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포교일기] ‘묘법연화경’으로 사는 것은

2021-06-29     현불뉴스

코로나19시대를 맞아 많은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 산지가 어느덧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감염인을 위한 한국범종교단체의 회장이라는 소임을 맡음과 동시에 코로나 19를 맞닥뜨리게 되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활동을 멈추라는 사회의 요청 속에서도 움직여야하는 우리의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염인들을 위한 요양원·요양병원 시설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감염인들의 사회적 낙인과 방치의 현실’은 계속되고 있기에 어떻게 이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것인가가 가장 큰 화두였다.

‘유관기관 간담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기관들의 실무자를 초대하니 15명 정도의 소수의 인원이 거리두기를 하고 모일 수 있게 되었다. 각 기관들은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돌봄과 소통을 위한 노력들에 대해 함께 공유하였다.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이 난제를 나누었다. 

요양원장 교무님은 의료진들이 감염인들에 대한 의료적 지식의 부재와 편견을 가장 큰 문제로 얘기하였고, 감염인들 모임의 대표는 사회적 낙인과 감염인 스스로 자신에 대한 낙인이 ‘좌절’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활동가인 선생님은 감염인들이 입원해 있는 요양원이나 거절하는 요양원 모두 ‘낙인’의 같은 관점임을 지적하였다. 병원의 한 간호사는 얼마 전 상담한 한 젊은 감염인의 고통을 예로 들었는데, 함께 밥을 먹던 어머니가 아들이 먹던 컵의 물을 잘못 알고 먹다가 급하게 물을 뱉어버리는 모습을 감염인 아들이 지켜보며 큰 슬픔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 말에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다.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나는 과연 〈반야심경〉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넘쳐나는 요양원과 요양시설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감염인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편견의 벽으로 아픈 몸을 편히 누일 곳이 없는 것이 감염인들의 현실이다.

새벽예불 후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을 읽을 때 한 큰스님이 하셨던 질문이 떠올랐다. “무엇이 〈묘법연화경〉이냐? 〈법화경〉으로 사는 것은 무엇이고 〈묘법연화경〉으로 사는 것은 무엇이냐?” 

꽉 막히게 하셨던 그 질문의 본질이 이제야 느껴진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할 때,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할 때, 그때를 ‘묘법’이라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