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포교일기]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

2021-12-13     지인 스님
삽화=최주현

12월 1일은 제34회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다.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이뤄졌다. 내가 회장 소임을 맡고 있는 ‘KINHA(한국 HIV/AIDS 범종교연합)’에서도 유관기관 간담회를 개최하고 환자들의 외로움과 그에 따른 돌봄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장애인들은 장애등록제 폐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반해, HIV감염인들은 장애자가 되기를 오히려 원하고 있는 실정이니 환자들의 삶이 얼마나 열악하고 고립돼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얼마 전 병원 법당에 다녀간 50대의 남성 환자는 약 두 시간을 대화하며 한동안 울었다. 그동안 무수히 삼켰던 깊은 회한의 눈물이리라. 

뇌전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 검사를 받으면서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죽고 싶었지만 연로한 노모를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해 살아냈다. 반신불수로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했던 몸이었지만 2년동안 눈물겨운 재활의 노력으로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됐다. 한시도 염주를 놓지 않고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노모에게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건강을 회복하셨잖아요. 그런데 뭐가 그렇게 가슴을 막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신 거예요?” 

환자는 숨을 깊게 내쉰 뒤 한참 후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머니는 모르세요. 제 동생만 알아요. 제 동생이 의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와서는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어요. 동생도 이해를 못하는데 누가 저를 이해하겠습니까.”  

“거사님, 가족들로부터 정말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으신 그 마음 알 것 같아요. 그런데 거사님, 스스로는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계실까요?” 

환자는 깜짝 놀란 듯 눈물을 멈추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같은 하늘 아래에 살면서 우리 모두는 다 아프고 저마다의 병을 가지고 있어요. 이 또한 하나의 병인 거예요. 틀린 게 아니고 그냥 다른 거예요. 이 병을 화두 삼아 ‘진짜 거사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게 진짜 병이 낫는 것이고 부처님 은혜에 보답할 뿐만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해요.” 

환자는 부처님 전에 정성스레 삼배를 올리고 떠나갔다. 배웅하러 병원 밖에까지 함께 걸었다. 합장하며 몇 번을 돌아보는 환자를 보내며 하늘을 올려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