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한국불교회화사〉 발간한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
“불화, 눈으로 보는 불교사·사상” 삼국시대부터 1920년대까지 한국불화 통사적으로 접근해 50년 불화 연구 성과 집대성 시대별 불화론 조명해 ‘눈길’ 불화승 유파 계보들 총정리 800여 컬러 도판 이해 높여 팔순에도 현역 학자로 활동 반구대·한국조각사 집필중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은 어렵고 고되다. 누구나 갈 수 있으나 아무나 가지 못하는 그런 길이어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세간에서 존경하는 이유도 새로 개척해나간 그 길이 후대에게는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동국대 명예교수)은 ‘불교미술’이라는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을 묵묵히 걸어온 학자다. 그만큼 문 소장이 보인 연구 성과는 가히 방대하다. 불교미술 관련 저서만 50여 권, 논문만 300여 편에 달한다. 그는 수많은 이정표를 남겼고, 현재 불교미술사학이 체계를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초’ 수식어를 가진 학자
감히 문 소장을 ‘아무도 걷지 않는 길 걷는 학자’라는 수식을 붙이는 이유는 그를 통해 이뤄진 최초의 성과들이 있어서다.
역사학자를 꿈꿨던 문 소장은 경북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입학했고, 경북대 불교대학생회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며 ‘불교학’을 조우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불교미술’에 관심을 가진 것은 군 제대 후 경북대 박물관에 근무하면서부터다. 박물관에서 문 소장이 한 업무는 유물 카드 정리였다. 그는 수만 점의 유물을 실측하고 특성을 파악하며 미술사의 기초를 알게 됐다. 경북대 대학원에서 ‘한국 석굴사원 연구’를 석사학위 논문으로 쓰면서 ‘불교미술’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후 당대 최고 불교미술학자인 황수영 동국대 교수를 만나 동국대로 진학해 석굴암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석굴암 불상조각 연구’로, 석굴암 내 전체적 불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은 처음 있는 사례였다.
또한 문 소장은 우리나라 최초 불화 개설서인 〈한국의 불화〉(1977)를 내놓았고, 최초의 불교미술개론서인 〈불교미술개론〉(1992)을 발간했다. 한국 조각들의 시대별 특징을 조명한 〈한국조각사〉(1977)도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다.
그의 이름을 세간에 알린 것은 ‘발굴’이다. 이는 불교미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불교미술사학자 ‘문명대’는 한국 선사 유적 발굴의 쾌거라고 알려진 ‘반구대 암각화’ 최초 발견자이기 때문이다.
본래 문 소장은 원효 스님이 주석했던 반고사(磻高寺)를 찾기 위해 일대를 탐사했고, 그 과정에서 1971년 울산 반구대 선사 암각화를 발견했다. 그는 불교미술사학자였지만, 반구대 암각화를 10년동안 연구해 1984년 〈반구대 암벽 조각〉이라는 역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문 소장은 해외 불교 유적 발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1993년 러시아 연해주 ‘코르사코프카 발해 사원지’ 발굴과 2004∼2005년 파키스탄 탁실라에서의 ‘졸리안Ⅱ 사원지’ 발굴이 대표적이다. 연해주 발해사원지 발굴은 우리나라 최초 해외 발굴 조사였고, 최초 발해 사원지 발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정년을 앞두고 이뤄진 탁실라 발굴에서는 부조상을 포함한 불상 50여 점과 동전과 못 등의 금속품과 토기 300여 점을 쏟아져 나왔다. 최고의 발굴성과이기도 했다.
50년 연구 성과 집대성 역작
그런 문 소장은 최근 〈한국불교회화사〉를 발간했다. 이는 방대한 한국불화 작품을 통사적으로 체계화시킨 최초의 한국불교회화사 독립 개론서다.
〈한국불교회화사〉는 문 소장의 50여 년 연구 성과가 집대성된 역작이기도 하다. 이는 1977년 발간한 〈한국의 불화〉에서 회화사 장르를 독립시켜낸 것으로, 이 땅에 불교가 수용된 372년부터 1920년대까지의 한국 불화 도상과 양식의 변천을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책에 수록된 800여 도판들은 시대별 불화의 변화와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그가 불화에 애착을 갖는 것은 당시 시대의 상황과 사상, 신앙 등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불화 특징 중 하나가 눈으로 보는 불교사이자 불교사상입니다. 유가유식종의 상징이자 주 예배대상인 미륵존상화나 화엄종의 예배대상인 아미타불, 비로자나불의 설법도들은 종파적 사상을 도상화한 것이죠. 또한 불화 화기에는 시주자, 화주, 불화 담당자, 불화승 등이 담겨 있는데 이는 불화를 조성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과 의미를 알 수 있게 합니다.”
