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불교]3. 이동한 한국사회복지협회장

“장애인 잠재력 인정한다면 편견 없을 것”

2021-05-26     글=송지희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이동한 한국사회복지협회장(사회복지법인 춘강 이사장)

이동한 한국사회복지협회장(사회복지법인 춘강 이사장)은 장애인 자립에 있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평등하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장애인들이 직업을 통해 스스로에게 내재된 존엄과 가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왔다.

‘장애인은 일 할 수 없다’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장애인 직업재활·자립사업을 처음으로 일궈냈고 장애인 고용의 새 장을 열었다. 국가 정책이 시혜적 수준에 멈춰있던 1980년대, 정책과 제도, 정부지원금 없이 장애인들이 일하는 사업체를 운영했다. 이를 통해 장애인도 직업을 갖고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로써 당당한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1987년에 복지법인 춘강 설립
30여년 간 장애인 자립·재활
뿌리깊은 화두인 ‘홀로서기’는
재능 발굴·교육으로 실현 돼


“사람은 누구든지 오감을 발휘할 수 있는 재능이 있어요. 특히 장애인들은 잠재력이 아주 많고 또 다양합니다. 맞춤식 교육을 통해 재능을 발견하고 맞춤식 직업을 가진다면 충분히 우리사회 당당한 일꾼이 될 수 있지요.”

계량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장애인직업재활이 근본적인 복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이 회장은 1987년 11월 사회복지법인 춘강을 설립했다. 제주도 최초의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설립하고 장애인근로센터를 개원했다. 한 설비당 10명씩, 10개 공정만 운영해도 100명의 장애인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이는 각기 개인의 자립 토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사업분야도 조경, 한복, 목공예, 귀금속공예 등으로 점차 확대됐으며 10개 분야에서 장애인 각자의 특성에 맞는 직업 연계가 활발히 이뤄졌다.
이후 34년의 세월이 지났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춘강의 터전에서 일을 하면서 자립에 성공했고, 완전히 독립해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육과 직업을 통해 장애인들의 잠재력을 깨우고 자립할 수 있다는 이 회장의 확신이 현실로 증명된 셈이다.
지금도 사회복지법인 춘강은 산하 춘강장애인근로센터에서 세탁과 복사용지, 전산, 섬유 등 4개 품목, 직업재활어울림센터에서 된장과 양초, 꽃차를 주력품목으로 장애인 고용 창출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장애인들이 숙명적으로 가지게 되는 명제는 ‘홀로서기’입니다. 내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죠. 장애인 부모들의 명제 또한 같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장애를 가진 내 자식이 혼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화두를 풀어가는 과정이 바로 사회복지법인 춘강이 걸어온 길에 있습니다. 우리사회, 그리고 장애인 개개인의 마음 속에 자리한 뿌리 깊은 편견을 극복하고 변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준 것이죠.”

어려움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소위 말해서 ‘장애인이 만든 물품은 안 팔리는 상황’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1997년 8월 춘강근로센터는 ‘2002년 월드컵 관련상품 생산 유망기업’ 16곳 중 하나로 선정됐다. 사회복지시설로는 유일했다. 1998년 민속공예품 품질인증을 획득한 데 이어 2000년 전국공예품대전 장려상을 수상, 2003년에는 제주도 관광민속공예품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편견과 차별의 실체가 없음을 실력으로 증명한 셈이다.

장애인연계고용제, 공공기관의 장애인생산품구매제도 등 장애인 관련 정책 제정에도 힘을 쏟았다. 근본적인 장애인 복지는 정부정책 속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장애인 복지라는 이름으로 돈만 지원하는 것은 퇴보와 퇴행을 불러올 수 있다”며 “장애인 개개인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깨우고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또 우리 정책이 반드시 고민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선척적·후천적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한 장애인전문의료시설도 개원했다. 1994년 제주재활의원으로 문을 연 제주춘강의원은 장애인 전문 재활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장애인 건강 증진과 빠른 사회복귀를 돕고 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이 회장은 2001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8년 적십자 박애장 금장, 2012년 호암상 사회봉사부문, 2018년 아시아 필란트로피(philanthropy, 박애주의)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습니다. 평등하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신이 좀 불편다는 이유로 꿈을 이루는 것을 개인의 몫으로만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불교는 평등의 종교이자 자비심의 종교입니다. 불자들만이라도 좀더 열린 시각으로 장애인들을 동등한 우리사회 도반으로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회장의 원력은 이제 제주와 한국을 넘어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다. 미얀마 소수민족 카렌지족, 캄보디아, 케냐, 에티오피아의 장애인들을 위해 의수와 의족 지원 사업을 전개하는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장애인 자립과 편견 해소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한편, 이동한 회장 역시 두 다리에 의족과 철심을 단 장애인이다.

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