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금의 스토리텔링 본생경] 3. 기로국(棄老國)과 고려장
고려장 ‘NO’… 노인 공경 이야기입니다 예로부터 노인 버리는 풍습 존재 부처님 본생담 ‘기로국연’서 확인 노인이 천신 문제 풀어 나라 구해 韓 ‘고려장’ 민담도 본생담의 변주 어디에도 고려代 ‘棄老’ 기록 없어
모든 동화와 설화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 중에서도 읽고 나서 마음이 쓰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몇몇 동화가 있었는데, 그중에 ‘고려장 이야기’가 첫 번째였다. 사전적으로는 고려에서 나이든 노인을 산이나 동굴에 버리는 장묘 행위를 ‘고려장(高麗葬)’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설 이외에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고증할 수 있는 고려장 관련 문헌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족 간의 가슴 아프고 비극적인 생이별 혹은 생매장 이야기는 어디에서 기원할까?
중국에 나이가 60세가 되면 기사요(寄死窯)로 보낸다는 설화가 있다. 60세가 되면 흙을 판 구덩이나 동굴에 살아있는 사람을 데려다 놓았다가, 죽으면 다른 곳에 매장하는 풍습으로서 이러한 장소를 자사요(自死퇗), 기사요(己死퇗), 참동(參洞), 대사요(待死퇗), 차사요(借死퇗), 노인동(老人洞) 등으로 부른다. 기사요는 현재 고고학적으로 중국의 허난(河南)성, 후베이(湖北)성, 산시(陝西)성을 통과하여 흐르는 한수(漢水) 중류 지역에 대규모로 존재하고 있다. 중국에서 기사요 풍습이 발생하고 존재한 시기는 늦어도 춘추(春秋, BC 770~403)시대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당시의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경제적 발전단계에서 피치 못할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다.(그림②)
문헌 기록으로 가장 이른 사례는 4세기 중반~5세기 후반 길가야(吉迦夜)와 담요(曇曜)가 한역한 〈잡보장경(雜寶藏經)〉 기로국연(棄老國緣)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인을 공경하면 큰 이익이 있느니라. 일찍 듣지 못한 것을 알게 되고, 좋은 이름이 멀리 퍼지며, 지혜로운 사람의 공경을 받는다. 먼 옛날에 기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 노인을 버리는 법이 있었다. 한 대신이 국법을 어기고 늙은 아버지를 동굴에 숨겨 효도로 섬기고 있었다. 어느 날 천신(天神)이 기로국 임금에게 뱀 두 마리를 보내면서 암컷과 수컷을 구별하라는 문제를 내었다. 문제를 잘 풀면 나라가 태평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칠일 이내에 나라를 멸하겠다고 말하자 임금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걱정이 많았다. 그때 대신이 동굴에 계신 아버지에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니 아버지는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가늘고 연한 물건을 뱀 몸에 놓아 보면 알 수 있는데, 몸이 움직이는 것은 수컷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암컷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대신은 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임금께 말해서 암수를 제대로 구별할 수 있었고, 나라의 위기가 잘 해결되었다.
그러나 천신이 임금에게 또 다른 문제를 냈는데, 코끼리의 무게를 재라는 것이었다. 대신의 아버지는 큰 배를 만들어 코끼리를 배에 실었을 때 배가 물에 잠기는 깊이를 표시해두고, 나중에 그 표시한 곳까지 돌들을 채우면, 돌들의 무게가 바로 코끼리의 무게라고 가르쳐주었다.
그 후 천신은 임금에게 진단목(眞檀木) 토막 하나를 보내어 나무의 위와 아래를 구별하라고 했다. 대신의 아버지는 물에 띄워보면 뿌리 쪽이 잠기고 위쪽은 물 위로 뜰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에 천신은 겉모습이 똑같은 암말 두 필을 보내어 어미와 새끼를 구별하라고 했다. 대신의 아버지는 말에게 풀을 줘보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어미는 반드시 새끼에게 풀을 밀어주어 먹게 한다고 했다.
이렇게 문제들을 모두 잘 풀어서 임금과 기로국은 무사히 위기를 면했을 뿐만 아니라, 천신의 보호까지 받게 되었다. 임금은 크게 기뻐하며 대신에게 큰 공을 세웠으니 상을 내리겠다고 하였으나, 사실은 동굴에 숨겨둔 아버지에게 그 지혜를 얻어서 답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내 임금이 어른의 지혜와 공로를 알게 되었고, 기로의 법령을 폐지시켰다. 비구들이여, 그때의 그 아버지는 바로 나이며, 그 대신은 저 사리불이며, 그 왕은 저 아자세왕(阿?世王)이요, 그 천신은 바로 저 아난이었느니라.”
