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심 깨치면 곧바로 부처
14. 5조 홍인, 동산법문을 설하다 〈금강경〉으로 부처되는 길 동산법문은 불교의 전환점 1천여 대중 상주하며 교화
인도의 달마대사가 머나먼 동쪽으로 와서 마음을 바로 깨치는 선법을 전한 지 100여 년이 지나 4조 도신대사 대에 안정적인 선 도량이 마련되었고, 곧 5조가 나왔다. 5조 홍인은 홀어머니 밑에서 살다가 도신대사를 만나 마음을 깨치고 달마대사의 가사를 물려받아 5조가 되었다.
동산으로 가서 바로 부처되는 법문을 설하다
홍인(601~675) 대사는 스승이 있는 서쪽 쌍봉산에서 동쪽으로 옮겨가서 도량을 여니 이것이 저 유명한 전설이 된 동산법문(東山法門)의 시작이다. 4조 대에 이미 신라 법랑 스님을 비롯하여 500여 명이 넘는 구도자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룬 선문(禪門)은 5조 동산법문시대에는 1000여 명의 수행자들이 한 도량에서 정진하였으니 그 열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홍인대사가 법문하던 이 도량이 바로 조계 혜능이 출가하여 8개월 방앗간 행자 생활 중에 마음을 깨치고 6조로 부촉된 곳이다.
당시 동산법문의 자취를 더듬어 보고자 1300여 년이나 지난 2005년에 전국선원수좌회에서 고우스님을 가이드로 무여, 혜국, 의정, 원각, 영진 등 전국 선원장 스님들이 선종 사찰 순례를 할 때 필자도 말석에 동참하여 오조사를 직접 가보니 산 언덕배기에 있는 도량이라 좁아 보였다. 하지만, 도량은 고색창연하였고,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고 감동하기에 충분하였다.
오조사에는 사찰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전각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성모전(聖母殿)이다. 성모하면 예수교에서 예수를 낳은 동정녀 마리아를 부르는 말인데, 부처님 도량에 성모전이라니? 하며 들어가 보니 5조 홍인대사의 어머니를 모신 전각이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홍인대사를 낳은 어머니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았다. 부모님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받으면서도 홍인을 잘 키웠고, 그는 훌륭하게 자라서 출가하여 마음을 깨치고 조사가 되었으니 그 어머니는 성인을 낳은 성모로 모셔진 것이다. 고난 속에서 홍인을 키웠던 어머님의 노고는 홍인이 출가하여 조사가 되어 성모로 보은하게 된 것이다. 5조 홍인대사는 지극히 인간적인 분이셨던 것 같다. 출가 후에 모친이 늙어 의지할 곳이 없자 오조사로 모시어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다고 하니 그 효성 또한 중생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이다.
불교사에서 전설이 된 동산법문
중국 불교사에서는 이 동산법문은 하나의 전환점이자 전설이다. 동산법문은 4조와 5조가 주석한 중국 호북성 황매현 쌍봉산 동산 오조사에서 홍인대사가 설한 선 법문을 말한다. 7세기 초 중국은 수나라(581~619)가 10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패하여 무너지고 이(李)씨의 당나라(618~907)가 개국하여 중원 통일의 기반 위에 경제력과 사상 문화가 발전하여 송나라 - 원나라까지 이어지는 중국 역사에서 최전성기이자 동양이 서양 문화를 압도하던 황금시대였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안정기에 4조와 5조 홍인 대사의 동산법문(620~675)은 천하에 새로운 불교, 본래성불의 달마선을 전파하게 된 것이다. 통일 중국 당나라의 발전은 한반도의 삼국시대와 일본, 베트남까지 영향을 주었고, 사실상 한자(漢子) 중심의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때부터 4조 문하에서 신라 유학승 법랑이 수학하는 등 많은 신라의 구법승들도 선에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전하고 있는 홍인대사의 동산법문은 〈수심요론(修心要論)〉, 〈최상승론(最上乘論)〉이 알려져 있다.
“무릇 성스러운 도에 나아가려면 참된 종지를 깨쳐야 한다.
대저 수도의 본체는 모름지기 자기 몸과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아 분별이 없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성은 본래 원만하고 청정한 마음이다. 이 자성이야말로 본래 스승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수승하다.”
홍인대사는 우리가 부처님처럼 생사 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하려면 본래 청정한 마음을 깨쳐야 함을 강조한다. 깨달음의 수도는 자기 심신이 본래 청정하여 불생불멸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라 한다. 결국 홍인대사의 동산법문도 부처님의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다만, 이전의 불교가 중생이 열심히 수행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라 하지 않고, 중생이 본래 청정하고 불생불멸하니 따로 부처님을 구하고 믿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 마음을 바로 깨치는 선을 말하고 있다.
