완 와라위한 사원 내부의 벽화에는 ‘자고새 자타카’가 잘 표현되어 있다. 사각형의 화면 오른쪽에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히말라야 큰 나무가 묘사돼 있으며, 그 아래에 등장인물인 코끼리, 원숭이, 자고새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도해하고 있다.(그림①) 

그림② 1926년 박문서관에서 출간한 〈두껍전〉 표지.

이 ‘자고새 자타카’는 갠지즈강 중류에서 성립돼 팔리어 경전에 실렸고, 이후 대승불교에도 전해졌다. 불야다라(弗若多羅)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7세기경 한역한 〈십송율〉(十誦律) 권 34권 ‘사막새 본생담’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 여러 비구가 서로들 업신여겨 공경하지 않는 그러한 행동을 보시고 비구들을 모아 말씀하셨다. 과거세 어느 때에 설산(雪山, 히말라야) 기슭에 세 마리의 동물이 함께 살았는데 첫째가 사막새, 두 번째가 원숭이, 세 번째가 코끼리였느니라. 이 세 마리의 동물은 서로를 업신여겨 공경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먼저 태어난 자가 공양하고 존중받으며 우리를 교화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사막새와 원숭이가 코끼리에게 과거에 어떤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묻자, 코끼리가 그곳에 있던 커다란 필발나무를 보며 내가 어렸을 적에 이 나무가 내 배 밑에 닿지도 않았다라고 답하였다.

이번에는 코끼리와 사막새가 원숭이에게 과거의 어떤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묻자, 원숭이가 어렸을 적 땅바닥에 앉아서 이 나무를 잡고 머리로 누르면 나무가 땅바닥으로 휘어지곤 했었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원숭이가 사막새에게 과거의 어떤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묻자, 사막새가 이곳의 커다란 필발나무는 내가 과거의 언젠가 저 나무의 열매를 먹고서 여기에 배설해 이 나무가 생겨나서 이렇게 크게 자랐다라고 답하였다. 이에 원숭이가 사막새에게 그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내가 그대를 공경하고 존중하리다. 그대는 마땅히 나를 위해 설법해 주시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코끼리는 원숭이를 공경해 그로부터 법을 듣고 나서 다른 코끼리에게도 설법해 줬고, 원숭이는 사막새를 공경해 그로부터 법을 전해 듣고 나서 다른 원숭이에게도 설법해 줬으며, 이 사막새가 다시 다른 사막새에게도 설법해 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때부터 이 사막새의 법도가 널리 전파돼 여러 하늘과 인간 세상까지 알려지게 됐다. 세상 사람들이 축생들이 무슨 이유로 선업을 지으며 다시는 인간들의 곡식을 훔쳐가지 않는 것일까라고 의아하게 여기다가, 마침내 축생들도 서로들 공경하는데 하물며 우리들이 못하겠는가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널리 사막새의 법도를 익히고 5계(戒)를 받들었으므로, 그 목숨이 다하자 모두 하늘나라에 태어났느니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그 사막새가 바로 나였고, 원숭이는 지금의 사리불이고 코끼리는 지금의 목건련이다.”

팔리어 ‘자고새 자타카’와 〈십송율〉 ‘사막새 본생담’의 이야기를 비교해 보면, 배경은 똑같이 히말라야이며 등장인물은 각각 코끼리, 원숭이, 자고새 그리고 코끼리, 원숭이, 사막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인 새만 자고새 혹은 사막새로 다를 뿐, 동물들이 이야기한 자신들의 나잇대 묘사는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코끼리는 목건련의 전생, 원숭이는 사리불의 전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고새 자타카’ 혹은 ‘사막새 본생담’이 언제 우리나라에 전해졌는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이미 그 존재를 고려시대 때 편찬된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연암(燕巖)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지은 〈민옹전〉(閔翁傳)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조선 후기 소설의 형태로 ‘두껍전’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에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섬동지전’(蟾同知傳) ‘섬처사전’(蟾處士傳) ‘섬공전’(蟾公傳) ‘녹처사연회’(鹿處士宴會) ‘옥섬전’(玉蟾傳) ‘금성전’(金蟾傳) 등의 여러 이본이 있을 정도로 각계각층에 유행했다.

‘두껍전’이 이처럼 유행한 배경에는 아마도 어른을 공경하는 ‘장유유서’와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어른 대접을 받으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권학사상’이 조선 후기 사회적 사상과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겉모습으로 보기에는 다소 징그럽고 힘도 없으며 어리석어 보이지만, 겉모습과 달리 슬기와 지혜를 갖춘 두꺼비를 통해 외형보다는 속에 든 내면이 중요하다는 가르침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18세기 실학의 대표적인 인물 박지원도 이러한 점을 중요하게 여겨 신분이나 권력 등이 아닌 오로지 경륜과 지혜를 겨루는 이야기를 자신의 책에 서술했을지도 모른다. 

경험과 지혜가 겉모습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 자고새를 모습이 흉한 두꺼비로 바꿔 대중의 문학으로 만든 우리 조상들의 가르침과 21세기의 사회모순을 미리 예견하신 부처님의 지혜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