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종용록 강설〉 완간한 성본 스님
“경전 어록, 佛法 압축…죽더라도 공부해라” 30세 늦깎이 일본 유학하며 공안·선어록 공부에 매진해 40년 정리한 〈종용록〉 완간 경전 공부해야 안목 생겨나 “책 보지말라” 잘못된 문화 임상 통해 좋은 의사 나오듯 바른공부가 명안종사 만들어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서산 대사의 저서 〈선가귀감〉에 수록된 문구다. 이를 통해서 보면 불교는 부처님의 마음과 말씀을 통해 깨달아 스스로 부처가 되는 종교이다. 부처님의 마음과 말씀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단연 수행과 경전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팔만사천법문이라 할 정도로 방대하다. 이 방대한 법문은 경전에 모두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논서부터 고승·조사들의 선어록까지 불법의 요체를 담아내고 있다. 모두 불교의 바른 가르침을 전하고 있기에 무엇 하나 허투루 볼 수 없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 교수를 지내고 현재 한국선문화연구원을 운영 중인 성본 스님은 평생을 선학(禪學) 연구에 매진해왔다. 스님은 최근 〈종용록 강설〉(총8권, 민족사 펴냄)을 완간했다. 지난해에는 〈선불교 개설〉과 〈돈황본 육조단경〉(개정증보)을 잇달아 출간하기도 했다.
이제 70세로 저술활동은 조금은 쉬엄쉬엄 할만도 하지만, 6월 1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성본 스님은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단언했다.
성본 스님이 역주·강설한 〈종용록〉은 1223년 중국 조동종 선승 만송행수가 천동정각의 송고 100칙에 시중(示衆)과 착어(着語)·평창(評唱, 강설·해석)을 붙인 것으로 원오극근의 〈벽암록〉과 함께 중국 선종 2대 명저로 손꼽힌다.
그간 한국불교는 임제종 선풍을 따르고 있는 상황이어서 〈종용록〉에 대한 제대로 된 강설집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본 스님의 〈종용록 강설〉은 가장 주목할 만한 명강설서다. 〈종용록〉에는 많은 경전 구절과 용어, 중국 고사성어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성본 스님은 그 말들이 어떻게,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를 명확하게 짚어내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공부·집필하기 시작한 〈종용록 강설〉의 완성이 40년이 걸렸고, 교열만 2년 가량의 기간이 소요됐다”는 스님이 이야기에서 저술에 들어난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만송 선사의 〈종용록〉과 원오극근 선사의 〈벽암록〉은 제불 보살들과 선승들의 법문, 선시, 게송, 선사상의 진수를 제시하고 불법의 대의를 깨닫도록 설법한 선의 고전입니다. 제가 선어록과 〈종용록〉을 공부하게 된 인연은 일본 고마자와 대학 가가미시마(鏡島元陸) 선생의 〈천동굉지광록〉 세미나에 참석하면서부터입니다. 〈굉지송고〉 100칙과 게송의 법문을 참구하면서 여러 주석서와 선승들의 평창을 읽고 사유했습니다. 그 후 40년 동안 정리해서 〈종용록 강설〉을 출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성본 스님은 30세에 비교적 늦게 일본 유학을 시작했다. 유학 전에는 여느 스님들처럼 선원에 방부를 들고 참선 수행을 했다. 어느 날 성본 스님은 서옹 스님의 〈임제록〉을 읽고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는 말이 궁금해졌고, 도반의 인연으로 서옹 스님을 친견하게 됐다. 친견 자리에서 서옹 스님에게 정법안장과 선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서옹 스님은 성본 스님에게 일본 유학을 권유했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큼 더욱 간절했다. “목숨 걸고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만 한 성본 스님은 유학 생활 8년동안 한 번도 한국에 귀국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했기에 아이치가쿠인 대학과 고마자와 대학에서 각각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나서야 고마자와 대학서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한 뒤에는 선승이자 학자로, 또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로 평생을 매진했다. 스님의 선에 대한 강설은 개인적 경험이 아닌 철저하게 경전과 선어록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더욱 명증하고 이해하기 쉽다.
스님은 제불여래나 선승들이 자신의 견해와 사상을 주장한 것이 아니며, 진여실상법을 설법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부처님께서 당신 스스로 “49년 간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一字不說)”고 밝힌 이유도 여기 있다는 것이다.
“제불세존은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하지 않고 자아의식을 텅 비우고 대상 경계도 텅 비워 진여본심의 지혜로 진여법을 여법하게 개시(開示)했을 뿐입니다. 제불여래의 설법은 시절 인연에 따른 자기 본분사의 일입니다. 이 말은 불지견(佛知見)과 정법(正法)의 안목을 구족한 누구나 설법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문수, 보현, 관세음보살 등 수많은 대승보살과 유마 거사, 승만 부인, 암제차 여인, 8세 용녀와 조사, 선승들도 정법의 안목으로 선의 법문을 설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본 스님은 정법의 안목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전과 선어록을 바르게 공부해야 함을 강조했다. 공부를 통해 길러진 안목이 있어야 수행도 바르게 할 수 있고, 중생을 제접하며 법을 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님은 의사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훌륭한 의사가 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바로 ‘임상’입니다. 많은 환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치료를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 독자적인 안목이 생기죠. 수행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법의 안목이 있어야 중생의 병을 진단하고 실상에 맞는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경전과 선어록은 제불보살과 고승, 조사들이 전한 불법의 요체가 축약돼 있습니다. 이를 공부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 제불조사와 선승들을 친견하고 선의 종지를 탐구하는 구도행입니다.”
한국갤럽에서 진행한 ‘한국인의 종교인식’ 조사에 불교인 중 66%가 “경전을 읽지 않는다”라고 응답한 것에 대해 성본 스님은 “불자들이 모두 공부를 너무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이를 만든 “문자 보지 말라”는 오역에서 비롯된 잘못된 문화라고 지적했다.
“〈육조단경〉에서 혜능은 ‘문자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번역입니다. ‘문자를 의식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라고 해야 맞습니다. 문자를 의식, 대상의 경계에 두면 속박된 중생이 되기에 혜능은 문자를 의식의 대상으로 두지 않은 겁니다. 이건 책을 읽지 말라는 말과는 완전 다릅니다.”
향후 스님은 강의와 저술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서울과 대구에서 진행한 강의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대구서만 진행 중이지만, 이를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설잠 김시습과 만해 한용운의 〈십현담 요해〉·〈십현담 주해〉를 역주·강설할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상황을 맞이한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넘어가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스님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을 통해 설명하며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바세계라고 하죠. 진흙탕 속에서 사는 겁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이 뿌리도 결국엔 진흙입니다. 지금 여기 함께하면서 수행을 통해 지혜를 이루는 창조적 삶을 사는 것이 불교입니다. 결국에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겁니다. 죽더라도 공부해야 합니다. 그건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