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 법문 펼치니, 그 곳이 조계산

16. 6조 혜능, 조계산에 도량을 열다 인종 대사와 혜능대사 선례 깨치면 조사인 조사선 전범 ​​​​​​​한국 불교 독자선맥 이어져

2021-09-08     박희승
6조 혜능대사가 40년 동안 주석하며 설법한 조계산 남화선사(옛 보림사) 조계문

6조 혜능, 화두 원형을 제시하다

5조가 〈금강경〉 읽어주는 소리를 듣고 행자 혜능은 확철대오한다. 5조는 혜능에게 달마대사의 주어 6조로 부촉한 뒤 남쪽으로 내려가 3년 동안 은둔하라 한다. 6조는 고향 광주로 간다.

다음 날 오조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방앗간 오랑캐 행자가 5조의 가사와 발우를 몰래 훔쳐 남쪽으로 도망갔다고 엉뚱한 소문이 났다. 대중은 행자에게 5조의 발우를 찾아오자며 수백 명이 쫓아왔다. 이리하여 혜능이 영남의 큰 고개인 대유령에 이르렀을 때 다른 대중은 다 돌아가고 오직 혜명스님 만이 끝까지 따라와 잡히게 된다. 혜능이 말한다.

“가사와 발우가 여기 있으니 가져가시오.”

“의발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제게 법을 일러주십시오.”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않을 때 혜명 그대의 마음은 어디에 있소?”

혜명은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대낮같이 밝아지며 확철대오한다.

이것이 6조 혜능의 첫 제자가 깨치는 문답이다. 이 문답이 바로 후대 간화선(看話禪)의 화두(話頭) 공안(公案) 원형이 된다. 혜능이 제시한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대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말은 곧 부처님이 깨친 중도를 표현한 말인데, 이것이 곧 화두이다. 혜명은 이 화두를 언하(言下)에 단박에 깨쳤다. 이처럼 조사선은 깨친 조사와 수행자가 문답하는 가운데 깨친다. 문답 중에 바로 깨치는 것을 찰나 깨침, 단박 깨침, 언하대오(言下大悟)라 한다. 만약 이 문답 중에 깨치지 못하면 화두에 의문을 품고 끝까지 참선하여 깨치면 참구 깨침이라 한다.

선의 문답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는 사례는 부처님 경전에서 수 없이 나온다. 부처님의 첫 설법인 〈초전법륜경〉에 보면 부처님이 중도, 팔정도, 사성제 법문을 하자 꼰단냐(한역 교진녀)를 비롯한 다섯 비구가 차례로 깨달음을 성취하여 인가를 받는다. 이처럼 부처님 당시나 조사선에서는 문답 끝에 깨치면 바로 조사가 되고, 깨치지 못하면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을 한다.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는가?

6조 혜능은 대유령에서 혜명스님과 문답한 뒤 남쪽으로 내려와 3년 동안 숲속에서 은둔하였다. 5조가 “남쪽으로 내려가 3년 동안 법을 설하지 말고 기다려라” 하신 뜻을 받들었다. 이 일을 후대에 몽산덕이 선사가 편찬한 〈덕이본 육조단경〉 등에는 ‘15년 은둔’으로 적었다. 〈육조단경〉의 가장 오래된 판본 〈돈황본〉에는 3년, 〈조당집〉(952년)에는 4년이라 하니 3~4년 은둔을 정설로 보아야 할 것이다.

6조 혜능이 3년 동안 은둔한 뒤 다시 출현한 곳은 광주 광효사(당시 법성사)다. 광효사는 광주 시내에 있는데, 어느 날 큰 법회가 열려 깃발이 펄럭이었다. 이 깃발을 보고 두 사람이 언쟁을 한다. 바람이 깃발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아니야 깃발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지. 이 문제를 두고 옥신각신하자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어 야단법석이 되었다. 이때 이 절의 한 행자가 이렇게 말한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

이 말을 듣자 다툼을 끝났고, 도량 사람들이 모두 그 행자를 주목하게 된다. 이 광경은 광효사 조실 인종(印宗, 627~713) 대사도 지켜보았는데, 모골이 송연했다. 인종 대사는 법회가 끝나고 그 행자를 조실채로 불러 물어본다.

“행자는 예사 사람이 아닌데 스승이 누구인가요?”

재출가와 비구계 수지해 수행공동체에 함께

행자는 그때야 자신이 오조사에서 홍인 대사의 법을 얻어 남쪽으로 와서 은둔한 사연을 말하고 5조에게 받은 가사를 보여주었다. 인종 대사는 그 행자가 바로 6조 혜능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자리를 바꿔 앉아 아직 행자인 6조에게 존경의 예를 표했다.

그러자, 6조는 자신이 아직 행자의 몸이니 비구계 받기를 청하니 인종 대사가 율사를 청하여 혜능의 머리를 깎고 비구계 수계식을 거행하였다. 지금도 중국 광주 광효사에 가면 비구계를 받을 때 깎은 6조의 머리카락을 봉안한 축발탑이 서 있다. 이리하여 불법으로 볼 때 행자였던 6조 혜능은 이제 정식으로 부처님의 승가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명실상부한 6대 조사가 된 것이다.

