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4.0 BUDDHISM] 메타버스와 불교
메타버스 급부상… 이젠 가상세계 포교시대 3차원 가상세계 메타버스 MZ세대 중심으로 활성화 명상·포교 분야 활용도↑ 꾸준한 콘텐츠 개발 과제 보원사, 사지복원 공모전 통해 청소년 포교 앞장서 동국대 명상 플랫폼 개발 용화사, 메타버스 교육도
29살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인 연구원. 다양한 취미를 가졌고, 부캐(부캐릭터)는 패션모델. 박세리, 송가인 등 유명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을 제치고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한 사람은 누굴까. 바로 롯데홈쇼핑에서 선보인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Rozy)다. 가상세계 속 인간인 로지는 가상의 공간과 세계관에 익숙한 MZ세대를 중심으로 열풍이 일었고, 단숨에 유통가를 사로잡았다. 이런 로지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에는 ‘메타버스(Metaverse)’가 있다.
불교와 메타버스 접점은
가공, 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우주,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자신을 대신하는 아바타가 생산 활동과 사회생활 등 일상을 영위하는 3차원 가상세계, 일종의 ‘가상 속 현실 세계’를 의미한다.
메타버스는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의 사실상 종착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기술은 AI부터 빅데이터, 클라우딩, 가상·증강현실, 사물인터넷 등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판타지 세상이지만 현실이기도 한 세계다. 메타버스 안에서 게임이나 일상을 영위하며 쌓여진 데이터들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환원되며, 이때부터는 단순한 현실세계의 복제물이 아닌 독립성을 가진 공간이 된다.
이 같은 메타버스를 불교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까. 해인사승가대학장 보일 스님은 저서 <AI부디즘>에서 메타버스가 보여주는 다양한 법계를 외면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스님은 “메타버스가 구현하는 매혹적인 색과 형상, 소리, 감촉들도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현실이든 가상세계든 어차피 마음의 분별 작용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에 어떤 가치를 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이라고 밝혔다.
불교계 메타버스 활용 ‘잰걸음’
“모든 존재와 현상은 마음이 투사된 것이고 오직 분별일 뿐”이라고 인식하는 불교는 ‘메타버스’라는 진보된 디지털 기술에 큰 거부감이 없다. 도리어 적극적인 활용에 나선 모양새다.
실제, 지난해 불교계 신행·포교 분야에서 새롭게 부상한 트렌드가 ‘메타버스’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이 활성화 된 이후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공모전이나 행사들이 처음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서산 보원사(주지 중경)는 메타버스 비디오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 보원사지 복원대회와 공모전을 개최했다. 제11회 내포 가야산 산사예술제 일환으로 열린 복원대회에는 서산 지역학생부터 전국 종립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해 경연을 벌였다. 올해에는 1박 2일 캠프를 열어 조선시대 불교 건축양식과 지역 불교문화를 교육한 뒤 사지를 복원하는 대회를 열 계획이다.
(사)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회장 지현, 이하 파라미타)는 지난해 10월 30일 ‘제24회 파라미타 청소년연합캠프’를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개최했다. 파라미타는 이를 위해 제페토에 ‘파라미타 사찰’을 구현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각종 미션을 수행하며 불교문화를 체험했다.
파라미타는 내년에는 제페토의 ‘파라미타 사찰’을 업그레이드해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조한곤 파라미타 사무국장은 “파라미타 사찰에 상설방을 만들어서 사찰 청소년 법회를 봉행하거나 가상의 아바타 스님을 구현해 청소년 상담을 진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재)은정불교문화진흥원(이사장 자승)과 조계종 포교원(원장 범해)는 제13회 나란다축제를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개최했다. 이를 위해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은 로블록스에 ‘도전! 삼보사찰 천리순례’를 제작했다. 제작에는 학교법인 동국대 산하 교법사들이 참여했다.
콘텐츠에는 삼보사찰인 송광사·해인사·통도사가 구현됐으며, 미션을 통과하며 게임이 진행된다.
