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경] 10. 무주상보시 수대나 태자
보시, 수대나 태자처럼 해보자 섭파국태자 수대나 자비 지극해 자기아들, 부인까지 보시하기도 지극한 보살행, 벽화 등 도상화 고려代 전해져 보협인탑 도해돼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공부하면서부터 ‘전생에 베푸신 가장 큰 보시와 공덕이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은 항상 있었다. 불현듯 욕심 많은 어린 나에게 할머니께서 나라의 귀한 보물과 처자식을 고통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도 수대나 태자(須大拏太子)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것 같은데, 할머니는 어떻게 이 이야기를 알고 계셨을까? 손녀의 이름을 거란대장경의 〈조성금장(趙城金藏)〉에서 빌려오신 분이니 당연히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으나, 팔리어경전과 대승경전들에서 ‘수대나 태자 본생담’을 여럿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유통되었던 이야기임은 확실하다.
‘수대나 태자 본생담’은 ‘비슈반타라 자타카’(Visvantara Jataka) 혹은 ‘베산타라 자타카’(Vessantara Jataka)라고 불리며, 일찍이 기원전 3세기 이후 인도의 바르후트 스투파와 아마라바티 스투파(Amaravati)에서부터 간다라, 중앙아시아, 중국과 한국에서 그 현존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보시의 한계를 감히 말할 수 없는 줄거리 때문인지 이 경전이 실려있는 〈육도집경(六度集經)〉 제2권에 ‘보시도무극장(布施度無極章)’ 즉, 보시의 끝없는 단계라는 장을 만들어 수대나태자 본생담을 기록하고 있다. 수대나태자 본생담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전에 섭파국(葉波國)의 살자라는 왕에게 수대나라는 태자가 있었다. 태자는 자비와 효성이 높았으며 널리 보시해 그 혜택이 중생에 고루 닿았다. 의복과 음식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는 말하자마자 그것을 주었고, 금은과 여러 가지 진귀한 보배와 수레·말·전답·주택 따위를 구하여도 주지 않음이 없었다. 왕에게 ‘라사화대단’이라는 흰 코끼리가 있었는데, 그 힘이 60마리의 코끼리를 쓰러뜨릴 수 있어 전쟁에서 섭파국이 번번이 이겼다. 이에 적국의 왕이 태자의 어짐을 이용하여 여덟 바라문을 보내어 흰 코끼리를 달라고 하자, 태자는 코끼리에 금은 보배를 실어 바라문에게 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관리들이 왕에게 나라의 안전을 지키는 신묘한 코끼리를 적국에 준 태자를 출궁시켜야 한다고 간청했다.
왕에게 쫓겨나면서도 태자는 사재를 털어 궁핍한 백성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태자비 만지와 아들 야리(耶利), 딸 계나연(햊拏延)을 데리고 단특산(檀特山)으로 향하였다. 도중에 처음으로 만난 바라문이 구걸하자 입고 있었던 보배와 옷을 모두 주어 버렸다. 다시 처자를 수레에 태우고 가는데, 두 번째 만난 바라문이 말을 원하여 말을 주고, 태자가 직접 수레를 끌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난 바라문이 수레를 달라고 하여 수레를 주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걸어서 21일 만에 단특산에 도착한 태자 가족은 나무와 풀로 엮어서 집을 짓고, 머리는 묶고, 풀잎으로 만든 옷을 입고, 과일을 먹고, 샘물을 마셨다.한편 다른 나라에 구류손(鳩留孫)이라는 늙고 가난한 바라문에게 젊은 아내가 있었는데, 힘든 일을 시킬 종을 원하여 보시로 널리 알려진 수대나 태자의 두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태자의 거처를 묻는 구류손에게 백성들이 보시를 행하다 쫓겨난 태자의 처지가 안타까워 알려주지 않자, 거짓으로 섭파국 왕과 여러 신하들이 태자를 돌아오라 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를 들은 한 사냥꾼이 태자의 거처를 가르쳐 주어 태자를 만난 구류손이 두 아이를 원하자, 어머니를 찾으며 슬피 우는 아이들을 묶어 바라문에게 주었다. 그때 숲에서 과일을 따다가 이상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돌아오는 태자비를 보고, 제석천이 태자의 서원이 무너질까 염려되어 사자, 이리, 범으로 변하여 길목을 막고 구류손과 아이들이 멀리 갈 때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태자비가 돌아와서 바라문에게 두 아이를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애통해하며 눈물이 그치질 않으니, 제석천이 마지막으로 태자의 진심을 시험하였다. 제석천이 바라문으로 변하여 태자비를 원하자 곧 태자비를 넘겨주려는 태자에게 감동하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태자가 답하길 큰 부자가 되어서 항상 보시를 행하고, 지금보다도 욕심이 없도록 하고, 부모님과 나라의 백성들을 만나게 해달라 하였다.마침 구류손의 아내가 귀한 두 아이들을 비싼 값에 팔아오라 성화를 부려서, 구류손은 섭파국의 왕에게서 두 손자의 값으로 은전 1천과 황소와 암소를 각각 백 마리를 받았다. 두 손자를 만난 왕은 사자를 보내어 태자 내외를 데리고 오라 명하였고, 태자가 성에 돌아와 다시 보시하자 이웃 나라의 고통받던 백성들이 모두 귀화해 적들도 어짊을 숭상하고 도둑이 다투어 보시하였다고 한다.”