위의 ‘기로국연’은 부처님의 수많은 전생 중에 어느 지혜로운 노인으로서의 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젊은이들에 비해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노인은 천신이 준 난제를 해결하고 아들인 대신을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나쁜 악습을 버리고 노인에 대한 공경과 효도를 일깨워주고 있다. 극적인 자기희생과 보시가 집약된 보편적인 전생이야기가 아닌 효를 매우 중요시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어린 시절 전래 동화책에서 읽은 ‘고려장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면,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가 70세가 되자 전해져오는 풍습대로 아버지를 헌 지게에 지고 내다 버리려고 산속에 들어갔다. 그 사람은 아버지에게 얼마간의 양식을 주고서 헌 지게와 함께 아버지를 버리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함께 따라왔던 그의 아들이 버려진 지게를 다시 가져가려고 등에 짊어졌다. 아버지가 낡은 지게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하자 손자가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70세가 되면, 본인도 이 지게로 아버지를 버릴 작정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들의 말을 듣고서 한편으로 두렵고, 한편으로 잘못을 뉘우치면서 버렸던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와서 효도를 다하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사랑한 지혜로운 소년으로 인해서 이때부터 노인을 버리는 악습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잡보장경>의 ‘기로국연’과 ‘고려장 이야기’는 ‘기로(棄老)-노인을 버리다’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통해서, 정반대인 공경과 효로서 부모를 섬기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고려에서 기로법이 행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파된 것일까?
첫 번째, 중국에서 기원전 8~5세기에 행해졌던 기사요의 풍습이 후대로 전해졌을 가능성이다. 이러한 흔적을 중당시기(781~848)에 그려진 돈황(敦煌) 유림굴(楡林窟) 25굴의 <미륵하생경변상도>(彌勒下生經變相圖)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벽화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열반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난 뒤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미륵부처가 출현한 풍족하고 안락한 세상을 매우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륵이 내려오실 시두(翅頭)성은 토지가 비옥하고 맑고 청명할 뿐만 아니라, 곡식이 풍부하고 백성들은 값진 보물이 많아서 서로 탐하지 않는 곳이다.
화면의 오른쪽에 <노인입묘도(老人入墓圖)>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벽돌을 쌓아 만든 동그란 무덤 안에 앉아서 가족들과 작별하고 있는 흰옷을 입은 노인이 묘사돼 있다. 그 앞에 한 어린아이가 엎드려서 절을 하고 있으며, 세 명의 여인 중 왼쪽의 여인은 노인의 손을 잡고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울고 있다. 그리고 붉은 관복을 입은 남자의 울고 있는 뒷모습과 물건을 든 하인도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은 미륵정토에서 사람들의 수명이 매우 길고 아무런 근심 걱정과 질병이 없어 모두 8만 4천세의 수명을 누리길 바라며, 기사요 혹은 기로법과 같은 슬픈 이별이 없는 이상향의 세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해석하면 이 그림을 그린 시기에 기사요의 풍습이 행해했을지도 모르며, 이러한 풍습에 대한 소문이 한반도에까지 전해졌을지도 모르겠다.(그림①)
두 번째,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어디에서도 고려장과 관련된 단서를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 유교는 지배적 정치사상이었기 때문에 효는 신성불가침이었다. 따라서 효의 보편적인 영향력 때문에 부모를 해치는 행위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추측하면 ‘고려장 이야기’는 일제 식민시기에 전래동화 혹은 설화라는 형태로 우리 민족의 설화문학에 숨어들어온 것이 아닐까 한다.
‘고려장’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타난 시점이 일제강점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침략자들이 조선의 문화를 훼손하고 일본의 식민통치와 수탈의 정당화를 위해서 역사를 왜곡하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본에서 쓰여진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란 소설에 70세가 넘은 노인은 의식에 따라 버려져야 한다는 기로국의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고려장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혹은 설화가 아닌 근대기에 유입된 이야기로서, 한반도에서는 기로설화와 관련된 풍습은 행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혜로운 노인이었을 때의 전생을 말씀해주신 까닭은 생명을 존중하고 노인을 공경하라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