제작에 참여한 김윤경 동대부여중 교법사는 “나란다축제가 예전처럼 진행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의견을 모은 게 메타버스 플랫폼의 활용이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만큼 요즘 인기 있고 제작도 쉬운 로블록스에 ‘삼보사찰 순례’를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VR메타버스 코딩 등을 가르치는 사찰도 생겼다. 청주 용화사(주지 각연)는 템플스테이를 찾은 학생과 가족들에게 VR메타버스 코딩·3D프린팅·드론 등을 교육·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용화사 연수원장 지장 스님은 “청주 용화사는 도심사찰이기 때문에 전통 콘텐츠로는 호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가족과 학생들이 재미있게 놀이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보다가 평소 관심있던 4차산업기술들을 가르치게 됐다”면서 “현재는 시간 등의 제약으로 어렵지만 향후에는 아아패드 드로잉, 웹소설 작성법 등의 강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구본사와 동국대는 자체 명상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오대산 월정사(주지 정념)는 자체적으로 메타버스 명상 플랫폼을 개발해 8월 12일 열린 강원도 세계청소년명상주간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10월 8일 개막한 오대산 문화축전에서는 학생 백 일장 등의 행사와 월정사 화엄선문화연구소 제1회 국제명상세미나를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월정사의 메타버스 명상 플랫폼은 뇌파측정기와 HMD(머리 착용 디스플레이)를 착용하고 요가, 명상들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계종립 동국대(총장 윤성이)는 메타버스를 기반한 명상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 ‘비대면 사회에서 MZ 세대의 정신건강 관리·회복을 위한 메타버스 디지털 솔루션’ 주제의 연구를 진행키로 했으며, 이를 전담할 ‘명상 메타버스 플랫폼 기획연구단’(단장 김관규)도 출범했다. 구랍 12월 14일에는 ‘MZ세대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메타버스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를 주제로 공청회도 개최했다.
현재 사업에는 동국대 불교대학, 공과대학, 의료원과 가천대 뇌과학연구소가 참여한다. 가천대의 참여는 명상 메타버스 플랫폼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함이다.
해당 연구는 지난해 7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주관한 ‘2021년 상향식 다부처공동기획연구과제’에서 공동기획연구 대상 과제로 선정된 바 있다. 다부처공동기획연구 결과는 오는 2월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김관규 명상 메타버스 플랫폼 기획연구단장(연구부총장)은 “첨단과학과 명상, 선 수행과의 접점을 모색하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최근 메타버스 기술이 부각되고 동국대도 이를 구현할 수 있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며 “사업이 확정되면 2030년까지 장기적으로 연구와 플랫폼 구축이 이뤄지게 된다. 구축이 완료되면 국민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콘텐츠 개발·명상 과학화 관건
불교계가 활용을 시작한 메타버스 플랫폼에 대한 성공적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실무 전문가들은 니즈 파악과 지속적인 콘텐츠 개발, 참선 수행의 과학화를 과제로 꼽았다. 또한 기술 진입장벽의 해결도 제안했다.
김선임 보원사 종무실장은 “보원사지 복원 공모전에 참여한 학생들을 설문조사해보니 놀이라고 생각하니 재미있어했고, 참여도도 높았다”면서 “MZ세대가 무엇을 추구하고 좋아하는지를 살피고 여기에 맞춰 불교문화를 접목하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경 교법사는 “다양한 전통 유산을 가진 불교는 메타버스에서 활용도가 높다”면서도 “현재 불교계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지만, 제작 이후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어떻게 유지하고 보수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관규 단장은 참선 수행의 효과를 입증할 과학적 기초자료 구축을 제안했다. 그는 “상담 심리 분야는 학문·과학적으로 입증된 자료들이 방대하고 체계적이다. 하지만 참선 수행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데이터는 아직 부족하다”면서 “불교계가 메타버스 명상 플랫폼을 구축하려 한다면 대중들을 설득하고 보급할 수 있는 기초연구자료들이 우선적으로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찰을 운영하고 법회를 주관하는 주체인 스님들이 새로운 기술의 진입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과제다. 이에 대해 지장 스님은 “저는 인공지능 상담을 할 수 있는 ‘AI붓다’ 제작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기술들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겁이 없는 편”이라며 “목표와 관심이 있어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