위의 〈육도집경〉에서는 흰 코끼리 ‘라사화대단’이 60마리의 코끼리와 맞먹을 정도로 힘이 세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팔리어 대장경의 547번째에 기록된 ‘베산타라 자타카’에서는 가뭄과 기근을 해결하는 상서로운 코끼리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태자의 두 아이를 데려가 할아버지 왕에게 큰돈을 받은 탐욕스러운 바라문 구륜손은 주자카(Jujaka)라는 이름으로, 데바닷타(Devadatta)의 전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팔리어 자타카에서 주자카는 왕에게 받은 많은 돈으로 산 새집에서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체해서 죽었고, 상서로운 코끼리는 적국 칼링가에서 다시 돌려보냈다고 쓰여 있다.
이러한 수대나태자 본생담을 묘사한 이른 사례로서 3세기경 제작된 아마라바티 스투파의 조각을 보면 이야기를 매우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화면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왼쪽의 상단에 태자가 상서로운 코끼리 라사화대단을 적국 칼링가국에서 온 바라문들에게 진귀한 보물과 함께 건네주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그리고 화면 중앙 아랫부분에 섭파국에서 추방돼 단특산으로 향하는 태자의 가족 앞에 수레와 말을 달라고 청하는 바라문이 표현돼 있다. 화면 중앙 윗부분에는 숲과 오두막을 배경으로 어깨에 바구니를 메고 과일을 따러 숲으로 간 태자비 그리고 두 아이를 종으로 데려가길 청하는 바라문 주자카(=구류손)와 아이들의 손을 묶어서 건네는 태자가 묘사되어 있다. 이어서 화면의 오른쪽은 용서받은 태자가 헤어졌던 아이들과 함께 보시를 이어나가는 장면이 잘 표현돼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쿠차(庫車)지역 키질석굴에도 7·8·17·38·69·81·157·179굴 8개의 굴에 수대나태자 본생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말경에 조성된 키질석굴 38굴의 천정 중앙에 그려진 이 벽화는 마름모형의 화면에 이야기의 가장 극적인 한 장면을 담고 있다. 그림을 보면 오두막을 배경으로 앉은 태자가 두 아이의 손목을 묶을 끈을 건네고 있으며, 화면 왼쪽에 파란색 피부에 붉은 머리카락의 바라문이 두 손으로 그 끈을 받으려 하고 있다. 키질석굴에 도해된 57종의 본생도들은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한 장면만을 묘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아마도 이 그림을 그린 화공은 수대나태자 본생담에서 태자가 두 아이를 탐욕스런 바라문에게 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아프고, 아이들의 처지가 애달프게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에도 북주(北周, 577~581)시기부터 수대(隋, 581~619)까지 428·419·423·427굴에 도해 되었다. 6세기경 그려진 막고굴 428굴의 수대나 본생도는 중국식의 서술적인 표현방법으로 이야기의 순서가 ‘S’자 형태로 이어져, 화면의 왼쪽 윗부분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른쪽 아래에서 끝난다. 왼쪽 상단에 궁전을 배경으로 태자가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 말을 보시하는 장면과 궁전 안에 왕관을 쓴 왕과 마주 앉아 있는 태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여덟 명의 바라문이 태자에게 상서로운 코끼리를 얻어 기뻐하는 모습에 이어서 중단 오른쪽에 코끼를 탄 바라문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신하들의 간청에 의해 쫓겨나게 된 태자가 남은 재산을 나누어 주는 장면과 중단 왼쪽에 수레에 태자비와 두 아이를 태우고 길을 떠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하단 왼쪽에 길에서 만난 바라문에게 말·수레·옷을 벗어주고 두 아이들을 어깨에 메고 길을 가는 태자 부부와 숲속의 오두막이 표현돼 있으며, 오른쪽 끝 두 아이를 묶어서 끌고 가는 바라문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후의 이야기는 그려져 있지 않으나, 끝없는 보시를 행하는 수대나태자의 고된 수행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보시와 공덕의 끝없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처님의 전생이야기가 무엇이냐는 자문에 수대나태자 본생이라고 거리낌 없이 답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인도를 건너 우리나라의 고려시대 보협인탑에 도해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