인류를 밝히는 선의 지혜

우리는 이 6조 혜능의 일화를 통하여 선(禪)의 지혜를 다시 본다. 선은 본래부처 절대평등의 입장이다. 중생이니 부처니, 행자니 조실이니 하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중생과 부처가 다르고, 비구와 행자의 구별이 필요하다. 이렇게 법과 세간을 둘로 보고 양변에 집착하면 대립 갈등이 생기나 양변에 집착하지 않고 다 아우르면 법과 세간이 서로 융합하는 중도 선의 지혜가 나온다.

6조 혜능은 깨달아 일체가 평등하다고 보았지만, 아직 세간의 신분으로는 엄연히 행자 이니 세간의 분별을 없애기 위해 비구계를 받아 출가 사문의 위의를 갖추고 불교 수행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다. 인종 대사도 비구이고 큰스님이라 불리는 지위에 있었지만, 법의 안목을 갖춘 분이라 혜능이 비록 행자 신분이나 깨치고 인가받아 6조이니 스승으로 공경의 예를 다한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승가공동체의 모습인가?

이런 선의 안목은 현대 사회에서 차별과 대립 갈등으로 얼룩진 인류 세계에 무한한 지혜를 밝힌다. 중동 아프가니스탄에 20년 만에 미군이 철수하자 텔레반이 정부를 장악하였는데, 야만적인 남녀차별 정책을 신의 이름으로 자행한다. 이슬람은 여성의 피부 노출을 금하고 일부다처제를 하는 등 남녀차별의 종교다.

기독교는 일부 극단주의일 뿐이겠지만, 다른 종교를 차별하고 다양성을 부정하며 비방하기 일쑤이다. 근래 한국 시민단체와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차별금지법 청원을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에서는 격렬하게 반대한다. 불교국가 미얀마에서는 민주 정부를 전복하고 집권한 군부 쿠테타세력이 교묘하게 민족과 종교 갈등을 이용하여 기독교나 이슬람을 믿는 소수 민족을 탄압하는데, 불교 지도자들이 은근히 이를 방조한다는 비판이 있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정신은 어디에 있는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업보를 어찌 감당할는지…

조계산서 돈오선 천하에 알리다

6조 혜능은 광효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하여 정식 비구가 되어 이제는 명실상부한 6조 스님이 되었다. 돌아보면 무식한 나뭇꾼이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발심 출가하여 선지식을 만나 8개월 행자 생활 중에 마음을 깨치고 생사를 해탈하여 6대 조사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6조는 문자를 몰랐고, 남방 오랑캐 출신이라 당시 당나라의 중앙인 낙양, 장안으로 가지 않고 남쪽 변방으로 가서 법문할 준비를 한 것이다.

6조는 적당한 교화 도량을 물색하던 중 조(曹)씨 성을 가진 거사가 넓은 터를 희사하니 이곳이 바로 중국 광동성 소관시 조계산(曹溪山)이다. 조계산은 조씨네 개울이 흐르는 산이라는 뜻인데, 지금의 중국 남화선사(당시 보림사) 자리다. 혜능대사는 이 조계산에서 40여 년 동안 돈오 법문을 하였고, 천하의 인재들이 조계로 찾아와 마음을 깨치고 사방으로 흩어져 사방팔방으로 돈오선을 알리니 이 도량 이름을 붙여 6조 조계혜능 대사하고 이 선풍을 조계선(曹溪禪), 돈오선(頓悟禪), 조사선(祖師禪)이라 한다.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조계종

서기 700년을 전후하여 6조 혜능대사가 설한 조계선, 돈오선은 남악 - 마조 선사로 이어져 대중화 된다. 마조 문하에는 100여 명의 대선지식이 나와 천하에 조사선이 대세가 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 시대에 신라의 도의(道義)스님과 같은 고승들이 화엄종을 공부하러 당나라로 유학갔다가 마조 문하의 조사를 만나 마음을 깨치고 조사가 되어 돌아와 선법을 전하니 이것이 바로 한국 구산선문(九山禪門)이다.

통일신라 구산선문의 선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종단이 바로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다. 조계종은 6조 조계혜능 대사의 돈오선을 종지로 하는 종단인데, 조계종이란 종명은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한국불교의 독창적인 종명이다.

어떤 이들은 중국 스님의 선을 우리가 왜 공부하느냐고 힐난한다. 그런 분별이라면 불교는 인도인 싯다르타가 창시한 종교가 아닌가? 불교와 선은 인류 보편의 지혜로 민족이니 인종, 계급, 국가, 남녀노소의 차별을 넘어 인류 보편의 평등한 가르침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불교와 선의 지혜를 모르는 것이니 딱하기 그지없다.

6조의 조계선은 당나라뿐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에까지 전파되어 동아시아의 정치경제, 사회문화에 큰 흐름을 만들었다. 특히, 8세기에서 13세기까지를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황금시대라 하는데 이것은 선 사상과 문화가 중심이었다.

6조의 조계선은 현대 사회에도 성성하게 인류에 기여하고 있다. 미국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나 ‘경영의 신’이라는 일본의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회장, 한국 동국제강그룹 창업자이자 (재)대한불교진흥원의 시주자인 대원 장경호 회장 등은 6조 혜능대사의 선풍에 영향을 받아 선의 지혜를 기업 경영에 적용하여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다.

▶ 한줄 요약

마음법 깨치는 선종 가르침 본격적으로 펼쳐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