문 소장은 2006년 퇴임 후 자료와 그간의 연구성과를 수집해서 2010년부터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갔고 2015년 1차 집필을 완료했다. 이후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자 연구과제로 선정되면서 이를 5년 동안 보완해 750쪽에 달하는 대작을 완성했다.
“사실 〈한국의 불화〉를 발간한 뒤, 10년 안에 독립된 회화사 개론서를 발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여러 사정도 있고, 체계화할 시간도 없었어요. 2006년 정년퇴임 후에 ‘이제 미뤄왔던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집필에 착수했습니다. 한국연구재단 사업에 선정된 이후에는 기존 집필을 보완하려고 일본에 소장된 고려불화와 조선 전기 불화를 조사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완성에만 10년이 걸렸죠.”
한국불화의 변천 ‘한눈에’
문 소장에게 발간된 〈한국불교회화사〉의 장점을 물었다. 곧바로 “한국불화의 역사(시간)적·공간적 특징들을 체계화시켰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한국불교회화사〉에서 모든 시대의 ‘불화론(佛츐論)’을 새로 정리해 기술했다. 시대별 불화론이 이해돼야 불화의 흐름을 바르게 정리할 수 있어서다.
“불화의 흐름과 변천을 연결시키면 비로소 불교회화사가 됩니다. 그 흐름을 한눈에 조망하기 위해 불화의 조형사상이나 시대상 도상 특징 등을 체계화한 것이 불화론입니다. 각 시대별 불화론은 그 시대의 대표적 불화이론들을 선별한 것이어서 각 시대의 불화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책에 따르면 문 소장은 삼국시대의 불화론을 통해 당시의 불화가 대승불교를 기본으로 성립됐으며, 대승불교의 다양한 학파들의 사상을 기반한 미륵경변상도, 아미타변상도, 본생도 등이 조성됐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 역사를 통틀어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고려시대 불화는 기록에는 여러 종류와 많은 형식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존하는 예는 많지 않다. 양식적 특징으로는 본존과 협시의 상하 2단의 엄격한 구도의 전형적 고려불화 양식(제1양식)과 본존보다 협시가 현저히 작은 상하 2단 구조(제2양식), 수묵화 양식으로 나눠진다.
조선불화론에서 대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숭유억불의 풍조로 인해 사상적으로 유교적 불교시대가 돼 문파에서 문중불교로 전환되고 유교적 이념에 따라 충효사상이 집중적으로 대두된다. 각종 재의식이 성행함에 따라 삼장도, 감로도, 신중도 등의 괘불화가 성황을 이룬 시기이기도 하다. 양식적으로는 고려 예배존상화의 특징인 2단 구조가 사라지고, 경변상도와 비슷한 본존불을 둘러싸는 중심 구도법이 주를 이룬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각 지방별, 유파별 화파들이 파악되는 것도 특징이다.
실제, 문 소장은 조선 후기와 말기 불화의 특징으로 화승 유파의 대두와 다양화를 강조하는데 이에 대한 계보를 도표로 정리했다.
“벽암 각성 스님의 경우 임진왜란 이후에 소실된 사찰을 재건하는 불사를 많이 진행했는데 건축부터 불화, 불상 작가 스님들을 데리고 다녔죠. 사찰 전각부터 그 안에 불상과 불화까지 입체적으로 조성했던 것이죠. 이렇기 때문에 조선 후기 이후 불화들은 지역과 유파별로 화풍이 확인될 수 있습니다. 불화론에 작가론이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나는 현역 불교미술학자
올해 꼭 팔순을 맞은 문 소장은 아직도 현역이다. 동국대 교수에서 퇴직한 것이지, 학자로 은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당장 반구대 암각화 발견 50주년을 맞아 자신의 저서 〈반구대 암벽 조각〉을 보완한 개정판을 올해 발간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내년에는 〈한국조각사〉 개정판 발간을 준비 중에 있다. 현재 초교는 완성한 상태고 2교를 보고 있다.
“〈한국조각사〉는 당시 연구가 미진해서 보완할 부분이 많아요. 벌써 40년 정도가 지났으니 후대 연구가 얼마나 많이 됐겠습니까. 이를 정리해서 한국의 조각사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도록 소개하려 합니다.”
‘연세도 있으니 이제 쉬셔도 되지 않는가’라는 우문에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려 한다”는 문 소장의 현답이 돌아왔다. 그는 ‘눈을 밟으며 길을 갈 때에는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후세들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니(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라는 서산 대사의 게송을 학문으로 실천하는 수행자다.
“아직도 알고 싶은 것이 많다”는 노학자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