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국립대 교수 출신 ‘특별한’ 유학생

7. 양곤외대 교수 ‘수왼레이’

2021-07-05     최재희 양곤대 박사과정
교수 출신 유학생 수왼레이.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보다는 사회의 형성된 시선에 맞춰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다. 한 때는 명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 하면 인생 전체가 망한 것처럼 고3 수험생들을 낙인 찍던 사회적 시선도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명문대 입학이 하나의 과정이지 인생의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지고 있다.

 

미얀마에선 한국어 교수
관심 분야 ‘광고’ 배우려
한국 광고홍보학과 유학

‘미얀마의 봄’ 팀 구성해
양국 상호 이해 이끌어
‘중도’ 삶 지탱하는 철학

미얀마 유학시절, 미얀마 사람들의 정서적인 부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한국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면서 ‘우리’라는 단어보다 ‘개인’이라는 단어가 익숙했던 나에게 미얀마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을 대하는 방식들은 이기적인 나의 마음을 녹여줬다.

제일 부러웠던 것은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보는 일에 미얀마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인연이 닿아 간화선 수행을 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관조하며 살펴보는 일은 하늘에 구름이 낀 것처럼 너무나도 어려웠다. 하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등을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타인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도 과감히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힘은 천 년이 넘은 미얀마 불교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서도 ‘교수’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명예로운 일이다. 미얀마에서 ‘교수’라고 하면 한국보다 더 명예롭다. 한국에 미얀마 교수 신분으로 유학생활을 하러 오는 분들에 관한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교수를 하다가 자신에게 또 다른 관심분야가 생겨 직업을 그만두고 유학온 ‘수왼레이’의 소식을 듣고는 굉장히 놀랐다.

양곤외국어대학교에서 3년정도 한국어과 교수 생활을 하다가, 광고 분야에 관심이 생겨 평생 안정적인 교수의 직업을 그만두고 국민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그가 한국을 처음 접한 것은 우리나라의 드라마와 음악이었다. 한류를 통해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꾸준히 공부를 해서, 한국어과 교수도 되었지만 그의 마음은 결국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가 사랑하는 한국어를 매일 느끼면서 ‘광고’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인 한국으로 작년 9월에 유학을 왔다. 미얀마에서 남자들은 대부분 어린시절 동자승 출가의식을 하지만, 여자들은 선택적으로 출가를 한다. 그는 부처님에 대한 불심이 남달라 남자아이들과 같이 10일동안 출가를 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롯이 느껴 봤던 경험에 대해 연꽃처럼 빛나는 두 눈을 반짝였다.

그에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라고 다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주저없이 ‘중도(中道)’를 말했다.

“삶에선 순간 순간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하는 일들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 극단적으로 한 곳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매 순간 조심해요. 중도는 삶에 있어 적합한 가르침이라 생각해요. 억울하고 나쁜 일이 있어도 너무 흥분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반대로 정말 행복하고 좋은 일이 있어도 그 기분에 취하지 않도록 늘 노력해요. 중도의 길을 가는 삶을 이번 생에 살아보고 싶어요.”

 

고양시가 주관한 행사에서 미얀마 상황을 알리는 수왼레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린 시절 전래동화로 어린 아이들에게 삶의 교훈과 상상력을 준다. 미얀마에서는 부처님의 전생담인 <자타카>가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의 삶과 미얀마 사람들의 삶이 ‘쿠데타’라는 현실에 직면하여 문제가 생겼지만, 주저하지 않고 한국에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 들은 부처님의 전생담을 통해서라며 자신이 어린시절 읽고 감동받았던 부처님의 전생담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가 난파가 되었습니다. 난파되기 직전에 다른 사람들은 울고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는 음식들을 배부르게 먹고, 몸에다 기름을 바르고 물 안으로 뛰어 갔어요. 쉬지 않고 계속 7일동안 수영하는 것을 보자 한 보살이 알아보고 그를 도와주러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 이야기에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쉬지 않고 살기 위해 수영을 한 주인공의 끈기에 감탄했다”며 “어떤 문제가 생길 때 노력도 하지 않고 주저 앉는 것보다는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도 이 이야기를 통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그래서 지금 한국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95년생 또래 친구들과 함께 <미얀마의 봄>이라는 팀을 통해 문화적으로 미얀마 민주화를 한국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의 삶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현재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삶의 방향과 선택의 기로에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와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보니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미얀마를 알기 위해서는 사회와 문화 속 불교의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얀마의 문화는 불교에서 많이 내려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해주는 동화부터 불교의 가르침에서 나온 이야기들이고, 문화 행사나 풍습들도 불교와 많은 관련성이 있습니다. 미얀마 사회 구성원이 대부분 불자라서 불교적 가치관이 미얀마 현대사회를 이끄는 데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도덕적인 가르침들도 불교에서 내려온 것들이 많습니다. 미얀마인들의 일상 속에서는 불교가 빠질 수 없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가치관과 문화도 불교를 바탕으로 한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부처님께 기도문을 올리고 파고다에 가거나 좋은 일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어른들과 선생님들을 존경해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등과 같이 불교의 가르침들이 미얀마 예의범절에 녹아 있는 것들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서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하며 고국 안전을 발원한다.

한국에선 간혹 미얀마 민주화 기사를 읽다 보면 2007년 샤프론 혁명과 같이 미얀마 승단이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아예 나서지 않고 있다는 식의 칼럼을 종종 볼 수 있다. 미얀마 사람인 그에게 ‘현재 미얀마 민주화 운동 속에서 스님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시나요?’라고 묻자 “현재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대해 스님들도 도와줄 수 있는 점에 대해서는 다 힘 쓰고 있다”며 시위대나 피난민들에게 음식이나 주거지 제공 등을 도와주고 있고 시위에도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알려지지 않는 불교계와 스님들의 노력이다.

그리고 그는 불교의 정신적인 가치가 현재 미얀마 상황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미얀마 민주화 과정을 하면서 마음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불교적 가르침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불교는 제 삶에 희망을 주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마음을 다시 다스리는 데 큰 영향을 줍니다.”

작은 체구이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아우라는 남달랐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중도’가 삶에서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며 의연하게 날 바라보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와 미얀마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경전이 아닌 힘든 인생 속에 든든한 버팀목이자,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이다. 한국에서 배운 광고홍보를 미얀마에 어둠이 걷히고 다시 봄날이 따스하게 찾아 온 날 고국의 발전을 위해 멋지게 활동할 수왼레이의 미래를 응원한다. <양곤대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