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불교 글로벌 포교사들] 유튜브 포교 첫 발 내딛다 - 원보 스님

“‘살아있는’ 한국 불교, 세계가 주목할 콘텐츠” 

2021-12-28     임은호 기자
가장 좋아하는 글귀로 경허 선사의 ‘세간만법(世間萬法)’을 꼽은 원보 스님은 “모든 중생들이 이미 완벽한데 우리는 그것을 잊고 세상의 변하는 일에만 얽히고 있다”며 “깨달음을 주는 선사들의 다양한 시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박재완 기자

1992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인근 한 선원. 16살 소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날 숭산 스님 제자가 법문한 ‘부처님 생애’는 소녀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소녀는 가장 높은 지위로 태어났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임했고 가난하고 병든 자에게도 공평했던 2600년 전 부처님 이야기에 매료됐다. 어머니를 여인 직후 삶과 죽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헤매던 중 부처님을 만난 것이다.

동유럽 발트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는 우리나라에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국토의 1/4이 숲이고 2800개가 넘는 호수가 있으며 산 하나 없는 평원의 나라다. 인구 200만 명이 겨우 넘는 이 작은 나라는 1944년 소련에 점령돼 위성국가로 오랫동안 철의 장막에 가려져 있다 1990년이 돼서야 독립국이 됐다. 오랜 기간 동안 가톨릭을 국교로 했고 소련 점령기에는 종교가 금지돼 종교서적은 모두 금서였다. 독립과 동시에 새로운 문물이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종교도 그중 하나였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웠던 소녀에게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랐다. 부처님은 소녀에게 크나큰 의지처가 됐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일주일에 서너 차례 선원을 찾았다. 참선하는 순간순간이 마냥 좋았다. 기도와 수행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부처님 가르침 안에 진정 행복이 있다는 걸 알았다. 대학 졸업식 직후, 한국행 비행기를 탄 그는 서울 화계사에서 1년간의 행자생활 후, 2002년 대안 스님을 은사로 사미니계를 받았다. 대안 스님은 원보(圓寶)라는 불명을 내려줬다. ‘보배는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의미였다.

2007년 봉녕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안거하며 은산철벽을 마주한 원보 스님은 이후 시흥 법련사에서 기도하며 리투아니아에 한국식 선불교도량을 만들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그렇게 수 년, 법련사 옆 빈터에 목재를 보관하고 기와와 주춧돌을 준비하던 스님의 바람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2016년, 수도 빌뉴스 인근 쵸비쉬키스에 ‘선림원’을 개원한 것이다. 숭산 스님의 걸음으로 선의 토대가 마련됐긴 하지만 불모지나 다름없는 동북부 발트해 연안에 원보 스님의 전도를 기점으로 선풍이 휘날리게 됐다.

선림원은 창립 기반 마련부터 재가불자들 신심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후 선림원은 코로나19 이전까지 매일 수십명이 모여 참선하는 선원으로 성장했다.

선원이 안정되자 한국으로 돌아온 원보 스님은 법련사에서 1000일 기도를 이어가며 부처님 법음을 세상에 퍼지게 할 방법을 고민했고 유튜브를 떠올렸다. 양질의 콘텐츠는 문서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무엇보다 한자에 대한 부정확한 지식으로 인한 오역으로 불교 관련 잘못된 정보가 범람하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어요. 정확한 정보를 담은 다양한 외국어 불교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죠.”

조계종에서 주최한 유튜브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 '불교가 어떻게 한국에 왔을까요?'의 한 장면.

아이디어는 넘쳐났지만 제작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익히느라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조계종이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릴 외국인 홍보인력을 발굴하기 위해 개최한 유튜브 공모전을 발견했다. 원보 스님은 곧장 공모전에 응모,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과정과 한국불교의 역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소개했다.

짧은기간 준비한 것이었지만 스님 제출한 작품 ‘불교가 어떻게 한국에 왔을까요?’는 이번 공모전에서 은상 수상의 영예를 앉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 상태에서의 도전이었기에, 여러 그래픽 툴을 하나하나 공부해가며 만드느라 품이 많이 들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은 다음을 이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줬다. 원보 스님은 머릿속으로만 되뇌었던 아이디어들을 엮어 하나씩 결과물로 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현재 이를 실행 중이다. 선사들의 이야기와 가르침, 선시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잘 번역된 외국어 영상으로 만들어질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원보 스님은 “스님들이 수행을 중심으로 선방에 모여 있고 선사의 가르침이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 한국불교의 ‘살아있음’이야말로 세계가 주목할 가장 강력한 불교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영상 콘텐츠 제작 이외에도 원보 스님은 리투아니아 은행원들을 대상으로 한 비대면 명상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스님은 반년 째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 진행되는 명상 수업에서 호흡과 함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오전 근무 시작 40분 전, 이른 시간 시작함에도 은행원 20~30여 명이 자발적으로 수업에 동참하고 있다. 비대면 명상 수업은 은행 측이 먼저 원보 스님에게 연락을 해 와 성사될 수 있었다. 

“전 세계인들이 명상을 찾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깊은 좌선 전통의 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안타까워요. 명상은 젊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가장 쉽고 건강하게 알리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세계에 한국불교를 알릴 거예요.”

시흥=임은호 기자 imeunho@hyunb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