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담] 5. 황금뿔 사슴

악인은 善으로 보답하지 못한다   부처님·데비닷다 전생담 ‘황금 사슴’ 위기의 상인, 황금 사슴 구해줬으나 탐욕에 눈 먼 상인은 사슴을 배신해 무리한 욕심은 항상 화 불러 일으켜 탑·사원·석굴 벽화에 도상화 남아

2022-03-15     조성금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외래교수

세상을 살아가면서 선의로 행한 선행이 상대에게 왜곡돼 전달되거나 악행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마음의 상처와 함께 ‘차라리 하지 말 것’이라는 자책이 남게 된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련된 일화에서 항상 악인으로 등장하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 데바닷타(Devadatta, 提婆達多, 調達)와의 전생에서부터 거듭된 악연을 생각하면 후회될 일도 미움으로 남을 일도 없는 듯하다. 그저 ‘나는 옳은 했을 뿐이고, 당신은 전생의 데바닷타 같은 사람이었나보다’하고 크게 숨 한 번 쉬고 털어버리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오늘은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혹은 죽을 뻔한 목숨을 살려주어도 악인은 선으로서 보답하지 못한다는 부처님과 데바닷타와의 전생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에 조성된 바르후트 스투파(Bhrhut Stupa)에서는 〈미가 자타카〉(Migajataka), 팔리어 자타카의 내용을 15세기 경 도해한 태국 방콕의 왓 크루아완 와라위한(Wat Kruawan Worawiharn)사원 벽화에서는 〈루루 자타카〉(Rurujataka), 〈불설구색록경(佛說九色鹿經)〉을 도해한 북위 시기(北魏, 386~534) 돈황 막고굴(敦煌 莫高窟) 257굴에서는 〈구색록 본생도〉(九色鹿 本生圖)라고 불린다. 경전 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팔리어 자타카의 대략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① 기원전 3세기 조성된 바르후트 스투파에 그려진 '미가 자타카'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 데바닷타가 부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자, 전생에도 그의 목숨을 구해 주었지만 부처님의 덕을 알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설한 것이다. 옛날 바라나시의 한 부자에게 마하다나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자 죽기로 마음먹고 강에 뛰어들었다. 그때 전생의 부처님인 황금빛이 나는 사슴이 격류에 떠내려가는 그를 구해주었다. 황금색 사슴은 마하다나카에게 자신의 존재를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하였다. 

얼마 후 그 나라의 왕비가 황금 사슴이 설교하는 꿈을 꾼 뒤 왕에게 황금빛 사슴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왕이 황금 사슴의 거처를 알려주는 사람에게 금화·코끼리·미녀·마을을 내리겠다는 포고문을 붙였다. 마하다나카는 왕에게 황금 사슴을 찾을 수 있다며, 왕과 군대를 이끌고 황금 사슴이 사는 숲으로 향했다. 숲을 포위한 병사들이 황금 사슴에게 활을 겨누자, 사슴이 왕에게 나아가 자신의 거처를 알려준 이가 누구인지 물었다. 이에 왕이 마하다나카를 지목하니 차라리 통나무를 구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며, 오히려 왕에게 배신자 마하다나카를 벌하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 

왕과 함께 궁궐로 간 황금 사슴은 왕비와 궁인들에게 설법하며 모든 생물을 죽이지 말 것을 요청했고, 그 이후로 누구도 어떤 짐승이나 새도 해치지 못하였다. 배은망덕한 상인의 아들 마하다나카는 데바닷타의 전생이었으며, 황금빛 사슴은 석가모니의 전생이었다. 그리고 왕은 석가모니의 최고 제자 중 한 명인 아난다(Ananda)의 전생이었다.

위의 내용과 관련된 그림들을 살펴보면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기원전 3~2세기경 조각된 바르후트 스투파의 〈미가 자타카〉가 있다. 원형의 화면 안에 석가모니의 전생인 무릎을 꿇고 있는 사슴을 중심으로 상단에는 나무들 그리고 하단에 물살이 묘사된 강이 조각되어 있다. 좌우에는 사슴의 무리들과 사슴을 향해서 합장을 취하고 있는 왕과 화살을 겨누고 있는 병사 그리고 배신자 상인의 아들이 손가락으로 사슴을 가리키고 있다. 궁사의 옆에서 오른손 검지로 사슴을 지목하는 인물이 데바닷타의 전생인 마하다나카를 묘사한 것으로서, 강에 빠져서 사슴의 등을 타고 뭍으로 올라오는 인물과 동일인이다.

