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경] 8. 여섯 어금니를 가진 코끼리왕

질투·시기, 나 자신도 망친다   여섯 어금니 가진 코끼리 본생담 질투로 자신과 타인 파멸로 몰아 5~7C 중앙 아시아 벽화 도상화 “누군가를 미워말라” 가르침전해

2022-04-26     조성금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외래교수
그림①. 아잔타 17굴 벽화인 '샤단타 자타카'부분으로 5세기에 조성됐다. 어금니를 뽑는 샤단타가 묘사돼 있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가장 해악을 끼칠 때가 마음에서 질투와 시기심이 일어났을 때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투란 이웃이 지닌 것을 내가 소유하지 못한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며, 시기란 내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이웃이 가진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상대방에게는 있는데 나는 왜 없을까’라고 물으며 갈등의 중심을 나에게 두는 것이 질투로서 질투는 때로 상대방처럼 되고 싶은 마음과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경쟁심을 유발하여 열심히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반면에 상대방이 소유한 좋은 것을 보면 단지 그 사실 때문에 불편해지는 감정이 시기(猜忌)로, 시기는 늘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타인이 잘되거나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질투와 시기심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소유의 대상이 물건이 아닌 사람일 경우, 즉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거부감과 상실감을 정신과에서는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과 같은 파괴력을 지닌다고 한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중에서도 부처님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질투와 시기심에 자신과 소중한 이들까지 함께 파괴시킨 안타까운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현우경(賢愚經)〉, 팔리어로 기록된 〈자타카(Jataka)〉에는 어리석은 시기심으로 자신을 두 번이나 죽인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육아상(六牙象) 본생담’ 혹은 ‘샤단타(Chaddanta) 자타카’라고 불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로서,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사위성 출신의 어떤 젊은 비구니가 부처님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윤회를 반복하면서 내가 저렇게 아름다운 분의 아내가 된 적이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전생이 떠올랐다. 먼 전생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바라나시국의 샤단타라는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아름다운 코끼리 왕이셨을 때, 그분의 둘째 왕비 큘라슈바다였던 전생을 생각해 내었다. 

이러한 전생이 떠오르자 그 기쁨에 감격했으나, 곧 다시 코끼리왕 샤단타에게 소눗타라라는 사냥꾼을 보내어 독화살을 쏘아 그 목숨을 빼앗은 일이 있었음을 기억해 내었다. 샤단타는 히말라야의 숲속에서 8만 마리의 코끼리들을 이끄는 왕으로서 오묘하게 빛나는 여섯 개의 어금니를 지녔으며, 마하슈바다와 큘라슈바다라는 아름다운 두 명의 아내를 거느렸다. 

어느 날 샤단타가 사라쌍수를 코로 흔들었는데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은 첫째 왕비인 마하슈바다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붉은 개미와 나뭇가지는 둘째 왕비 큘라슈바다에게 떨어져 샤단타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더해서 샤단타가 첫째 왕비에게만 아름다운 연꽃을 선물하는 모습을 본 둘째 왕비는 너무나 화가 나서 다음 생에 샤단타에게 복수를 할 것을 맹세하며 스스로 음식을 먹지 않고 목숨을 끊었다. 

얼마 후 큘라슈바다의 소원대로 선현이라는 이름의 어여쁜 여인으로 태어나 바라나시의 왕비가 되어, 샤단타에게 복수할 결심을 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왕에게 거짓으로 큰 병이 든 행색을 하며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상심하여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에게 말한 왕비의 소원은 히말라야에 사는 여섯 개의 어금니를 지닌 흰 코끼리의 어금니 한 쌍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왕은 전국의 사냥꾼을 모았는데, 그중에서 사냥꾼 소눗타라에게 왕비가 샤단타가 사는 곳을 알려주며 코끼리의 어금니를 뽑아오라고 명령했다. 수행자처럼 보이려고 승려의 가사를 입은 사냥꾼 소눗타라는 마침내 샤단타의 경계심을 허물고 기회를 엿봐서 독이 묻은 활을 쏘아서 그를 붙잡고 어금니를 뽑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톱으로도 칼로도 어금니를 뽑을 수가 없었다. 그때 코끼리 샤단타가 왜 자신의 어금니를 뽑으려고 하는지 물으니 사냥꾼은 왕비의 소원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그 말을 들은 샤단타는 고통을 참으며 자신의 코로 어금니를 뽑아서 사냥꾼에게 주고 죽음에 이르렀다. 바라니시의 궁궐로 돌아온 사냥꾼은 왕비에게 샤단타의 빛나는 어금니 한 쌍을 올리며 지난 상황을 설명하자, 왕비는 전생에 그녀가 사랑했던 남편 코끼리 왕 샤단타를 떠올렸다. 왕비는 자신이 남편을 죽게 만들었다는 슬픔에 가슴이 찢어져 죽음에 이르렀다. 


