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컴퓨터공학과 만들고 싶어요” 

유학생 예나잉 씨 

2021-11-18     최재희
재한 미얀마학생회가 경기아트센터에서 개최한 ‘미얀마의 봄’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참여한 예나잉. 

매일 잠들기 전 부처님께 기도
명상하며 스트레스·감정 치유
어린 시절 단기출가 3번 경험도

“미얀마서 컴퓨터 공학 공부하는 
차세대 공학도 가르치고 싶어요”

10여 년 전 동국대 불교학부를 다닐 때 “전공명 때문에 사회에서 유명한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불교학과 나와서 뭐 해먹고 살수 있냐?”라는 고민을 하던 학생들을 많이 봤다.
불교학부 학사운영지원실에서도 불교계 관련 인턴제도, 불교계 선배 취업 멘토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을 도우려 애썼다.

불교학부를 졸업했다고 일반 대기업에 취업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동국대 불교학부를 같이 다니던 후배 한 명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물었고 그는 자신의 근황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줬다.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후배는 나에게 마음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업무에 치여 살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 힐링이 필요한데, 템플스테이 조용한 곳으로 추천 좀 해줘. 그리고 선배, 마음이 복잡할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아?”라는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십 년 넘게 불교를 전공하고 있지만,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후배에게 명쾌한 답을 주는 것이 쉽지 않았다. 불교 교리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자에 걸려 일상생활 속에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지 못 하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불교를 공부하겠다고 하면 지레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겁을 먹거나 큰 마음을 먹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얀마에 가서 놀란 점 한 가지는 모두들 불교를 공부하는 일에 있어 ‘어려움’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대학에서 발표 수업을 진행하는 예나잉. 그의 꿈은 모국에 컴퓨터공학과를 만드는 것이다. 

불교학자인 교수들을 만나도 어려운 빨리어 불교 단어를 설명하기 보다는 ‘팔정도’, ‘사성제’ 그리고 ‘명상’에 대한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박사과정인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기만 했지, 일상생활 속에서 적용하지 못하며 사는 나를 발견했다. 이번 후배와의 일을 겪으면서 미얀마에서 들었던 조언들이 하나, 둘씩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화를 잘 내지 않는데, 그 이유가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절에 갔을 때만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 다양한 상황 속에서 ‘알아차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훗날 미얀마에서 컴퓨터공학과를 신설하고 싶어 유학왔다는 예나잉 동생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매번 만날 때마다 밝게 웃는 미소, 친절한 태도, 따뜻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한 번은 그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매번 그렇게 기분 좋은 태도를 유지하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누나! 명상이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매일 잠들기 전에 부처님께 기도해요. 부처님께 기도하면서 미얀마에 계시는 부모님을 위해 기도도 하고요. 그리고 명상을 해요. 명상을 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감정적인 상처들이 치유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국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잖아요? 미얀마에서 저는 어릴 적에 부처님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듣고 자랐어요. 잠들기 전 부모님께서 부처님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 해주면서 저를 재우셨어요.” 

10살에 진행한 단기출가 신쀼의식.   

그리고 그는 단기 출가를 3번 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우리나라는 어린 시절에 남자라면 신쀼의식을 통해 단기출가를 해요. 저도 10살 때 신쀼의식을 했어요. 그러고 한 번 더 단기 출가를 했었어요. 20살 이전에 했던 스님 생활은 절의 규칙을 따르고 익히는 데 바빴던 것 같아요. 세 번째로 출가했던 20살 때 부처님 가르침 중에서 내면의 평화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어요. 미얀마는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고 대부분이 불자입니다. 사회적인 관습과 규범도 불교적 가치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은 정치인이예요. 그 분의 연설과 행동에서 불교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이 많이 느껴졌어요. 특히 우리나라를 평화와 번영으로 이끄는 정책에도 불교적 가치관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해요.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대부분 불자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할 때 부처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요. 하지만, 모두가 불자라고 해서 순수하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불교를 이용하는 진실되지 못 한 불자들도 있어요.” 

그의 고향은 미얀마 제2의 도시이자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만달레이다. 그는 콘바웅 왕조의 왕이자 만달레이를 수도로 삼았던 ‘민돈왕’을 존경한다고 했다. 존경하는 이유를 들으니 그의 불심을 한 번 더 확인 할 수 있었다. 

“민돈왕을 존경해요. 만달레이에 많은 파고다와 불상을 건립했어요. 그리고 1872년 제 5차 세계불자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약 729개가 넘는 대리석에 경전을 빨리어로 기록했고 파고다로 만들었습니다. 민돈 왕의 불심이 정말 대단하기 때문에 그를 존경해요.” 

대리석에 경전을 적기 위해 2400명이 넘는 스님들이 참여했고 약 6개월이 걸렸다. 민돈왕은 경전을 대리석에 새기면서 부처님의 가피와 공덕을 받아 외세의 침략에서 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마음을 담았다. 그의 말을 들으니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팔만대장경이 생각났다. 

수많은 나라 중 왜 한국으로 유학을 왔냐는 질문에 그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한국과 미얀마는 문화와 관습이 다른 점이 적은 편인 것 같아요. 한국도 예전에는 미얀마처럼 불심이 깊어서 한국 문화재에 절이 많다고 들었어요. 한국이 불심이 과거에 깊었던 것도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미얀마와 비슷한 점 같아요. 그리고 저는 한국 절에 갔을 때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받아서 정말 좋았어요. 저는 부처님 말씀 중에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라는 말을 좋아해요. 그래서 평소에 정직하고, 친절하고, 공정하고 진실되려고 노력해요.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하는 것이 명상이고요. 명상을 꾸준히 하면서 느끼는 생각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명상을 하면 우리가 더 나은 생각을 하게 도와주고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지게 해주는 것 같아요.”
올해 8월에 졸업을 하고 열심히 직업을 구하고 있는 그에게는 작은 원력이 있다. 모국에 컴퓨터공학과를 신설하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명한 IT강국이고, 컴퓨터 공학이 많이 발전했잖아요. 미얀마는 아직 컴퓨터공학과가 없어요. 한국에서 배워간 제 지식을 통해 미얀마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싶은 차세대 공학도를 가르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컴퓨터공학과를 신설해야 하고, 우선 제가 전문가가 되어야겠죠?”

빙그레 웃으며 부끄러워하는 그에게서 훗날 미얀마 최고의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된 모습이 그려졌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불교란 삶에서 평화와 만족을 알게 해주는 소중한 보물이라는 그의 말을 통해 미얀마 국민들의 불심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삶에서 자신의 평화, 더 나아가 조국의 평화 그리고 세계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평화로운 길을 위해 우리는 자신의 삶과 환경에 만족하는 가치를 배워야 한다.

<법구경>에는 ‘만족할 줄 아는 것은 가장 값비싼 보물이다.’ ‘만족이 가장 큰 재산이며 신뢰가 가장 귀한 친구다’라는 구절이 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운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기엔 나이가 들어갈수록 늘어가는 탐진치로 인해 몹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와 나눈 대화를 통해 한국과 미얀마의 평화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진한 법향(法香)이 나에게 기분 좋게 물들었다. <양곤대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