초기 자타카 화면구성의 특징은 하나의 화면에 시간의 순서대로 도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요한 사건 부분을 화면의 중앙에 배치하고 상하좌우에 배경이 되는 내용을 묘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조각 역시 이러한 초기의 표현 방식을 취하면서, 원형의 화면 상부에 ‘미가 자타카’라고 음각으로 제목을 새겨 놓았다. 이처럼 제목을 써놓는 방식은 초기의 일부 작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서, 아마도 경전의 내용과 도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해를 위함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그림①)
 

그림② 15세기 조성된 태국 왓 크루아완 와라위한 '루루 자타카'의 부분.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비록 15세기이지만, 팔리어 자타카의 내용을 도해하여 한역 경전보다 이른 시기에 성립된 초기 자타카의 내용을 담고 있는 왓 크루아완 와라위한사원 벽화의 〈루루 자타카〉를 보겠다. 사각형의 화면에 높은 담장과 화려한 누각의 궁전이 배경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누각 안에 고깔 모양의 금관을 쓴 왕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한 인물을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누각의 담장 밖에 흰 사슴을 데리고 있는 인물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 인물은 왕 앞에 앉아 있는 인물과 동일인으로서 상인의 아들 마하다나카로 짐작된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이 무릎 꿇고 있는 마하다나카의 이마·목덜미·뒤통수·가슴·옆구리에 점 혹은 종기로 보이는 노란색 점들이다. 이는 팔리어 자타카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한역 경전인 〈불설구색록경〉에 적혀있는 배은망덕의 벌로 받은 종기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그림 ②)

이와 관련된 내용을 한역 경전에서는 〈보살본연경 하권(菩薩本緣經 卷下)〉 제7 녹품(鹿品)과 〈불설구색록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경전의 내용에는 커다란 차이는 없으나 다만 사슴의 색을 〈보살본연경 하권〉에서는 영롱한 칠보(七寶)라고 하였고, 〈불설구색록경〉에서는 아홉 가지의 색을 가진 사슴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팔리어 자타카에서 황금빛 사슴으로 묘사된 것과 달리 한역 경전에서는 중국인들이 고대부터 귀하게 여겨온 ‘칠보’ 혹은 가장 완벽하다는 숫자 ‘아홉’을 경전의 내용에 넣어 중국인들의 이해력과 친밀감을 높이고 있다. 

북위 시기에 그려진 돈황 막고굴 257굴 서벽에는 〈구색록 본생도〉가 기다란 두루마리 형태의 화면에 도해 되어 있다. 화면의 구성은 뾰족뾰족한 산들을 연이어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고 있으며, 사건의 중심인 사슴과 데바닷타의 전생 인물이 여러 차례 반복해 등장하고 있다. 화면의 가운데에는 노란색 몸에 녹청·백·감청으로 점박이 무늬가 있는 사슴과 왕의 대면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화면 왼쪽 강에서 빠진 인물을 사슴이 업고 나오는 모습 그리고 사슴 앞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아 사슴의 존재를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는 내용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림③ 북위 시기 조성된 돈광 막고굴 257굴 서벽 벽화. '구색록 본생담' 내용을 담았다.

또한 화면 오른쪽에는 궁전의 높은 누각에 왕과 왕비가 앉아 있으며, 그 앞으로 마하다나카가 사슴이 있는 곳을 말하는 장면 그리고 화면의 가운데를 향해서 몸 전체에 흰색 종기가 난 마하다나카가 손가락으로 사슴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 매우 자세히 그려져 있다. 말을 탄 왕의 뒤를 따르는 인물은 긴 창 혹은 칼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바르후트 〈미가 자타카〉의 활을 든 궁수 대신 묘사된 것으로 짐작된다.(그림③) 

팔리어 자타카의 482번째 <루루 자타카>와 한역된 〈불설구색록경〉의 차이점은 사슴의 생김새가 황금빛 나는 사슴에서 아홉 빛깔의 사슴으로 바뀌었다는 점과 팔리어 자타카에서는 왕이 아난의 전생이라고 서술되어 있으나, 한역 경전에서는 위험을 알려준 까마귀가 아난의 전생이라고 적혀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석가모니의 전생인 사슴과 강에서 목숨을 건져준 은혜를 배신한 인물이 데바닷타의 전생이라는 두 주인공과 핵심적인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한편 한역 경전과 돈황 257굴의 〈구색록 본생도〉만을 보았을 때는 배신의 벌로 받은 온몸의 종기가 한역 경전의 번역과정에 유입된 것으로 이해하였으나, 태국의 〈루루 자타카〉를 통해서 구전되는 과정에 글로 적히지 않았을 뿐 원래의 팔리어 자타카에도 배신의 천벌을 받은 마하다나카의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범부인 우리는 내세에 부처로 태어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데바닷타로 태어나지 않으려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가슴 깊게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