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문화재 향한 애정으로 佛緣 빚다 

김동영 前국립고궁박물관장

2021-08-17     송지희 기자

 

35년 6개월간 공직 생활 후
박물관장 소임 끝으로 퇴임
2011년 문화재청 근무 당시
조계종과 ‘정책협의회’ 구성

문화재 관리보존 위한 논의
정당한 권리로서 가능케 해
매일 절 수행으로 하루 시작
퇴임 후 고향인 영주서 봉사

조선시대 왕실이 사랑했던 화사한 모란꽃이 시대를 뛰어넘어 국립고궁박물관을 장엄했다. 지난 7월 개막해 올 10월 31일까지 진행 중인 ‘안녕, 모란’ 특별전이 한창인 덕이다. 전통에 생동감을 불어 넣은 ‘안녕, 모란전’은 김동영 前 국립고궁박물관장의 마지막 전시다.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쏟은 전시인 만큼 애정도 남다르다. 고궁박물관 곳곳에 전시된 유물과 그림, 디지털로 만개한 모란꽃을 바라보는 김 관장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서렸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국민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랐어요. 박물관 관계자들의 남다른 열정과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죠. 조선왕실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모란을 배경으로 공직생활의 마지막을 기억하게 됐으니 개인적으로 뜻 깊고 감사한 일입니다.”

김동영 前 국립고궁박물관장이 ‘안녕, 모란전’을 마지막으로 35년 6개월 간의 기나긴 공직생활을 회향했다.

7월 28일 퇴임식 당일, 마지막 짐정리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의 관장실에서 김 관장을 만났다. 그가 불교계와 남다른 인연을 이어온 ‘찐불자’라는 추천에 급히 성사된 인터뷰다. 시종일관 밝은 미소로 풀어내는 소회 곳곳에 문화재와 전통문화, 그리고 불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묵직하게 전해졌다.

김 관장은 국립고궁박물관장 소임을 맡기 전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에서 두루 보직을 거치며 문화재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행정직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국립고궁박물관장 소임도 맡게 됐다. 특히 문화재 보존 및 관리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조계종과 문화재청 간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퇴임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와 교류했던 한 관계자는 “불교문화재 관련 전반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이 상당했다”고 평가했다.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불교계가 문화재청과의 원활한 소통을 기반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를 관리·보존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계종·문화재청 간 정책협의회 구성이다. 김 관장은 2011년경 처음으로 조계종과 문화재청 관계자들로 구성된 정책협의회를 탄생시킨 일등공신으로 평가된다. 

당시 문화재청 정책총괄과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조계종과 문화재청을 잇는 소통창구의 필요성을 매순간 절감했다. 조계종은 문화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불교문화재 80%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정작 문화재청 간의 소통은 그리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재 관리·보존을 위한 공통의 목적을 위해 소통과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그의 확신이 양 기관 내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정책위원회 구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당시 제가 맡았던 정책총괄과장은 문화재청의 전반적인 정책을 기획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직책입니다. 그런데 업무를 하다 보니 문화재청과 조계종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거예요. 심지어 직원들에게 조계종은 일종의 민원인이나 이익단체처럼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보유한 문화재가 워낙 많다보니 보수나 수리, 관리를 위한 지원 신청이 많을 수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으로 빚어진 문제였죠. 성보가 문화재로 지정되면 법에 의거해서 유지보수, 관리를 위한 예산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인식이 그렇지 못했던 겁니다. 이런 문제는 안정적인 문화재 보존관리를 위해 반드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책협의회는 불교문화재와 관련한 소통창구를 일원화해 부서별로 분산됐던 관련 업무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나아가 정책 논의과정에서 입장을 조율하고 더 나은 대안을 수립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불교계가 문화재 보유자로서 가진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정당하게 지원받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밖에도 도난문화재와 해외반출 문화재 환수를 위한 문화재청과의 협업, 위례신도시에 건립 예정이었던 문화재보존센터와 관련된 논의를 비롯한 여러 현안들이 정책협의회에서 다뤄졌다. 

문화재 다량소장처인 성보박물관의 지원 방안을 마련한 것도 성과다. 김 관장은 “문화재 다량소장처라는 용어 자체가 이 정책협의회에서 탄생했다”며 “문화재 관리를 위해 필수적인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최소한 정당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근거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교문화재 보존을 위한 지원을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로 인식하는 일부의 왜곡된 시각에 안타까움도 전했다. 불교문화재 자체가 종교를 넘어 수천년간 쌓인 역사의 흔적이기에 우리민족의 소중한 자산임에도, 이를 종교별로 단순비교하며 불교 특혜로 몰아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시각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 역사에 비추어 그동안 불교문화재가 종교문화재의 상당부분을 차지했지만, 이제는 다른 종교 문화재들도 상당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다른 종교 역시 세월이 지나 역사에 대한 흔적을 통해 문화재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협의회는 첫 가동 이후 지금까지 시기와 상황에 따라 구성과 방식이 유동적인 가운데 활발하게 가동되면서 성과를 내기도 했고, 때론 소강상태에 머물렀다가 재가동되는 등의 변화를 맞았다. 이 과정 속에서 문화재 보존관리라는 공통의 목적을 위한 논의창구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김 관장은 “지금 생각하면 정책협의회의 가장 큰 성과는 조계종과 문화재청이 대등한 관계에서 문화재 보존관리에 관한 여러 사안들을 체계적이고 실무적으로 논의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운영돼 더 많은 성과를 일궈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문화재를 향한 남다른 관심은 어린시절 불연에 기반하고 있다. 김 관장은 영주 부석사 바로 아래 위치한 본가에서 나고 자랐다. 신심 깊은 아버지를 따라 사찰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았기에 당연한 듯 불자가 됐고, 전통사찰의 아름다움이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됐다. 문화재청이 대전으로 이전할 때 자원한 것도 문화재를 향한 애정이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그럼에도 정작 종교적 신심이나 신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불교는 마치 주변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공기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쌓인 불연이 비로소 꽃을 피운 것은 2011년 무렵이다. 정책협의회가 가동되기 시작한즈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상실감과 슬픔에 빠져 있던 그의 눈에 집 한켠에 둔 좌복 두 채가 들어왔다. 정책협의회를 통해 인연을 맺은 조계종 관계자의 선물이었다. 좌복을 펼치고 무작정 절을 했다. 남다른 불심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아버지가  생전 그에게 절수행을 권유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마음에 와닿은 까닭이다, 

처음에는 건강에 목적을 뒀다. 매일 새벽 절을 하면서 체력을 단련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몸보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되새기며 몸을 낮췄고 어느새 매일 새벽 1시간, 하루를 시작하는 그만의 수행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시작한 절수행이 올해로 꼭 10년째다. 세월이 쌓인 만큼 신심도 깊어졌다. 

“아무리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도 일 배 일 배 절을 하다보면 어느새 차분히 가라앉아요. 절수행은 나를 돌아보고 매순간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퇴임 후에도 제 하루는 절수행과 함께 시작되겠지요. 어쩌면 수행에 매진하는 시간이 조금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35년 6개월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공직생활이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좀 더 자유롭게 불자로서의 활동을 해볼까 생각 중이거든요.”

8월 중순경 그는 고향 영주로 향한다. 어린시절 추억이 가득한 부석사에서 신행활동을 지속하면서 농사도 짓고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계획이다. 문화재를 향한 관심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경복궁을 등진 채 모란이 장엄한 국립고궁박물관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더없이 따뜻하다.

글=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사진 =박재완 기자 waniholl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