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불교동화] 위승환 작가의 개구쟁이 동자 솔명이
“관음보살님, 엄마 꼭 만나게 해주세요”
새해 첫날이었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에 솔명이는 눈을 비볐다. 멍한 얼굴로 입에 선하품을 물었다. 눈을 반쯤 감은 채 개량한복을 주섬주섬 입었다. 털모자를 들고 일어서다가 방문 옆에 걸린 새 달력을 바라보았다. 달력 첫 장에는 검은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다. 올해가 검은 호랑이해였다. 별들이 반짝일 때마다 추운 공기를 마구 뿌려댔다. 솔명이가 절에서 제일 싫은 것은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얼굴에 찬물을 바르듯 고양이 세수를 했다. 얼굴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머리카락이 없는 민머리가 추웠다. 서둘러 털모자를 눌러쓰며 으스스 몸을 떨었다.
솔명이는 예불을 올리려고 스님 곁에 앉았다. 좌복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졸음이 밀려왔다. 스님이 치는 목탁소리와 기도소리가 멀어졌다. 꾸벅꾸벅 졸다가 그만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스님이 누비두루마기를 벗어 솔명이를 덮어 주었다.
“솔명아, 솔명아. 일어나. 공양하러 가야지.”
스님이 깨우는 소리에 솔명이는 부스스 눈을 뜨고 자리에 앉았다.
“검은 호랑이를 타고 눈 쌓인 들판을 내달리는 참이었어요. 곧 엄마를 만날 수 있었는데.”
“녀석, 참.”
솔명이가 목덜미를 쓸며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새해 달력에 그려진 검은 호랑이와 꿈속에서 등에 탔던 검은 호랑이는 왠지 똑같았다.
아침 공양을 마친 절은 고요 속에 파묻혔다. 정적을 깨고 스님이 경을 외는 소리가 법당 마당에 울려 퍼졌다. 목탁소리도 함께 어우러졌다. 혼자 남은 솔명이는 슬그머니 범종각으로 내려갔다. 종 치는 당목 묶어둔 줄을 풀었다. 당목 매단 줄을 두 팔로 잡더니 까치발로 서서 당목 위에 엉덩이를 밀어 올렸다. 흔들흔들 당목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꾸우우웅.”
며칠 전에도 당목을 타다가 실수로 종을 쳐버렸다. 그때 솔명이는 종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종에 부딪친 당목의 반동 때문이었다. 정신이 아뜩했지만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다.
“당목은 그네가 아니거든.”
스님이 주의를 주었는데도 솔명이는 계속 당목을 타고 싶었다. 당목을 타는 것도 재미났지만 당목을 타면 엄마를 생각하기 좋았다. 스님은 다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 하는 것 같았다.
솔명이는 당목 타기가 지루해 공양간으로 올라갔다. 누렁이가 양지바른 데서 네 발을 펴고 잠들어 있었다. 솔명이 발자국 소리가 누렁이를 깨웠다. 누렁이는 누운 채 고개를 들어 돌아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솔명이는 언제나 장난을 잘 받아주는 누렁이가 좋았다.
“누렁이 넌 엄마가 보고 싶지 않아?”
누렁이가 대답 대신 솔명이 손을 핥다가 살짝살짝 깨물었다. 솔명이는 목에 걸고 있던 염주를 벗었다. 염주를 두 겹으로 말아 누렁이 목에 걸어주었다.
“너도 절에 사니까 부처님 제자잖아.”
누렁이가 알아들었는지 귀를 뒤로 제쳤다.
“너는 누렁이니까 법명이 누명이야. 솔명이 동생 누명이. 알겠어?”
누렁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솔명아, 포행가자.”
스님이 솔명이를 찾았다. 솔명이는 스님을 따라 포행 가는 것이 재미났다. 솔명이는 장난을 좋아했다. 스님을 지나쳐 달려가는 것 같았는데, 금세 산모퉁이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뒤에서 나타났다.
“어이쿠!”
스님 발이 풀에 걸려 기우뚱 했다. 솔명이가 그새 산모퉁이를 돌아서 자드락길 양편의 풀을 묶어놓았다. 어쩔 때는 뒤에서 갑자기 떼밀어 스님이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스님은 솔명이의 장난에 빙긋이 웃기만 했다.
해가 서산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따뜻한 빛을 넉넉하게 뿌려대던 해였다. 산 그림자가 법당 앞 계단을 바쁘게 오르고 있었다. 찬바람에 마른 나뭇잎 하나가 정갈하게 비질이 된 법당 마당을 맴돌았다.
솔명이는 아까부터 볕이 잘 드는 법당 옆 토방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땅바닥에 조약돌로 동그라미를 그렸다가 발로 지우기를 반복했다. 솔명이의 생각은 민들레홀씨가 되어 엄마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저녁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울릴 무렵엔 엄마가 더욱 그리웠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속내를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솔명이는 엄마 생각으로 밤에 잠들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몸을 뒤척이며 푸른빛이 배인 방문을 바라보았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방문에 그림자로 어른거렸다. 솔명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베갯잇을 축축하게 적시기 일쑤였다.
‘엄마.’
솔명이는 어젯밤에도 엄마가 보고 싶어 방을 나와 툇마루에 앉았다. 언제 떠올랐는지 둥근달이 동쪽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실바람에 마른 나뭇가지들이 몸을 흔들었다. 대나무들도 덩달아 서걱거렸다. 솔부엉이가 울었다. 어스름이 내리면서부터 울던 솔부엉이였다.