홍인대사는 한 수행자가 “어째서 자기 마음이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수승하다고 말하십니까?”하는 물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생사의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본래 마음을 지킨다면 곧 피안에 도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또한 〈금강경〉의 “만약, 형상을 통해서 여래를 보려하거나 소리를 통해서 여래를 찾을 것 같으면 그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끝내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다”라는 구절을 상기시켰다.
결국 동산법문은 〈금강경〉 가르침대로 밖으로 여래를 찾지 말고 자기 마음이 본래 청정하니 바로 깨치는 선을 알려준다. 당시에 성행한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천태종이나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화엄종 등 교학(敎學)이 중생이 부처되는 수행을 점점 닦아서 차차 부처가 되어 간다는 점오(漸悟)의 수행관을 제시하였고, 또 정토계의 염불(念佛)은 부처님을 지극 정성으로 생각하여 깨치는 수행관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생사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오직 자기 마음이 본래 청정하니 바로 깨치는 가장 빠른 최상승의 선을 제시하였다.
〈금강경〉으로 바로 부처되는 길
부처님이 깨치고 45년 동안 설법한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부처님이 방대한 설법은 너무나 다양하고 심오하여 인류의 그 어떤 종교나 철학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너무나 방대한 불교 경전은 핵심인 중도를 알지 못하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아 변견에 집착하기가 쉽다. 실제 부파불교시대가 그러하였고, 이후 소승과 대승, 선과 교, 선과 염불, 화두선과 위빠사나 수행자 사이의 갈등들이 과거에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것이 불교 공부의 어려움이다. 이것이 우리 불자들이 안고 있는 크나큰 과제다.
그런데, 5조 홍인대사는 자기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며 〈금강경〉 한 권으로 바로 부처가 되는 길을 설하였다. 이것은 생사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행자들에게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한자를 익혀 많은 경전을 볼 필요도 없고, 오랫동안 염불하고 계율을 지키고 닦고 할 필요도 없이 자기 마음이 본래 청정하니 바로 깨치는 길을 말한 것이다. 당시 동산 오조사에는 1000여 대중이 상주했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가 있다.
나뭇꾼이 부처가 되고자 출가하다
〈금강경〉 한 권으로 생사 윤회의 고통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게 한다는 동산법문은 삽시간에 세상에 전파되어 갔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름길로 가려 하는 법이다. 7세기 후반 즉 우리 한반도가 삼국 통일이 이루어질 무렵에 당나라 남해 광동성 신주라는 시골에 혜능이라는 나무꾼이 있었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님을 모시고 가난하여 시장에 나무를 팔아 먹고 살았다. 이 나뭇꾼의 이름은 혜능이고, 성은 범양 노(盧)씨인데 그가 바로 6조 조계혜능 대사이다. 나무꾼 노혜능의 아버지는 본래 북경 근처에 말단 관리를 하다가 어떤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남해 신주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일찍 죽고 말았다. 가장이 죽으니 홀어머니는 숱한 고생을 하며 아들을 키웠고, 가난하여 혜능에게 문자 공부를 시킬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혜능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나무꾼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성실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손님이 나무를 사서 여관으로 날라다 주고 나오는 길에 문득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이 난다(應無所住而生其心).”
혜능은 문자를 모르는 무식한 나무꾼이었지만, 왠지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무심코 경 읽는 손님에게 다가가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손님은 이것은 부처님 말씀을 모아놓은 불경 중에 〈금강경〉이라 답했다. 혜능은 〈금강경〉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저 양자강 위 황매 오조사에서 홍인대사가 〈금강경〉 한 권으로 부처되는 법을 설하고 있으니 그리 가면 된다”고 하였다. 혜능은 동산 오조사로 가서 부처되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양해야 할 홀어머니가 계시니 큰 고민이었다. 그때 마침 한 부유한 불자가 혜능의 곤란한 사정을 듣고는 어머님 봉양케 하라며 은 100냥을 보시하였다. 이리하여 혜능은 외가에 그 돈을 맡겨 어머니를 봉양케 하고는 오조사로 출가의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하나 짚고 넘어 갈 것이 어떤 분은 혜능대사가 여관에서 〈금강경〉의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이 난다”는 구절을 듣고 바로 깨쳤다고 한다. 바로 견성성불하여 부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최상승의 선(禪)일지라도 또한 천하의 혜능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저자거리에서 듣도 보도 못한 무슨 경전인지도 모르는 한 구절을 듣고 확철대오할 수 있다는 말인지. 의문이다. 〈육조단경〉의 기록으로 보건데 이것은 초발심(初發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나도 부처가 되어 머무는 바 없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첫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혜능은 부처가 되고자 선지식이 있는 동산 오조사로 길을 나섰다.
밖으로 여래를 찾지 말고 마음을 바로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