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포교일기] 노 거사의 고민

2021-09-14     지인 스님
삽화= 박구원

작년 추석 무렵 한 노부부가 법당을 찾아왔다. 거사님은 80이 넘었지만 정정하신 데 반해 아내분은 걸음도 부축해야지 걸을 수 있을 만큼 보행이 힘들었고 보고 듣는 것도 어려워 보였으며 말하는 것까지 어눌하였다. 

약 6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고 깨어난 뒤 온전한 몸으로 회복되기엔 어려운 상태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공덕으로 조상님들의 음덕으로 이렇게라도 살아주어서 고맙지요.”라며 거사는 얼굴에 굵은 주름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거의 1년이 지난 후 추석명절이 가까워 오는 근래 거사님은 또 법당을 찾았다. 이번엔 혼자였다. 아내분의 안부를 물으니 “갈수록 같이 다니기는 힘들지요. 그냥 집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정도입니다” 라고 하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보살님에게 참 친절하고 자상한 남편이신 것 같아요.” 라고 미소에 응답하니 거사님은 손사래를 친다. “아휴, 아닙니다. 고생만 많이 시켜서 그게 제일 미안합니다. 제사가 많았거든요.” 

거사는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제가 장손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3대 독자셨어요. 아들이 귀한 집이었지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시집와서 아들 셋을 낳으셔서 할머니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셨지요. 게다가 제가 특히 장손이다보니 유독 사랑을 더 받고 자랐습니다.” 거사님은 어릴 적의 추억을 얘기하며 어린 소년의 표정이 되어 추억의 향연을 나누셨다.

“그래서 특별히 저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에 대해 감사함이 많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난 뒤로 제사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서 참 장손된 도리, 자식된 도리를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가 업이 많은 건지… 제 대에서 제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사님의 표정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거사님은 아들 딸 남매를 두고 있으며 아들도 결혼하여 손주들도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몇 년 전 며느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담담히 풀어놓았다. 거사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상님들의 위패를 절에 모시고 자신과 아내의 위패까지 미리 절에 안치하여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스님, 이것은 제가 정리를 해주고 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거사님의 단호한 눈빛과 표정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묵묵히 거사님의 빈 잔에 뜨거운 차를 채워 드렸다. 뜨거운 차가 넘치지 않도록, 잘 드실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이며 차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