 

그림②. 아잔타 17굴 벽화인 '샤단타 자타카'부분. 샤단타의 죽음을 듣고 슬픔에 누운 왕비가 그려져 있다.

위의 이야기에서 샤단타 코끼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며, 둘째 왕비 큘라슈바다와 바라니시국의 왕비 선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온 젊은 비구니의 전생이다. 그리고 사냥꾼 소눗타라는 당연하게도 제파달다의 전생이다. 이 ‘육아상 본생담’과 관련된 그림은 기원전 3~2세기경 조각된 인도의 바르후트(Bharhut) 스투파에서부터 출현하며, 기원후 5세기경 조성된 아잔타 17굴과 6~7세기경 제작된 중국 신장성 위구르자치구 쿠차(庫車, Kucha)의 키질(克孜爾)석굴 7·14·17·38·206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5세기경에 그려진 아잔타 17굴의 〈샤단타 자타카〉를 살펴보면 직사각형의 넓은 화면에 흰색의 거대한 코끼리가 자신의 코로 상아를 휘감아 뽑고 있으며, 그 앞에 활과 화살을 들고 앉아 있는 인물이 묘사돼 있다. 

앞서 살펴본 본생담 경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흰 코끼리는 부처님의 전생인 코끼리 왕 샤단타일 것이며, 활과 화살을 들고 샤단타를 바라보는 인물은 데바닷타의 전생인 사냥꾼 소눗타라로 보인다. 

그림의 정황상 샤단타가 코로 어금니를 뽑는 장면을 통해서 이미 소눗타라에게 독화살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면서, 바라나시의 왕비가 자신의 어금니를 원해서 소눗타라가 깊은 산속까지 샤단타를 죽이러 왔음을 알게 된 시점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에서는 표현되지 않은 소눗타라를 원망하지 않는 샤단타의 마음과 스스로 자신의 어금니를 뽑아주는 샤단타의 고통은 감히 희생과 보시라는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그림①) 

그리고 샤단타의 어금니를 가지고 바라나시 왕궁으로 돌아온 소눗타라가 왕비에게 한 쌍의 어금니를 쟁반에 받쳐서 올리는 장면이 묘사돼 있고, 맞은편에 침상에 누운 여인이 시종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왕비가 소눗타라가 샤단타를 죽이고 어금니를 얻은 과정을 들으며, 전생에 사랑했던 남편을 죽였다는 괴로움과 충격에 쓰러져 가슴이 찢어져 죽었다는 내용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그림②)

아잔타 17굴처럼 서술적으로 본생담의 내용을 자세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바르후트 스투파나 키질 석굴처럼 하나의 공간에 이야기의 가장 핵심 부분만을 도해하는 경우도 있다. 

키질석굴 17굴의 〈육아상 본생도〉는 위의 아잔타 17굴의 〈샤단타 자타카〉와 같은 내용을 도해하고 있지만, 마름모 형태의 화면에 하나의 장면만이 간략히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화면구조는 키질 석굴에 그려지는 본생도들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각 본생담들에서 갈등의 최고조에 해당하는 내용만을 시각적으로 뚜렷하게 강조하여 도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름모 형태의 화면 오른쪽에 숨어있었던 함정에서 나와 활시위를 겨누고 있는 인물이 보인다. 이 장면은 사냥꾼 소눗타라가 샤단타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 수행승으로 보이려고 승려의 가사를 입고 가사 안에 독화살을 숨기고 있다가 샤단타 혼자 있는 기회를 엿보다 마침내 독화살을 쏘았다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화면 왼쪽에는 활의 시위를 당기고 있는 사냥꾼 소눗타라를 바라보는 파란색 코끼리가 그려져 있다. 배경인 바라나시 왕궁도 히말라야 산속의 많은 코끼리들도 생략된 그림이지만, 충분히 본생담 이야기의 앞뒤 배경이 짐작되게 그려졌다. 그림을 보는 사람이 가슴 졸이며 제발 샤단타가 소눗타라가 쏜 독화살을 맞지 않았으면, 차라리 멀리 도망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긴장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 다스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둘째 왕비 큘라슈바다와 바라나시 왕국의 왕비가 생을 거듭하면서 시기심과 복수심에 자신을 버리고 결국은 사랑하는 상대까지 파괴한 결말이 너무도 안타깝고 허무하다. 최고의 복수이자 최선의 자비심은 깨끗이 잊고 선하게 아주 잘 사는 것이라는 흔한 말이 너무도 가슴 깊이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