“솔부엉이도 엄마가 보고 싶은가 봐.”
솔명이는 오싹한 추위에 진저리를 치며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솔부엉이 울음소리를 듣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코로나19 때문에 줌 수업과 2부제 수업, 가정학습이 반복되어 적응이 쉽지 않았다. 솔명이는 학교에 가지 않는 줌 수업이 좋았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놀려대는 것이 싫어서였다.
‘까까중, 모과중.’
솔명이는 별명도 여러 개였다. 별명을 부르며 놀려대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특히 뒷자리에 앉은 석기가 얄미웠다. 연필로 등을 콕콕 찌르면서 까까중이라고 불렀다. 마음 같아서는 아프게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스님 얼굴이 떠올랐다. 솔명이가 스님에게 석기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절대 안 돼. 넌 어리석음을 끊고 지혜롭게 살겠다고 머리카락을 자른 부처님 제자야.”
첫 시간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석기가 또 솔명이를 건드렸다.
“야, 모과중.”
솔명이가 대꾸를 안 하자 이번에는 대놓고 놀려댔다.
“중, 중, 까까중…….”
“석기 너어, 이리와!”
솔명이가 참다못해 일어서며 외쳤다.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을 기세였다. 석기가 깜짝 놀라 달아나자 솔명이가 뒤를 바짝 쫓아갔다. 석기는 솔명이에게 약을 올리듯 놀리면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아악!”
솔명이가 비명을 질렀다. 발목을 잡고 계단 아래에 나뒹굴었다. 솔명이는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갔다. 스님도 전화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왔다. 검사 끝에 발목을 가볍게 삔 상태여서 간단한 처치만 받고 바로 퇴원을 했다. 차에서 내린 스님이 솔명이를 업고 자드락길을 올랐다.
“솔명아, 많이 아프지?”
“아뇨, 참을 만해요.”
솔명이는 오랜만에 업혀보는 스님의 등이 넓어 편안했다.
“솔명아,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다른 사람을 쉽게 이기려 들면 오히려 네가 지게 되는 거야.”
솔명이는 스님 말씀이 어려워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 잠자코 스님 목을 껴안았다.
“스님, 무거워요?”
“괜찮다.”
솔명이가 옷소매로 스님 이마에 송알송알 맺힌 땀을 쓸었다. 그리고는 스님 등에 살며시 얼굴을 기댔다.
스님은 절에 돌아와 솔명이를 방에 내려놓기 바쁘게 군불을 지폈다. 솔명이는 방에 있기가 답답했다. 다리를 절며 밖으로 나왔다. 군불을 지피는 스님 곁에 앉았다. 아궁이 앞에 앉아있으면 얼굴에 와 닿는 따뜻한 불살이 좋았다. 그보다는 어쩌다 스님이 구워주는 고구마나 밤을 기다렸다. 군불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탔다. 솔명이는 너울거리는 불꽃이 엄마가 좋아하는 홍시빛깔이라고 생각했다. 불꽃 위로 엄마 얼굴이 보였다. 갑자기 연기가 솟으며 엄마 얼굴이 지워졌다. 스님이 아궁이에 솔가지를 더 넣은 바람에 엄마를 볼 수 없어 눈물이 났다.
“솔명아, 연기가 맵지?”
“스님, 보일러를 사면 편하잖아요. 힘들게 나무 할 필요도 없고.”
“군불을 땔 때 나쁜 생각도 함께 태우는 공부를 하는 거야.”
“스님은 세탁기도 없이 맨손으로 빨래를 하잖아요.”
“옷을 빠는 것도 수행이지. 마음에 낀 때를 함께 씻는 거야.”
스님은 언제나 알쏭달쏭한 대답을 했다. 솔명이는 그런 스님이 좋았다. 스님이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부터 날마다 관음전에 나가 기도하도록 해. 관음보살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어머니이니까.”
“제 엄마도 되나요?”
“그럼, 솔명이 네 소원을 들어주실 거야.”
“기도만하면 되지, 힘들게 절은 왜 해요?”
“절은 고개를 숙이는 일이니까 부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거란다.”
솔명이는 스님 말씀을 떠올리며 좌복 위에 엎드렸다.
“엄마를 꼭 만나게 해주세요.”
솔명이가 백팔 염주를 꼽아가며 절을 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솔명이의 땀방울이 좌복 위에 떨어졌다.
“아, 새처럼 날 것 같아.”
절을 마치고 관음전을 나서는 솔명이는 상쾌했다.
“관음보살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겠지? 엄마를 꼭 만나게 해주실 거야.”
개울물 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긴 겨울잠에 들었던 개울물이 깨어나면서 관음전 앞 물푸레나무에도 봄물이 연하게 오르고 있었다. 딱새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노래했다. 딱새가 이리저리 가지를 옮길 때마다 잔가지들이 꼼지락거렸다.
솔명이는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이 보드랍게 느껴졌다. 봄이 산등성이를 넘어 살금살금 오고 있었다. 〈끝〉
위승환 작가는 계간 〈인간과 문학〉 제8회 신인작품상을 수상했으며, 동화 〈곰돌이는 외롭지 않아〉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태백산맥문학관 명예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광주ㆍ전남 아동문학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